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행복
출처 : 노자규의 .. |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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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행복
보슬비가 내려서는 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리던 트럭 한 대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디 하나 성한 데라곤 없는 트럭은
이젠 쉬고 싶다
말하고 있었구요
남자는 그리움을 만난 듯
미소 한 모금을 입에 물고선
무언가를 내려다보며
휴지로 열심히 닦고 있습니다
“비에 젖은
투명 비닐 속에 장미꽃 한 송이“
오늘은 아내의 생일입니다
하얀 김 따라
피어나는 아내의 미소 앞에는
우동 한 그릇과
단무지뿐인
생일상을 마주하고 앉았습니다
마주친 어쩔 수 없는 슬픔 위로
생일선물이라며
투명한 비닐에 싸인
장미 한 송이를
멋쩍은 듯 내어놓는 남편
지나는 행복을 만난 듯
웃고만 있는 아내
아내는
어릴 적 연탄가스 중독으로
말을 하지 못하지만
부부는 마음으로 말하고
가슴으로 사랑하면서
세상의 소리를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거리로 나온 부부는
두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아내가 조금 힘들어 보이면
한 발 앞서 걸으며
아내를 끌어주는 남편
별과 달이 비쳐준 까만 밤은
부부의 동행에
어느새
새하얀 도화지가 되어
묵음으로 전해지는 언어들로
그들만의
사랑이야기를 그려주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오는 지하철 안에서
두 손을 꼭 잡고 나란히 앉은
남편이
2X6=이라고 물어면
아내는
12라고 남편의 손등에 그려줍니다
3X8은 하고 다시 물으면
21을 그려준 아내에게
넉넉하게 차오르는
사랑으로 미소지으며
틀려도 몰라도
그저 같이하는 행복하나면
충분하다 말하고 있었습니다
식당일에 지친 아내가
어느새 잠들어 있습니다
손을 꼭 잡은 채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입가엔
흐뭇한 미소가 떠나질 않습니다
아내는
고개를 숙인 채 꾸벅꾸벅 졸더니
이젠 유리창에
자꾸만 머리가 부딪칩니다
나머지 한 손을
창가에 가져간 남편은
살며시 아내의 머리 뒤에 가져다 놓습니다
그 손위로 아내의 머리가
베개를 벤 듯 살며시 포개어집니다
장미꽃 한 송이는 손에 꼭 쥔 채 말이죠
잠든 아내를 바라보며
남편은
그들만의 사랑의 언어로 말합니다
“당신을 웃게 하는 게
나의 운명이라고요...... “
펴냄/노자규의 골목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