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카비입니다. 얼마 전 @kimthewriter
님의 글에서 신카이 마코토를 보고 뒤늦게 관람한 <너의 이름은>이 떠올라서 리뷰 남깁니다.
너의 이름은.
역시, 신카이 마코토 감독 만의 특유의 뽕끼가 여지없이 발휘되었다. 결정적인 장면들에서 느닷없이 달려드는 육성 OST들. 이 음악들은 스토리 전개 상에 잔잔히 깔리는 배경음악이 아니다. OST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영화는 뮤직 비디오로 변한다. 이 애니는 처음부터 뮤직 비디오로 시작하더니, 중간에도 가수가 몇 곡 내지르고, 마지막까지 뮤직 비디오로 마무리한다. <초속 5센티미터>로 신카이 마코토를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이 떠올랐다. 영화 중간에 등장했던 OST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는 와우, 꽤 충격적인 구성이었다. 영화 중간에 음악이 등장하면서 몽타주 식의 빠른 화면전환으로 분위기를 잡는 기법은 이미 기성세대의 겉멋든 연출이 되버린 시기였다. 전형적인 신파 연출을 버젓이 자신의 작품의 중요한 구성을 삽입하는 것. 뽕끼다. 바로 신카이 마코토식 뽕끼다.
실제로 이 뽕끼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부류가 존재한다. 「미야자키 하야오」나 「호소다 마모루 」 식
연출에 익숙한 제패니메이션 팬에게는, 신카이 마코토는 거창하고 요란하다.
2017년 1월에 개봉한 <너의 이름은>은 일본 관객수가 1,800만명이 넘었고, 한국은 371만명을 동원했다. 한국에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중 가장 흥행했던 지브리 스튜디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 261만명을 넘었다. 이렇게 보면, 일본과 한국의 대중은 신카이 마코토의 뽕끼를 좋아한다고 볼 수 있겠다. 좋아한다는 걸로도 충분하지 않고, 열광한다고 할 수 있겠다. 왜 그렇게 열광하는 걸까?
<너의 이름은>에는 이야기를 구성하기 위한 다섯 가지 익숙한 이미지들이 있다. 각 이미지들은 퍼즐 조각처럼 이리저리 맞춰지면서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첫째, 기억 상실의 이미지. (영화 장수상회)
둘째, 남녀의 육체 전이 이미지. (드라마 시크릿)
셋째, 시간차를 가지는 공존 이미지. (영화 시월애)
넷째, 혜성 충돌에 따른 종말 이미지. (영화 딥임팩트)
그리고, 샤머니즘 이미지. 특별한 사연을 가진 무녀 가문과 사람의 침으로 만든 술. (애니 에스카플로네)
이러한 각각의 이미지들은 새롭다고 말하기 어렵다. 앞서 제시한 사례들처럼 이미 어느 영화나 책의 소재로 다루어졌던 것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미지를 죄다 섞어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든다면 어떨까? 쉽지 않은 작업이다. 이미지가 많아질 수도록 이야기는 논리적 결함이 많아지고 산만해진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런 이미지들을 관객이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세련되게 버무려 낸다. 이야기의 논리성을 지켜가면서, 관객의 궁금증과 재미가 극대화 될 수 있도록 이야기의 배열에 많은 신경을 썼다. 미츠하와 타키 사이에 육체 전이가 존재하고, 서로 다른 시간에 공존했다는 내용을 관객에게 전달한 구성은 매우 뛰어났다.
또한, OST와 뮤직비디오식 이미지 전개는 앞서 말한 것 처럼, 신카이 마코토의 특유의 뽕끼인데, 이 음악들은 관객의 감정을 뻥튀기 시키는 신파적 요소이면서도, 연극의 사이에 열고 닫는 막과 같이, 지난 이야기를 정리하고 압축시켜 다음 이야기를 전개할 준비 장치로 작동한다. 신카이 마코토는 감정 뻥튀기용 음악에 서사의 논리적 기능을 추가함으로써 자신의 뽕끼를 세련되게 만들었다.
물론, 제페니메이션 계의 "램브란트"로 불리는 특유의 영상미와 OST의 깊이 있는 가사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세련미를 극대화 시킨다.
아쉬운 부분은 엔딩장면인데,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남녀 주인공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면이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바다가 들린다>와 신카이 마코토의 전작인 <초속 5센치미터> 의 엔딩 장면이 떠올랐다. 역시...이런 류의 마무리에는 <바다가 들린다>를 능가하기 어렵군요.
끝으로, 내가 꼽은 최고의 1분은 산 정상, 황혼의 시간에 시공을 초월해 미츠하와 타키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는 가슴이 저릿했다. 내 깊숙히 사라진줄 알았던 애뜻함이 꿈틀거렸다.
현실과 꿈이 뒤엉키는 시간
눈을 껌뻑인다.
보이는 듯 마는 듯
다가오는 듯 멀어지는 듯
내가 잃어버린 너
내가 잃어버린 너의 이름.
나도 무언가를 찾아 서성였던 것 같은데...
어쩌면 나는 그 서성임조차 잊어버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