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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새김] 너무 시끄러운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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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별볼일 없는 글이나 끄적거리는 백면서생의 팔자를 타고 났으나, 책상머리에 앉아서는 계통없는 음악에 취해 남의 글이나 염탐하는 천하의 한량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남의 블로그를 기웃거리며 낄낄거리던 차에 jamieinthedark@jamieinthedark의 시크한 언사에 움찔하며 반성의 마음으로 이 글을 남긴다.

심지어 이 글 조차 옛 글의 되새김이란 사실이 부끄럽다. 3개월 전 스팀잇에 첫발을 디뎠을 때, 지금은 잠수중인 dakfn@dakfn 만이 보팅을 해주었던 이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책이기에 나의 게으른 천성을 핑계로 다시 한번 무대에 올린다. 내 무대는 초라하나 이야기는 그렇지 않다.


내 사랑, 늙은 한탸.

나의 책 중에 이렇게 고매한 주인공을 보았던가. 한탸는 체코의 가난한 시민이자 노동자였으며, 제의(祭儀)를 집행하는 제사장인 동시에, 예수와 노자 곁에 선 철학자였다. 그는 심미안을 가진 감성어린 예술가였다. 또한 한탸는 누군가의 가족이자 친구였고, 어린 시절 한 집시 여자를 사랑했다.

35년 간 계속된 그의 업(業)은 폐지를 압축하는 것이었다. 이는 J.브로노프스키의 「인간의 위대한 등정(登頂)」이었다. 한탸는 사랑받지 못했으나 인류의 모든 문명을 대표하여 폐지를 압축했고 결국 완벽한 인간으로서 십자가에 매달렸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지만, 햔타는 신이 없는 세계 속에 철저히 인간의 길을 찾았다. 그는 쥐스킨트의 좀머 씨처럼 자폐적인 존재로 몰락하지 않고, 저 하늘 넘어 존재하는 사랑과 연민을 여기 대지로 끌어내렸다. 한탸는 사랑했던 모든 것을 간직한 채, 온전한 자신의 세계에서 자멸했고 그렇게 존엄을 지켜냈다.

이 소설은 마치 작가 보후밀 흐라발을 압축기에 넣고 짜낸 듯 하다. 이 핏빛의 진액은 끔찍하고 처절하게 진득거리면서도 고귀하고 성스러운 빛깔을 낸다. 이러한, (이 책의 제목처럼) 소설 속 극단적 대비는 오직 실존의 영역에서만 해소된다. 실존이란 무엇인가?

의미를 부여해서라도 이 허무한 인생을 살아내야한다는 부조리.

이 부조리한 저항의 세계에서 보후밀 흐라발의 이야기는 생의 아름다운 찬가로 승화된다. 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에 접어들자, 내 주위는 자신의 압축기에 짖눌린 성인의 핏빛 진액이 흥건했다. 나는 이토록 사랑스런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나의 사랑은 불타올랐지만, 엄숙하고 숙연했다. 나는 태고적 종교의 기원과 마주하는 듯 했다. 진실로, 그 피비린내 풍기는 신은 인류 역사 상 단 한번도 위대하지 못했다.

나의 위대한 한탸. 나는 책을 덮으며 한탸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나는 꿈 꾸었다.
나중에 백만장자가 되어
야광 바늘과 숫자가 달린 시계를
모든 도시에
선사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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