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이라는 빛

Words
280
Reading
2 min
9y
Listen to this post
~2 min

10월 유신 이후 개정된 1973년 방송법은
지나친 상업 광고의 규제를 목적으로 했습니다.

방송법[시행 1973.2.16.] [법률 제2535호, 1973.2.16., 일부개정]
【제정·개정이유】 방송의 공공성을 제고하고 방송내용을 자율적으로 정화함으로써 방송문화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려는 것임.
① 방송윤리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함.
② 방송윤리위원회의 심의결정사항을 방송국이 준수하도록 함.
③ 방송국에 사전심의기능을 가지는 심의실을 두도록 함.
④ 광고방송의 시간과 회수를 규제함.

사회정의를 부르짖던 새마을의 군사 정권은
국민에게 보편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방송이
자본에 굴종하는 모습을 차마 좌시할 수 없었던 거죠.

그렇게 분연히 일어난 정의로운 공권력은
방송윤리위원회를 신설하고 막강한 권한을 부여합니다.

헌법상 금지되는 검열이 아닌
윤리 심의라는 명분이 있었기에 그들의 가위질은 거침이 없었죠.
거침이 없기에 자비가 없고, 자비가 없기에 이성도 없었습니다.

5.jpg

방송금지곡 관련 신문 보도(左 1975년 7월 25일 경향신문 / 右 1976년 11월 26일 경향신문)

우리나라의 찬란한 전통을 위협하는
선정적인 방송내용 역시 규율 대상이었습니다.

"우리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슴에 새겨라.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게 우리의 최고 가치다.
나라가 곧 나라님이고, 나라님이 곧 대통령 각하시고.
군사부일체의 정신을 받들면
결국 나라님한테 충성하는 게 부모에 효도하는 거랑 같은 거고.
민주주의 사회에 나라님이 어디있냐고?
너! 우리의 찬란한 유교적 전통을 무시하는 거냐?
내가 살아보니까 윗사람 욕하는 놈치고 제대로 된 놈이 없더라.
나라에 충성해야 할 군인들이 총 들고 탱크 몰아서
정권 찬탈한 건 어떻게 설명할 거냐고?
너 이새끼! 뚫린 입이라고 말 함부로 하는거야?
권력에 무조건 복종하는 게 무슨 언론이냐고?
....가만히 보니까 너 쌍놈이 아니라 빨갱이였구나?"

명분은 늘 아름다움으로 위장하고 있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어 이스탄불로 다시 태어나자
크리스트교의 성지를 구하고 하느님의 정의를 실현하자던
십자군은 왜 무슬림을 도륙하고 재물을 약탈했을까요.

600만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 제3제국의 명분은
더러운 수전노들로부터 위대한 아리아인의 경제 주도권을
되찾아오자는 것이었습니다.

명분이라는 빛은 그 너머에 늘 무언가를 숨기고 있습니다.
그 이면에는 불편한 진실이 어김없이 숨쉬고 있기 때문에.

눈 앞의 저 빛! 찬란한 저 빛!
그러나
저건 죽음이다.
의심하라.
모오든 광명을!

  • 유하 作, <오징어>
명분이라는 빛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