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받아온 수많은 성적표, 성적표에는 기본적으로 거짓이 없었다. 가끔 운이라는 놈 때문에 내가 갖춘 노력이나 실력이 다소 왜곡되어 나타나기는 했으나 항상 거짓은 없었다고 생각했다. 지난주에 집사람이, ‘영유아건강검진결과표’라는 걸 들고 오기 전까지는.
포스팅을 하려고 인터넷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 엄밀히 말하면 그건 성적표가 아니다. 성적成績이라는 말은 ‘해 온 일의 결과로 얻은 실적’을 말하는 것이고, 실적이란 ‘실제로 이룬 업적이나 공적’을 말하며 업적은 ‘어떤 사업이나 연구에서 얻은 공적’을 말하는 것이며 공적은‘노력과 수고를 들여 이루어낸 일의 결과’를 말하는 것이므로. 이러저러하게 키우려는 의도 없이 하루하루 아이와 상대해주었을 뿐이니까 사실 내겐 그 종이가 성적표가 아니었다. 다만, 노력과 수고를 들여 이루어낸 일의 결과라는 점에서 성적표와 비슷하다고 해 두자.
육아에도 성적표가 있다는 것은 그 종이를 보고나서 처음 생각해 보았다. 기껏해야 키가 얼마나 컸는지, 살은 얼마나 쪘는지 정도를 숫자로 나타낸 것에 불과하지만 내 눈가 눈을 뗄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88올림픽이 개최된 그 시절 쯤, 유치원에 등록을 하고 원복을 맞추기 위해 신체치수를 잴 때의 일이다. 유치원 건물에 붙은 사무실쯤이었으리라. 내 몸을 이리저리 재던 사람이 ‘너는 남보다 좀 넓은 어깨를 타고났기에 어깨에 맞춘 옷은 어쩔 수 없이 소매부분이 손등을 덮을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넌 머리가 참 작다. 모자는 소小로 하면 되겠다, 아니 이게 좀 이상하네. 보기보다 너 머리가 큰가보다. 중中으로 하자. 응? 이게 왜 이렇지? 어이, 저기 대大 갖고 오세요. 자 이제 맞지?’ 여전히 머리가 좀 아팠다. 더 큰 건 없는지 물어보았고 아래와 같은 대답을 들었다.
‘아, 특대해야겠네. 이건 주문넣어서 받아야하거든. 너 입학하는 날 여기 와서 모자 받아가라, 알겠지?’
분명 집사람은 이 종이를 받을 때 의사로부터 머리둘레에 대한 무언가를 들었을 것이다. 틀림없다. 하지만 나는 모른체했다. 옛 생각을 하면서 물끄러미 종이를 바라보는 내 옆모습을 보던 집사람이 한마디 덧붙였다.
여보, 의사가 머리가 좀 크긴 한데 인지능력이 괜찮은 편이라 정밀평가는 안 해도 된대. 그리고 검사할 때 의사가 봐도 머리가 좀 컸나봐. 숫자를 좀 낮춰서 넣었다던데?
아, 숫자를 낮춰 기록했는데도 100명 중에 1등인 내 아이의 머리 크기, 심지어 선의의 거짓까지도 포함된. 마음속으로만 아래 사진의 아저씨가 외쳤던 그 대사를 나즈막히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