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 연재소설) [PANic Song -chapter 2] HERO(4)

Words
831
Reading
4 min
8y
Listen to this post
~6 min

Previously on PANic Song(지난 챕터 보기)
Prelude - Blackened
Chapter 1 - Dog King(1)
Chapter 1 - Dog King(2)
Chapter 1 - Dog King(3)
Chapetr 2 - HERO(1)
Chapetr 2 - HERO(2)
Chapetr 2 - HERO(3)

테이블 위 진동소리가 요란하다. 술자리 흥을 깨트릴 정도의 경박한 울림. 신일은 등을 벽에 기댄 채 휴대폰 속 번호를 확인했다.

“여보세요?”

“아, 여보세요? 나신일 씨 되십니까?”

“예, 그런데요.”

“아, 그 신일 군인가? 오랜만이군. 나, 김상원일세.”

김상원? 신일은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창고를 더듬었다. 하지만, 끝내 그는 귀 익은 이름에 걸 맞는 얼굴을 떠올릴 수 없었다.

“누구, 시라고요?”

“김상원 소령일세. 어허, 이 사람 이거, 벌써 내 목소리를 잊은 겐가?”

김상원 소령이라고? 그렇다면 혹시?

“실장님?”

“그래그래. 이제야 생각이 난 모양이구만.”

“아, 예, 안녕하세요? 진짜 오랜만이네요. 이게 얼마만입니까?”

“하, 글쎄 벌써 몇 년 됐지. 그래, 자네는 별 일 없는가?”

“예, 저도 무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소령님 진급소식은 전해 들었습니다. 제가 경황이 없어서 연락도 제대로 못 드리고….”

신일이 군을 떠난 지 벌써 4년이다. 마뜩한 교류도 없던 옛 상관의 진급소식 따위 그가 전해 들었을 리 만무하다. 턱없이 어설픈 접대멘트를 둘러대며 신일은 민망함을 술기운 뒤로 숨겼다.

“아닐세, 전역하고 나면 연락하고 지내기 어려운 게 당연한 거 아니겠나.”

“그래도 신기하네요. 오늘 군대랑 무슨 인연이 있는 날인가 본데요? 사실 제가 지금 이수강이라고, 교관실 조교로 있던 친구랑 같이 술 마시고 있거든요.”

“아, 수창이. 그래, 나도 잘 알고 있지. 기억이 나는구먼. 내 안부도 좀 같이 전해 주게나.”

상대의 이름도 제대로 기억 못하면서 이 사람은 수강이의 뭘 잘 알고 있다는 걸까.

“그런데 사실 오늘은… 좋은 일로 연락한 건 아니고.”

적당히 안부 인사를 주고받았다 생각한 걸까. 그는 돌연 무겁게 목소리를 내깔며 분위기를 수습했다.

“무슨 일이세요?”

“그게 말일세. 그 한인건 대령님 있잖은가.”

“아, 한 중령님! 맞다. 그 분도 이제 진급하셨겠네요. 그런데 그분이 왜요?”

“그분께서… 한 대령님께서… 살해당하셨네.”

눈앞에 튀는 시큰한 불똥에 반사적으로 허리에 힘이 들어간다. 얼큰하게 오르던 취기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지금 이 사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살해, 라고 말했다. 사고나 순직이 아닌, 누군가에 의한 죽음이라는 걸 단정 지을 만큼 그 사인(死因)이 명백하다는 말인가?

“사, 살해 당하셨다고요?”

“우리도 많이 놀란 상태네. 엊그제 한 대령님의 시신이… 부대 근처에서 발견되었다더군.”

“그, 그분이 왜…”

“뭐, 경찰과 헌병단이 합동으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니 곧 무슨 결과가 나오겠지. 그런데 혹시 자네…”

여기까지 말한 다음, 그는 잠시 목청을 가다듬으며 이야기에 뜸을 들였다.

“시간 괜찮으면 내일 이곳에 한 번 들를 수 없겠나?”

