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After TOON) 북두신권(北斗神拳)의 라오우(Raoh)에게서 보이는 기시감

dawson-kim(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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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왕(拳王) 라오우(Raoh, ラオウ).
하라 테츠오(原 哲夫)의 <북두신권(北斗神拳)> 에 등장하는 메인 빌런.

18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암살권법인 북두신권의 계승자로
동생인 켄시로(Kenshiro, ケンシロウ)가 간택되자
세상을 등지고 잠적.
이후 핵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세상에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자
분연히 일어나 세기말의 패자, 권왕의 자리에 스스로 오른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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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마주치면 죽는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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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을 휘두르면 몸이 갈라지고 싸대기를 날리면 머리가 분리되는 파워

.

그는 북두신권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캐릭터입니다.
어떤 면에선 주인공 켄시로보다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할 수 있죠.

그는 1부 내내 엄청난 카리스마를 풍기며
공포의 제왕으로 군림합니다.

극강의 주먹으로 인간의 신체를 두부처럼 썰고,
가는 곳마다 피바람을 일으키며,
압도적인 힘으로 세상을 지배할 야망을 품은 그는
혼돈의 시기를 힘으로 평정하는 악의 화신 그 자체입니다.

그는 '약한 것이 곧 악한 것'이라는 무자비함을
힘의 원천으로 삼습니다.
이는 약자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품은 채 살아가는 켄시로나
봉사와 희생을 삶의 가치로 여기는 켄시로의 둘째 형
토키(トキ, Toki)와 확연히 구별되는 그만의 철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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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사 제조기로 유명한 라오우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신세계의 질서 정립을 입버릇처럼 되뇌이던 그는
켄시로와의 승부 끝에 죽음을 맞이할 때조차
위풍당당함을 잃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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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직전까지 명대사를 읊어주시고...

.

다소 유치한 대사 처리와 들쑥날쑥한 내러티브 구조로
지금 보면 상당히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북두신권>은 작가의 거칠지만 정성어린 펜 터치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마초지향적 세계관에서
옛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만화입니다.

재미있는 건, <북두신권> 속 라오우의 흔적을 좇다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근현대사의 인물과 연결되는 느낌이 있다는 점입니다.

작품 중반까지 공포의 제왕이자
주인공 켄시로가 극복해야 할 적대자로 등장하는 라오우는
극 후반부로 갈수록 역사적 평가가 계속해서 변화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중반 이후부터 그는 무(武)의 가치를 존중할 줄 아는 지도자이자
비겁함과 야비함을 경멸하는 당당한 무인으로 평가 받지요.

심지어 극 후반, 켄시로와 라오우의 고향인 수라의 섬에서는
그가 지옥같은 삶에 새로운 질서를 가져다 줄 구세주로 미화됩니다.

수라의 섬 주민들은 자신들을 구하러 온 켄시로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왜 라오우님이 아닌 당신이 이 섬에 왔는가."라며 통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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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이런 느낌...

.

'무질서한 세계를 안정시키기 위해 무력으로라도
모든 이들을 굴복시켜 새로운 질서를 옹립한다.'

굉장히 낯익은 내러티브지 않습니까?

라오우가 공포의 존재였던 당시
그의 측근들과 휘하 병사들은 그에 대한 충성이
압도적인 공포 때문이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무조건적인 굴종을 맹세합니다.

절대자가 사라지고 자신의 권력 기반이 무너지자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그를 그리워하기 시작하죠.

'그래도 라오우님이 계실 때가 좋았어.'

작품 후반이 되면 그 켄시로조차
"평생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던 큰 형"으로 라오우를 기억합니다.
주먹과 주먹이 맞붙고 피와 살이 튀는 혈전 끝에 우애를 되찾은 걸까요.

'라오우의 철권통치는 많은 상처를 남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확립한 질서 체계는 역사적으로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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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고 사랑하는 횽아를 맨손으로 처죽이며 싹튼 우애

라오우를 평가하는 <북두신권>의 후세 사람들과
오랜 독재를 경험한 우리나라 어르신의 시선은
많은 부분에서 유사성을 같습니다.

이런 생각은 라오우와 켄시로의 고향인
<수라의 섬> 시퀀스에서 절정에 다다르죠.

지옥같은 뭍보다 더 가혹한 삶을 사는 섬사람들을
'북한'으로 치환하면 답은 명쾌해집니다.
섬사람들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거였거든요.
'수라보다는 지옥이 낫다'

켄시로를 붙들고 눈물 흘리는 섬사람들의 평가 앞에서
권왕 라오우는 불세출의 구세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북두신권>속 내러티브의 핵심은
무질서와 혼돈, 공포와 절망의 시대에 등장한
초월적 절대자로서의 초인(超人)과
그를 끝없이 추종하고 경외시하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만화의 중심이 되는
절대자에 대한 동경은 민주와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네 사회에도 여전히 통용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나라엔 여전히 근대 산업화의 역군이자
기적같은 경제 성장의 초석을 제공한 구국의 영웅이자
새마을 노래의 작사 작곡자이기도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숭배하고 찬양하고 그리워하시는 분들이 많지요.

그가 인권을 탄압하고,
제왕적 권력기관으로서의 대통령의 지위를 완성하고
권력 연장을 위해 헌법 질서를 유린한 사실은
많은 분들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가
'사랑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게 안전하다'고 했던가요.
그의 명언은 권력자로 살아가기 위한 조언을 염두에 둔 것이나,
이는 권력자로 살다 죽은 이후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습니다.
최소한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것 같군요.

민주공화국의 헌법 질서가 엄연히 존재한 상황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라오우와 같은 결단을 내렸다면
이것은 만화로도, 역사로도 설명이 불가할 테죠.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우리 역사의 만화적 비극이랄까요.

고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Cicero)는
'진정한 자유는 정의로운 주인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주인도 가지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이 말을 한 사람이 근대도, 중세도 아닌 고대사람입니다.)

우리는 정말 어떠한 주인도 섬기지 않고
진정한 자유를 누릴 준비가 된 걸까요?
아니, 진정한 자유를 누릴 생각은 하고 있는 걸까요?

어쩐지 켄시로가 우리에게 다가와
자유시민으로서의 우리네 삶에 종언을 고하는 것 같습니다.

"...넌 이미 죽어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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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시민은 복종하되 예종하지 않으며, 지도자는 두되 주인은 두지 않는다.
(A free people obeys, but it does not serve, it has leaders but no masters)

-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