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조식, 며칠 전부터 이런 제목으로 글을 쓰고 싶었다. 처음 이런 생각을 한 직후엔 피식 웃었다. 개조식이라니. 개가 호텔 테이블에 앉아 조식뷔페에서 소세지 몇 개를 접시에 얹어놓고 먹는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걸로 글을 써야지 했던 생각이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왜 스티밋을 시작했을까. 돈 때문이다. 내가 암호화폐를 처음 알게 된 건 한 친구 덕분이다. 17년 5월경, 이더리움으로 시작해서 떡상과 떡락을 수차례 경험한 뒤에 느낀 건 ‘난 코인투자와 맞지 않다’였다. 그 좋은 시절에 시작해서, 12월 상승장을 거쳐놓고도 지금까지 누적 투자손익이 천만원가까이 손해라고 하면 누가 믿을까. 어쨌든 그랬다. 코인을 소개해준 친구는 그해 늦 여름에 블로그를 하나 소개해주었다. 글을 쓰면 돈을 번다나. 그게 스티밋이다. 어쨌거나 여기서 받은 보상은 '코인 해서 번 돈'에 포함되기에 내 손해액에 대한 씁쓸함을 어루만져준다.
스티밋을 시작한 두 번째 이유는 블로그 욕심이다. 살면서 몇 번이나 온 블로그 내지는 SNS 실패의 경험들-싸이월드,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다음까페-을 떠올려본다. 사무실에 선물로 받아 두 달만에 볼품없이 말라죽은 난초를 보는 듯한 내 블로그들. 그걸 한 번 만회하고자 하는 욕심이 들어서 시작했다. 보상으로 받은 코인으로 단타나 장투를 할 수 있으니 일종의 코인활용이기도 하고, 어쨌든 지금까지 보팅 받은 걸로 37스팀 달러를 벌었다. 내 돈을 써서 파워업을 하기도 했다. 번 것보다는 보팅 한 번에 올라가는 숫자를 더 키워보고 싶어서 현질한 금액이 더 크다. 480스팀 정도를 현금으로 사서 파워업 하는데 썼으니. 스팀을 사는데 얼마를 썼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다양한 가격대에서 샀다. 하여튼 괜찮은 중고차 한 대 값은 될 것 같다. 지금껏 번 돈이 원화로 얼마가 될지는 모른다. 스팀달러가 좀 오르면 ‘내가 글써서 번 코인을 판 돈’이라면서 집사람에게 생색내며 근사한 저녁을 먹을 생각이다. 나머지는 스팀달러 대비 스팀의 가격이 좀 내리면 파워업 하는데 쓸 생각이다.
나는 왜 이런 글을 쓰는 걸까. 나만의 컨텐츠가 없기 때문이다. 20년 전 부터 여기저기서 읽었고 들었다. ‘자기PR’시대, ‘1인 브랜드’ 시대. 내가 가진 능력이 그대로 컨텐츠가 되고 스스로를 얼마나 잘 포장하고 홍보하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는 그런 말. 내 인생의 경험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엄청난 시간이 지나 무슨 말인지 안다. 20년 전 신문의 띠별 운세에 이런말이 있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교실 앞문으로 귀인이 들어와 돈이 되는 말을 하리라. 그러나 그대는 20년 뒤에야 무슨 말인지 깨달으리라.’
스티밋에 처음 글을 쓴 날이 아마 동료직원의 문상問喪을 다녀온 다음날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문상 다녀온 글을 썼다. 그 글에는 $1.01의 보상액이 찍혀있다. 며칠이 지나고 할머니 묘소에서 느낀 감상을 어딘가 끄적인 적이 있다는 게 생각났고, 그 글을 다시 읽었다. 돌아가신 할머니는 여러 의미로 나의 롤모델이었는데 글을 다시 읽으면서 눈물이 살짝 났다. 장례식장에서 할머니의 상을 치르면서, 하관하면서, 두어달 뒤에 혼자 산소를 찾아 술을 흩뿌리고 꿇어앉으면서 했던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춤을 췄다. 그걸 정리해서 썼는데 @kimthewriter 님이 리스팀을 해 주셨다. 그 덕에 많은 분들이 그 글을 찾아주셨다.