신일은 순간, 숨을 고르며 잠시 말을 아꼈다. 이건, 뭔가 수상하군. 지난 몇 년 간 연락 한 번 없던 사람이 불쑥 이런 말을 꺼내다니, 신일은 잠시 수화기를 입가에서 뗐다. 김상원 소령, 신일이 아는 그는 결코 옛정만으로 이런 연락을 돌릴 위인이 아니다.

“아, 예….”

“전역한 지 한참이 지난 자네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게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 내 솔직히 말하지. 이번 사건 현장에서 말일세. 조금 이상한 단서가 발견되었다네.”

“이상한 단서라고요?”

“그게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라 딱히 뭐라 말하긴 곤란하네만 이게 아무래도… 자네의 도움이 좀 필요할 것 같아서 말일세.”

일개 강사인 내가 살인사건 수사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신일은 아직까지도 그가 건넨 말의 대부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더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하면 안 되겠나? 빈소는 수원이라네. 신일 군, 내 간곡히 부탁 좀 함세.”

한 대령이라면 신일이 군 생활 내내 지휘관으로 보좌한 분이다. 그분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하러 가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그는 꿈틀거리는 이 불길함의 실체가 궁금했다. 지금 이 순간, 경사로 정점에 놓인 거대한 바위의 위태로움이 떠오른 이유는 뭘까.

“…그렇습니까? 그럼 일단, 알겠습니다. 내일 오후 쯤, 찾아뵙도록 하죠. 병원 위치는 문자로 다시 알려주시고요.”

통화를 마치고 한참이 지날 때까지도 신일은 넋 나간 사람처럼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형, 무슨 일이에요? 살해라니요? 무슨 소리에요? 누가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당한 거예요?”

“…그 왜 있잖아. 한인건 중령님이라고.”

“그 대대장하던 분? 그분이 살해당했다고요?”

“응.”

“아니, 어쩌다 그런 일이…”

“글쎄, 그건 아직 모르겠고…”

신일은 잔에 남은 술을 단숨에 들이켜 목을 축였다.

“그래서… 내일 가보시게요?”

“응, 그래야 될 것 같아.”

“에이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돌아가신 분한테 할 말은 아니지만, 솔직히 형 전역한 게 몇 년인데 굳이 거기를….”

“아냐. 그래도 워낙 나한테 잘해주셨던 분이라, 난 가보는 게 맞는 것 같아. 그리고 무엇보다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 뭔가 내 도움이 좀 필요하다나 봐.”

“형의 도움이요?”

“응, 무슨 말인지는 아직 나도 잘 모르겠어. 어차피 내일 쉬는 날인데, 잠깐 다녀오지 뭐. 원래 사람이 경사(慶事)는 못 챙겨도 조사(弔辭)는 챙겨야 한다고 하잖아.”

뜻하지 않게 술자리의 흥이 깨져 버렸다. 병에 남은 술을 모두 비울 때까지 둘의 침묵은 계속되었다.
예정보다 조금 이른 시간, 두 사람은 자리를 정리하고 가게를 나섰다. 뺨을 스치는 바람이 제법 차가워졌다. 서늘한 밤공기에 신일은 움츠린 어깨를 오므라트렸다. 어느새 만추(晩秋)의 밤이 깊어가고 있다.

뒤따라온 수강은 담배를 꼬나문 채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또 다른 약속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그는 초조하게 인상을 구겼다.

“잘 먹었다. 오늘, 너무 무리한 거 아닌가 모르겠네.”

“아니에요 형, 별 말씀을요. 아, 이거 참 기분 같아서는 한 잔 더했으면 좋겠는데 제가 내일 회사에 일찍 나가봐야 돼서…”

“아냐, 괜찮아. 어차피 나도 내일 식장에 다녀와야 하고.”

서투른 파장이 못내 아쉬워 수강은 몇 번이나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느릿한 걸음으로 지하철을 향하는 길, 신일은 힘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 다시, 달이 떴다. 뒤숭숭한 기분 탓일까. 아까는 보이지 않던 붉은 기운이 달 테두리에 번져있는 것 같다. 불그스레한 눈썹달은 얼핏, 어둠을 할퀸 손톱자국처럼 보였다.

moon-2303202_960_720.jpg

묘한 색감이군. 신일은 뜻 모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종로 한 복판, 네온사인에 가린 달빛만이 불온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