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요즘은 집사람이 먼저 출근을 한다. 나는 아직 여유가 있기에 애써 눈을 감고 수면 종료직전의 로스타임 5분을 즐긴다. 아이 엄마가 씻고 옷을 입고 짐을 챙기는 소리에 아이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린다. 정신을 차려서 엄마를 찾기 시작하면 큰일이다. '엄마, 회사 가지마. 나하고 놀자' 눈물까지 글썽거리면 마음이 좀 아릿하다. 그래서 몇 마디 말로 아이를 달래려다보면 둘 다 지각하기 일쑤다.
아이가 뒤척이는 소리에 나는 얼른 아이 옆에 가서 눕는다. 자연스레 아이는 내 귓볼을 만지작거리며 배시시 웃는다. 그 표정이 좋아서 괜히 볼을 비빈다. 아차, 실수! 수염이 까칠했는지 눈을 떴다. 다행히 기분좋게 깨서 그런지 울지는 않는다.
아빠, 오늘 회사 가지마. 나하고 놀자
음.. 니가 어린이집 갔는데 친구도 없고 선생님도 없으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아무도 없으면 싫어. 친구 없는 건 싫어
그래, 아빠도 회사에 가지 않으면 아빠 친구들이 아빠 보고 싶어하겠지? 오늘은 일찍 올게. 갔다 와서 놀자.
집사람은 그 사이에 무사히 출근했다. 다시 눈 감은 아이를 보며 슬쩍 웃는다. 예쁜 얼굴은 아닌데 내 눈에 귀엽다. 모성애나 부성애는 길러지는 것인가보다. 밤낮으로 울어댈 때는 이게 사람 사는 삶인가 싶더니 이제는 가끔씩 아이가 예쁘다.
아이를 돌봐주시는 분이 오시고, 나는 샤워를 한다. 온 몸에 따뜻한 물을 끼얹는 동안 머릿속에 몇 가지 노래가 떠오르는데 오늘은 왠지 모르게 가수 리아의 '나에게는'이 떠오른다. 가사에 '흠뻑 젖은 꿈이었어. 뜨거운 샤워를 하고'가 나왔던 탓인가보다. 예전에 모 광고 CM으로 리아의 노래가 나왔던 게 떠오른다. 정장을 입은 주인공이 건물 내부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으려는데 복도 끝에서 물이 몰아치고, 주인공은 웃으면서 서류가방을 밟고 서핑하듯 건물밖으로 나간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이제 물은 잠그고 얼굴에 면도 거품을 바른다. 이유없이 HOT의 위아더 퓨쳐도 떠오른다. 고등학교 소풍 때, 그 춤을 멋지게 췄던 친구 얼굴도 떠오른다. 유치한 가사가 생각나 슬쩍 웃는다. 어른이 되었지만 그닥 자유로운 것 같진 않다. 나는 크게 달라진 것 같지도 않은데 나이를 나타내는 숫자는 무섭게 커졌다. 어쨌든 흥얼거리며 60호 전투모에 딱 어울리는 내 머리통으로 상하좌우로 움직여 직사각형을 그리며 이를 닦는다.
옷을 입고 창 밖의 먼 산을 내다본다. 오늘은 멀리 있는 산이 희미한 걸로 봐서 미세먼지가 '나쁨' 수준이겠구나. 얼른 주차장으로 달려가 시동을 건다. 이틀 전의 맑은 공기가 몹시 그립다. 정말 어린 시절 소풍가는 날 아침 같은, 그런 공기와 냄새였는데. 아, 오늘 갑자기 HOT의 노래가 떠오른 건 그 탓이었나.
정신 없이 가다가 앞 차가 날 보며 윙크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니, 단순히 짝눈이라 그렇구나 생각하며 또 피식 웃는다. 회사 근처에서 직장 선배의 차가 뒤에 따라 붙는다. 신호대기 중에 룸미러로 슬쩍 넘겨보니 그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주차를 끝내고 내리려는데 마침 라디오에서 김광석의 '일어나'가 나온다. 그러면 노래가 끝날 때까지 일어날 수가 없다. 사무실로 올라가니 '아, 대구씨. 아까 내 앞에 있지 않았어? 내가 잘못봤나?'
'그런가봐요'라고 답하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