오랜만에 빨간책방을 들었다.
'빨간책방'의 메인 내용들도 좋지만
인트로가 참 맘에 든다.
이동진의 빨간책방 233회-아날로그의 반격 1부 오프팅 멘트
http://m.podbbang.com/ch/episode/3709?e=22344956
를리외르의 일은 모두 손으로 하는 거란다. 실의 당김도 가죽의 부드러움도 종이 습도도, 재료 선택도 모두 손으로 기억하거라.
뜯어져버린 식물도감을 고치기 위해서 를리외르 아저씨를 찾아간 소피에게 아저씨는 이런 말을 들려줍니다. 를리외르라는 뜻은 다시 꿰맨다. 제본이라는 뜻. 그러니까, 를리외르 아저씨는 책을 수선해주는 사람인데요.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라는 이 아름다운 그림책에는 책을 고치는 아저씨의 옹이진 손이 인상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책이 뜯어진 것도 소피의 손길 때문이었겠죠. 오래지니고, 많이 봐서 손때가 묻었다는 것은 그 만큼 좋아한다는 뜻. 손의 일은 시간의 일이기도 합니다. 를리외르의 목적부터가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책을 짓는 일이고요. 그러기 위해서 60가지가 넘는 공정을 하나하나 몸으로 익히고, 일일이 손품을 들여야 한답니다. 그렇게 책 한권 제본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한 달이상이라고 하네요.
처음 그의 손을 잡을 날의 떨림을 기억하실까요? 사귀는 사이가 된다는 암묵적인 합의. 연애의 시작도 손을 잡는거였죠. 손이라는 단어만큼 많은 관용구를 가진말도 없을 텐데요. 아저씨는 역시 를리외르였던 아버지가 남긴 말을 이제 소피에게 해줍니다. 얘야 좋은 손을 갖도록 해라.
안녕하세요 여기는 이동진의 빨간책방입니다.
위의 오프닝 멘트를 듣고서 ‘손수’라는 말이 떠올랐다.
손수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 편이다.
‘손수’ 만든 음식
‘손수’ 내린 커피
‘손수’ 적은 편지
등등
그 말에는 시간과 노력과 의미가 가득 담긴 말 같다.
현대화 시대에 얼마든지 편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고 처리해 버릴 수 있는 일이 수천가지 인데, ‘손수’ 한다는 것은 그 만큼 불편을 감수하고 마음을 담겠다는 뜻이리라.
위에서 소피에게 “얘야 좋은 손을 갖도록 해라” 라는 말에는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정성껏 그리고 좋은 책을 만들도록 노력해라라는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마음을 담아라”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나는 얼마나 좋은 손을 가지고 있을까?
얼마나 마음을 담고 살아가고 있을까?
나의 일에서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손수’ 했던 많은 것들이 점점 ‘손’을 떠나가게 될 때가 많은 것 같다.
처음 내 전공을 접할 때에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가득차서 많은 것들을 ‘손수’ 배워갔다. 작은 지식 하나 그냥 넘어 가는 법 없이 마치, 한 땀 한 땀 수놓으며 옷을 만들어가는 것처럼 그렇게 알아갔었는데 이제는 너무나 빠르게 지나 가버린다. 방법이나 과정과는 상관없이 어떻게든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
아는 것 같지만 아는 척 하는 내가 되버린 것 같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렇다.
처음 누구가를 알기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이 ‘손수’ 이루어졌다.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 하나하나에 귀기울이려고 하고, 조심스레 다가갔다. 이제는 편해서일까?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것을 느끼고 있을지 아는 것 같이 다가온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말이다.
다시금 ‘손수’로 돌아가야할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