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노자규
출처 : 노자규의 .. |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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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빈하늘 끝에
가난한 행복을 매단
이 집에는
넉넉한 인품을 가진
할아버지와 11살 손자가 살고 있답니다
“아니 애가 어디 갔나..
찾아 헤매다
피아노 교습소 앞에 쪼그리고 앉은
아이가 보입니다
“지석아 여기서 뭘 하니 밤이 되었는데..”
“할아버지 저 피아노 소리가 너무 좋아요.. “
“그래그래
이 핼비가 피아노 꼭 사주마.. “
선생님으로부터 자폐증은 가지고 있지만
음악적 감성이 뛰어나다며
피아노를 가르쳐보라는
권유를 받은 적이 있는 지석이
잠들기 전
허공에다 피아노 건반을 그려놓고
행복을 노래하다 잠든 손자의 손을 꼭 쥐고선
“이 세상에서 가장 늦게까지
쥐고 있고픈게 네 손이란다..... “
검거나 희거나 내 새끼 인지라
끝날 것 같이 않는 할아버지의
가슴앓이는 낮에 뜨는 달처럼
구부정한 등골 안에
아픔을 구겨 넣은듯합니다
오늘은
지석이 생일이라 고깃집에 앉았습니다
시원한 냉면을 먹고 있는데
지나가는 아르바이트생의 실수로 그만
식초 통이 엎지러려 지석이 냉면 속으로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어쩔 줄 몰라하는
직원에게 괜찮다는 손짓을 합니다
그런 후
지석이 냉면그릇을
자신의 것으로 바꿔주는 할아버지
“어이 많이 먹어라... “
입에 들어가는
냉면 줄기를 세기라도 하려는 듯
흐뭇한 미소로 여유 한잔을 마시듯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산을 할 때
미안함에 땅에라도 닿을 듯 인사를 하는
직원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입니다
“자네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주 새콤한 냉면을 먹었네...”
일상 속에서 만나는 불쾌함도
그저 웃음으로 넘기는 것도
살아가는 재미라고 그는 말합니다
식당 문을 나서며 지석이가 물어봅니다
“할아버지,,,
새걸로 바꿔달라 하면 되잖아..... “
“힘들게 일해 학비라도 벌려고 하는데
그러다 주인 눈밖에라도 나면 어떡하겠니..
내가 조금 손해 보면
세상은 그만큼 행복해지는 거란다 “
그렇게 얹잖았던일도
또 다른 행복으로
보태어가는 법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구겨진 하늘을 이고
지병으로 병원에 검진을 받으러 온 할아버지
“할아버지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
“20살”
의아해 쳐다보는 의사를 보며
응50살은 너무 무거워서
집에 두고 가볍게 20살만 가지고 다녀!"
옆에 있던 간호사도 빙그레 웃습니다
텅 빈 시간을 아픔 위에 풀어놓아도
애태우지 않고 넉넉하게 차오르는 행복이
하루하루 할아버지와 함께 합니다
할아버지는
지석이가 잠든 새벽녘부터
빈병과 폐지를 주워가며
오백 원 천 원
생기는대로 돈을 모으고 있습니다
온몸이 저울이지만
부지런한 걸음으로
하루를 일주일처럼 열어 가든 어느날
새벽녘에 나가 박스를 줍고 들어와 보니
자고 있어야 할 지석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골목길마다 헤매 다니며 애타게 찾고 있는
그때
낮 선번호로 핸드폰이 울려댑니다
“네... 아이고... 감사합니다
곧 가겠습니다 “
서둘러 할아버지가 도착한 곳은
“지구대”
“지석아 말도 없이 혼자 나가면 어떡해.... “
놀란 가슴을 표시하려는 듯
큰소리를 내어봅니다
“할아버지 올 때까지는
절대 혼자 나가지 말랬는데
왜 나왔어 왜... “
자신도 놀란 나머지,,
울고만 있는 지석이가
할아버지 앞으로 뭔가를 내밀어 보입니다
“귀마개“
새벽바람맞으며 박스를 줍는 할아버지가
깜빡하고 가져가지 못한 귀마개를
추울까 봐 가져다 주려다
길을 잃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지석이를 꼭 끌어 안고서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는
할아버지 마음의 오선지엔
삶의 무게가 만들어준 거미줄만
그려져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할아버지와 지석이의 최고의 날입니다
피아노를 사기 위해
그동안 한 푼 두 푼 모았던
돼지저금통을 개봉하는 날이거든요
“우와.... 할아버지 돈 엄청.. 많타
누가 줬어 할아버지“
지석이의 입은
간장종지 보다 더 커져있습니다
보태도 덜어지는 삶 앞에서
이런 작은 행복이 그저 고맙기만 한 할아버지
“산 위에서 ♩부는 바람♬시원한♩바람♪”
지석이 등 뒤로 방안 가득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 를 들으며 할아버지는
형광등 아래 거미줄이 되어 걸린
빛바랜 가족사진을 올려다보며
기쁨에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애미 애비야 듣고 있니....."
얼마 멀지 않은 시간이 흘러
세상과 이별을 앞둔 할아버지
이별의 순간을
내가 선택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혼자 떠날 채비를 하는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지석이와 걸었던 이 길이
다시 걸어보지 못할 길이 되어가기에
지난날을 떠올리며
혼자 걸어보고 있습니다
유치원 때부터
바람따라 나부끼는 이름 없는 풀들 사이로
손잡고 이 길에 놓인 행복을 밟으며
실담 같은 서로를
의지할 수 있었던 그때를 회상하며
눈물에 젖고 마는 할아버지
자신이 가고 나면
지난날 만나고 떠나보낸
숫한 날들을 꺼내어보며
힘들어할 지석이를 생각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지
지나는 바람도 오래오래 쉬었다 갑니다
늘 만나고 싶었던 휴식을
병상에 누워서야 찾을 수 있나 봅니다
이별 많은 세상에서
할아버지와 손자라는 이름 끝에 매달린
갇혀있는 가슴을 열어 보이며
먼 한숨 긴 호흡으로 말을 건넵니다
“이 핼비가 떠난 뒤 힘든 일이 생기면
그땐 눈을 감아보렴
영원히 너를 사랑할
할아버지는 바람 속에도 있단다 “
그렇게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와
이별을 천천히 알아가는 손자는
까만 밤이 아무리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달이 되어갔습니다
오늘은 장애우들을 위한
피아노 연주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할아버지 임종을 앞두고
피아노 연주회를 가야 하는 지석이
하늘길 따라 울려 퍼지는
지석의 피아노 소리가 끝마치든 그때
할아버지는
행복한 미소로 눈을 감은채
하늘에 별이 되고 말았습니다
연주회를 끝내고
할아버지에게 달려간 지석이는
아무것도 씻어내지 못하는 비처럼
울부짖으며 말했습니다
“눈을 뜬 순간부터 당신은 제게 있었습니다
마지막 길을 함께 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할아버지.... 사랑해요 “
준비할 수 없는 이별 앞에
가슴으로 추억하는 할아버지 묘소에는
이런 글이 놓여있었습니다
“당신 손자가 한 일은
세상에 작은 빛이었다고
용서해 달라는..... “
출처/노자규의 골목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