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몰입 연기, 이른 바 메소드 연기(method acting)는
1930년대 모스크바 예술학교의
스타니슬라프스키(Stanislavski)에 의해 정립되었습니다.
이전까지 무대 위에서의 역할극에 머물던 연기 개념은
그에 의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지요.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Константи́н Серге́евич Станисла́вский)
메소드 연기는 고전 연극 특유의 과장되고 격한 감정 표현을 자제하고
등장인물의 심리적 디테일을 추구함으로서
마치 실제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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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가 '메소드 연기론'을 본격 도입하면서
미국 영화계 역시 신세계를 맞게 됩니다.
말론 브란도는 영화 <맨(The Men, 1950)> 촬영 당시
하반신이 마비된 군인에 몰입하기 위해 평소에도 휠체어를 타고 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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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드 연기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두 편의 영화, <에덴의 동쪽(East of Eden)>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
이 영화에는 '희대의 섹시 스타'가 등장한다는 점 외에
또 다른 공통점이 있습니다.
제임스 딘(James Dean)과 말론 브란도(Marlon Bra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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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최초로 '진정한 눈빛 연기'를
이끌어 냈다고 평가 받는 천재감독,
엘리아 카잔(Elia Kazan)이 연출한 작품이라는 점이죠.
엘리아 카잔의 모습(중년-장년-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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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으로 승승장구하던 그의 인생은
1950년대 들어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습니다.
공화당 대회에서 초청 연사로 등장한
조지프 매카시(Joseph McCarthy) 상원의원이
'미국 국무성에 빨갱이가 있다'는 폭탄발언을 하면서
이른바 매카시즘이 촉발된 거죠.
광풍의 시작이 된 문제의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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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매카시즘은 정계, 재계, 학계를 넘나들며
빨갱이 색출에 열 올리는 기폭제가 되었고
이 광풍 앞에서 할리우드는 결코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월트 디즈니, (당시 영화배우였던) 로날드 레이건, 게리 쿠퍼 등이
매카시즘의 선봉장을 자임하며 반공 이념을 설파했고
실제로 수많은 영화 관련자들이
할리우드에서 퇴출되거나 외국으로 추방되었습니다.
동조자들. 좌로부터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월트 디즈니(Walter Disney), 개리 쿠퍼(Gary Coo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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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광란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서
카잔의 선택은 많은 영화인들을 실망시키게 되죠.
그는 반미활동조사위원회에 출석하여
스스로 공산당원임을 자백하고
할리우드에서 좌익 인사로 의심되는 사람들의 명단을 넘겼습니다.
애초에 진지한 조사 따위 있을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대로 할리우드에서 퇴출당했습니다.
그중에는 천재 연출자이자 배우였던 찰리 채플린,
노벨문학상 수상자 극작가 아서 밀러도 있었습니다.
피해자들. 찰리 채플린(Charie Chaplin)과 아서 밀러(Arthur Miller )
1954년 매카시가 위원장 자격을 박탈당하며
광란의 빨갱이 사냥은 허무하게 끝났죠.
사냥은 끝났지만 깊은 상처는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었습니다.
배신자와 끝까지 싸운 자,
침묵하던 자와 열혈 지지자 사이에는 증오와 갈등만이 남았습니다.
카잔은 그 이후 몇 편의 영화를 통해 연출가의 명맥을 이어가지만
그의 이름에는 항상 '배신자'의 꼬리표가 붙어 다녔습니다.
연기 지도하는 엘리아 카잔
매카시즘의 동조자들은 많았습니다.
보수 성향 자체가 비난 받을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엘리아 카잔을 비겁자로 만든 건, 그가 전향한 것도 모자라
동료들을 밀고하고, 누명을 씌우고, 배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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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생. 영화계의 거장임에도
후배들은 예술가적 혼을 팔아넘긴 그의 배덕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가 태어난 지 90주년이 되던 1999년 아카데미 시상식.
