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초순.
진종일 가랑비가 내렸다.
도시는 온통 비에 젖어 있었다.
젖은 도시 특유의 냄새가 나와 미파의 몸을 휘감았다.
조금이라도 비를 덜 맞으려 종종 걸음을 치는 사람들이 우리의 어깨를 툭탁이며 지나갔다.
"에이 십팔"
미파가 지나는 사람들을 째려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어디 라면이라도 먹고 갈래?"
나는 홀쭉해진 미파의 뺨이 마그네슘 큐티로 실룩거리는 것을 응시했다.
"어제 인형뽑기를 해서 백 만 원을 날렸어. 하나라도 건졌어야 했는데..."
내 시선을 느낀 미파가 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쓰며 얼버무렸다.
"그 인형뽑기 좀 그만하라지 않아! 너 진짜 언제까지 그 기계한테 영혼을 팔아 넘길래?
그건 악마라고!"
내 말을 끝으로 우리는 한동안 말 없이 걸었다.
종로3가부터 걷기 시작하여 어느새 인사동 끝에 다다라 있었다.
풍문여고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니 허름한 라면집의 불빛이 보였다.
끼익 쇳소리가 나는 문을 밀고 들어가 젖은 옷을 털어냈다.
"어서오세요"
라면집에 어울리지 않게 젊은 남자 주인이 인사를 건넸다.
누가 주든 배만 채우면 되었기에 입구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라면 두 개를 주문했다.
"계란을 넣어드릴까요?"
"주인 맘대로 맛있게만!"
엄마에게 혼나 풀죽은 아이처럼 네모난 탁자의 끝만 괜시리 만지작거리는 미파 앞에 나무젓가락을 놓아주며 말했다.
"라면 값은 내가 낼테니 걱정말고!"
"라면 값이 문제가 아니야, 당장 스팀이 똥값인데 스파업 할 돈도 없구, 헤드셋도 사야 하는데..."
"거참..얼른 먹고 막차 끊기기 전에 집에나 가라구!"
주문한 라면을 들고 주인이 걸어왔다.
"계란은 하나씩 넣었고, 파는 당연히 팍팍 넣었답니다. 찬밥도 필요하심 드리구"
라면에 밥까지 한 공기 말아 싹싹 비운 우리는 가게를 나섰다.
문 밖까지 배웅하는 주인에게 눈인사를 건네다 라면집 이름을 흘끗 보니 '파치아모?' 라는 다소 생뚱한 이름이다.
...... ...... ......
"요즘 스팀잇은 살맛 안 나. 띨띨형, 뭐 좋은 꺼리 없나?"
나는 할 말이 없어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냈다.
미파의 젖은 머리카락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머리를 언제 감았는지 쉰내가 건너왔다.
"생각해볼게"
미파의 거뭇한 마스크에 묻은 물기가 가로등 불빛에 반짝였다.
정독도서관을 지나 다시 종로 3가 쪽으로 발을 옮긴다.
가회동으로 접어들자 성균관대 후문 쪽 언덕에서 달려오던 마을버스가 우리를 스쳐지난다.
버스의 꽁무니를 따라 걷다 버스정류장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미파가 탈 버스는 아직 올 기미가 없다. 타닥타닥 처마에 부딪히는 빗소리를 들으며
마음 속으로 그 리듬을 그려본다.
버스 기다리기가 무료한지 미파가 주위를 살폈다.
우리 앞에 우산 든, 바바리코트에 가방을 든 한 남성이 서 있었다.
다 큰 사내의 우산에 '멍충 골드'라는 이름이 크게 쓰여 있었다.
'쯧쯧 대체 얼마나 멍츙하기에...' 나는 낮게 지근거렸다.
이 말을 놓칠 리 없는 미파가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멍충 골드의 우산살 끝을 손가락으로 퉁겨 빗물이 튀게 했다.
그 치가 놀라 돌아볼 때 내가 꽈악! 하고 지옥의 소리를 내질렀다.
"하도 버스가 안 와 장난 좀 쳤어요. 멍충아, 미안해요."
미파가 혀를 낼름하며 말했다.
순간 사내의 눈이 지옥빛으로 반짝였다.
'저거...멍청이가 아닌데?'
뭔가 내면에 잠재된 똘끼를 멍청함으로 위장해 꾹꾹 누르고 있는 듯한 눈빛, 그게 나에게 느껴졌다.
더 생각할 틈도 없이 고물 버스 한 대가 전조등을 밝히며 달려왔다.
하지만 미파가 탈 버스가 아니었다.
'천국에 간다'며 남자 차장이 악을 쓰자, 사람들이 몰려 갔다. 차장의 이름표에 뉴위즈라는 이름이 반짝였다
천상의 빛이었다
버스는 설 자리도 없는 만원이었지만 몇 명의 사람을 더 태우고 빗물을 튀기며 떠났다.
"사람 사는 게 맨날 왜 이래?" 추녀 밑을 한 걸음 나서며 미파가 이어서 말했다.
"새 세상으로 바꿔보자고 오이형이 '크레이지 태그'를 만들었는데도...
달라진 것도 없잖아, 보팅봇만 난립해 제 주장만 외쳐대며 다운보팅질만 해대니."
나는 그저 고개만 주억거리며 미파의 말을 받았다.
별 다른 반응이 없자 미파가 인도 끝으로 나서서 버스가 오는 쪽을 보았다.
이윽고 버스 한 대가 헤드라이트를 가랑비에 튀기며 왔는데,
지옥행이었다.
"형, 들어가! 라면 잘 먹었어!"
"바로 집으로 들어가! 인형 뽑기 또 하면 눈깔 뽑아버린다"
미파가 손을 흔들며 저만큼 앞쪽으로 빼서 서는 버스 쪽으로 내달았다.
만원이라 승객을 더 못 태울 때 버스기사가 하는 짓거리였다.
한 무리 사람들이 미파를 뒤따랐다.
그 중에는 아까 서둘러 자리를 떴던 멍충골드도 있었다.
역시 겉으로는 순해 보이던 그도 '지옥'의 일원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운명은 시작되었다.
등장인물은 실존인물이며,
내용은....진실인가, 허구인가
보는 분들이 판단하실 문제입니다.
@ravenkim님과 새벽 밋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