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나기가 "하루에 천 명의 생명을 죽이겠다" 고 절규하는 이자나미를 향해 "나는 하루에 천오백명의 생명을 태어나게 하겠다" 고 말했을때 부터 인간의 운명은 망가진 것이다.
생명이 선이고 죽음이 악이라면 여신 이자나미는 악의 근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강 건너 저 편의 삶이 이곳보다 재미없으리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우리는 그 쪽 일을 알지 못한다. 해답은 오직 죽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는 부부였다. 두 신은 결혼을 통해 일본이라는 세계를 낳았다. 그런데 불의 정령을 낳을 때가 문제였다. 불의 정령은 배를 가르고 나오며 자신의 어머니를 모조리 태워 버렸다. 이자나기는 부인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 그는 이자나미를 되찾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갔지만 그녀를 보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오금이 움츠러드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심하게 썩어버린 부인을 뒤로 하고, 이자나기는 혼신을 다해 도망 친다. 바로 이때 이자나미의 절규가 터져 나온 것이다.
네가 정녕 나를 떠난다면, 하루에 천명 씩 네 땅 위의 사람들을 죽이겠다.
이자나기의 대답은 무책임했다. 그리고 그 무책임함은 이자나미에게 보다 우리 인간에게 더 큰 상심을 남겼다. 그 바보 같은 이자나기가 침묵을 지켰더라면, "그래 천 명을 죽이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지" 하고 무심하게 생각했더라면, 이 지긋지긋한 생명의 사슬은 오늘날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에게 더 큰 고통을 안긴 것은 누구인가? 천 명을 목졸라 죽인 이자나미인가? 아니면 천오백명을 낳아 준 이자나기인가. 간단히 정할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동(動)보다 정(淨)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인간에게,
삶이란 죽음보다 억지스러운 것일지 모른다.
문제는 공포다. 죽음 뒤에 더 큰 고통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미지의 불안. 지난 수 천년간 인간의 삶을 지배해온 종교도 바로 이 부분을 파고들었다. 산자를 지배하기 위해선 죽음의 진실을 은폐해야 한다. 인간을 창조한 이후로 신이 가장 애쓰는 일은 산자의 기도를 듣는 게 아니라 죽은자의 입을 막는 것이었다.
오직 한 사람, 단 한 사람만이라도 레테의 강을 건너가 "어이 이봐, 여긴 아무 것도 없어." 하고 외쳐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죽음은 더 이상 끔찍한 지옥이 아니라 영원한 안식이 될 것이다. 만약 내가 그 주인공이 된다면 꼭 전해드리리다. 바로 당신의 죽음 하루 전에. 달콤한 귓속말로.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는 <고사기>,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일본의 창조신이다. 그들은 일본 열도를 비롯하여 태양신 아마테라스, 달의 신 츠쿠요미, 폭풍의 신 스사노오 등을 낳았으며 이들을 모두 일본 전통 종교인 신토에서 중요한 카미(신)로 모셔진다. 일본 열도의 수 많은 신사들은 모두 이 카미들을 숭배하기 위해 지어진 제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