아카데미는 전후 미국 젊은이들의 방황과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그린 그의 연출력과
메소드 기법을 할리우드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공로를 인정하여
엘리아 카잔에게 공로상을 수여합니다.
하지만 불편한 몸을 이끌고 시상식에 오른
90세의 노인을 맞이한 건 반쪽자리 환영 인사였죠.
일반적으로 아카데미 평생공로상은
영화 발전을 위한 개인의 헌신과
희생을 기리는 의미로 수여하기에
수상자의 등장과 동시에 극장 안의 관객들은
전원 기립하여 우레와 같은 박수로
그를 반기기 마련입니다.
'당신 덕에 현재의 우리가 있을 수 있었다'라는
후배들의 찬사가 이 기립 박수에 담겨 있죠.
하지만 1999년 아카데미 시상식장은 조금 달랐습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로버트 드 니로의 짤막한 설명이 끝난 후
1:00 정도에 카잔이 입장합니다.
워렌 비티, 메릴 스트립, 조디 포스터 같은 배우들이
기립하여 박수로 그를 맞은 데 반해,
(여전히 표정은 밝지 않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를 비롯한 일련의 인사들은 착석한 채
성의 없는 박수를 보냈고
닉 놀테, 에드 해리스, 홀리 헌터 등의
'성깔 있는' 배우들은 아예 팔짱을 낀 채
노골적으로 불만 어린 표정을 지어 보입니다.
역대 가장 어색한 평생공로상 광경.jpg
엘리아 카잔의 굴욕.
본인 스스로도 수상 소감을 말하며
'아카데미의 용기와 관용에 감사드린다'고 말할 정도였죠.
부정한 현실 앞에 무릎 꿇고 동료를 팔아넘긴
예술가에 대한 후배들의 톡톡한 응징이었다고나 할까요.
참고로 매카시 열풍 속에 외국으로 추방당하다시피 한
찰리 채플린은 그가 죽기 직전인 1972년,
아카데미 공로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당시의 수상 장면을 비교해보면 카잔의 수상식이
얼마나 처참한 분위기인 지 알 수 있습니다.
2분45초경 찰리 채플린이 등장합니다.
후배들의 죄책감이 담긴 기립박수가 몇 분 간 끊이질 않습니다.
마지막 30초에 등장하는 지팡이와 모자를 보고 있자니,
노쇠한 채플린의 모습이 감격적이기까지 하네요.
1972년 평생공로상 수상자, 찰리 채플린의 수상모습
우리나라에서는 배우나 예술가들이
자신의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걸 극도로 경계합니다.
대중 역시 '딴따라'들의 정치적 성향을 알고 싶어 하지 않죠.
하지만 이런 편견이 견고해지는 데에는
우리나라 연예인(또는 그들의 문화) 역시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의 무식함을 자랑하고
정치적 불분명성이 무기가 되는 현실에서
연예들은 그저 대중에게 납작 엎드려
그들의 호응과 관심에 끝없는 감사를 표하는 것만으로
존재 이유를 찾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개인적으로 배우가 예술가로서 인정받으려면
저 정도의 근성과 고집은 있어야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영화계의 대선배를 목전에 두고도 뚜렷한 명분을 가지고
찬성과 반대의 의사표시를 할 정도의 근성이랄까요.
예의를 갖추고 존중해야 할 선배이기 이전에
동등한 예술가로서 당당하게
반대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배우들의
'정치적' 행동은 지지받아 마땅합니다.
그 성향의 옳고 그름, 방향성의 문제를 떠나
저렇게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문화,
아직 우리나라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 같군요.
P.S.
엘리아 카잔은 94세의 나이로 2003년 타계했습니다.
숨을 거두기 직전,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매카시 열풍 속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순간의 선택.
그리고 오래도록 지속된 아픔과 상처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미화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절대 잊지 않는 문화.
적폐청산 논의가 한창인 우리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