사람이 매일 죽을 수는 없는 일이라 그 후로 일상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겪은 모든 일에 대하여(언제든, 어디서든, 무슨 일이든) ‘이걸 어떻게 정리하면 스티밋에 쓸 수 있을까’ 생각을 했다. 혼자만의 여행을 즐기는 편이지만 결혼, 출산 이후 물 건너갔다. 출근과 퇴근, 주말의 경조사, 아이를 데리고 주말에 마트를 다녀오는 것 외에 무슨 특별한 일이 있으랴. 아직도 나는 컨텐츠가 없다. 다만, 내 글에 손톱만큼의 재미라도 느끼는 분들이 찾아주시기에 분에 넘치는 보팅과 댓글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매일 유치하지만 답답한 고민을 한다. 나만의 컨텐츠에 대한, 달리 말해서 생업 외의 내 인생에 대한. 이 자리를 빌어 비루한 내 글을 찾아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몇 가지 시도를 해 보았다. 대세글에 매일 올라와있는 영어로 된 한국문화 소개 포스팅에 백단위의 보상액이 찍히는 것을 보고 괜히 제목을 영어로도 붙여보았다. 괜히 제목만 길어서 구질구질해 보인다. 멋진 사진에 멘트 한 두 줄 붙이는 게 멋있어보여서 괜시리 하드디스크를 박박 긁어 건진 사진에 분위기 있게 써 보기도 했다. 다시 보니 초등 저학년이 쓴 그림일기 같은 느낌이다. 먹스팀이 올라오고 거기에도 많은 사람들이 반응하는 걸 보면서 식당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행위도 해 보았다. ‘밥 나오면 일행에게 기다리라고 한 다음 사진 한 장 찍고, 숟가락 들면 또 한 장 찍고, 다 먹고 나면 빈그릇 또 찍고, 식당 문열고 나오면서 뒤 돌아서 한 장 더 찍기.’ 가끔 보는 친구들이 날더러 미쳤다고 했다. 그 친구들이 카카오스토리나 페이스북 운운하며 사진을 찍을 때마다 빈정거렸기 때문이다. 요즘 내가 듣는 말 ‘니놈이 드디어 식당에서 폰 카메라를 꺼내는구나. 니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한 빈정거림을 모두 갚아주마.’
쓰고 나니 개조식이 아니다. ‘1. ~함. 2. ~임.’ 이런 식으로 쓰는 것을 개조식이라 하는 것 같은데 번호만 붙인 문맥없는 글이 되었다. 1. 2. 2-1. 2-2. 이런식으로 번호를 붙이고 싶었다. 마크다운 문법을 아직 잘 몰라서 그렇게 쓰니 번호가 이상하게 표시가 되길래 관뒀다. 계속 일상글을 쓸 생각이다. 스티밋 소설가, 암호화폐 시황 분석가, 역사 단편 저작가, 지역문화 설명가 등 뭐든 되고 싶으나 재주가 없다. 내 메일에는 이거 쓰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두어줄 쓰다가 그만둔 글감이 대여섯개 있다. 골방에 잡동사니와 그럴듯한 쓰레기를 모아둔 느낌이다. 계속 모으다보면 가끔 ‘세상에 이런일이’에 출연하는 쓰레기 수집가처럼 쓸모없는 글 주제만 모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크지만 그 중 한 두 개, 괜찮은 글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죽기 직전에 자식과 친척들에게 내 아이디를 알려줄 참이다.
‘으으.. 나 이렇게... 살았어... 주소창에.. s..tee...mi...t..com..슬..러..쉬..고..골뱅..이..da..e...gu.. 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