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쌍둥이가 태어났다.
아내의 짐을 두 손에 들고 고위험 산모 분만실에 들어서던 순간부터..
수술 전 아내의 손을 꼭 잡았던 순간.
기도하는 장모님의 간절히 모아진 손.
수술실에서 나오던 아이들과의 첫만남.
수술 직후 마취에 덜 깬 아내가 어눌하게 뱉어낸 첫 말은, 아이들의 안부.
수술의 통증을 견뎌내던 아내와 산후 조리원에서의 첫 모자동실.
정신이 없이 흘러간 집에서의 첫 일주일.
매번의 찰나는 폭풍처럼 휘몰아쳐 정신을 못차렸지만
돌이켜보니 깊고 아득하다.
이제 침대에 나란히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이 추억은 진행 중이며 더욱 깊고 아득해지리라.
대학병원의 신생아실은 중환자실과 같은 층에 있었다.
나는 같은 층에 위치한 중앙 수술실의 대기실에서
중환자들과 산모들의 이름이 섞인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니터에 표시된 아내의 상태가 "대기 중"과 "수술 중"으로 변하는 동안
죽음과 탄생이 번갈아 수술실의 문턱을 넘었다.
이윽고 아내의 이름이 불리며 간호사들이 두개의 보호용 카트를 밀고 나왔다.
나는 카트에 들러붙어 아이들을 살폈다.
카트는 간호사의 손에 밀려 신생아실로 향했고 장모님과 내가 뒤따랐다.
장모님은 짧은 복도를 걷는 내내 눈물을 닦았다.
수술 후 병동으로 옮긴 아내는 온전히 깨어있지 못하고 비몽사몽했다.
몸에는 이런저런 의료 장치들을 치렁치렁 매달려 있었다.
전투가 치열했구나. 기진맥진한 아내는 생동감에 바둥거리는 두 아이와 대비되며
나는 죽음과 생명이 교차하던 수술실을 생각했다.
밤 늦게 병동은 고요하고 아내는 잠들어 있다.
어디선가 조근거리는 TV소리가 들려온다.
내 의식은 밤이 새도록 흐리멍텅했고 탄생과 죽음의 거리를 재고 있었다.
탄생은 찰나였다.
죽음도 그러할 것이다.
나는 자신 삶도 지탱하기 버거운 허약한 아비로서
두 아이의 탄생을 마냥 기뻐하지 못한 채
울고 웃고 아프고 사랑해야 할 많은 날들과
그리고 지금 이 탄생의 맞은 편에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밤새 이 아이들이 살아갈 날들을 생각했다.
생의 첫날을 맞이한 아이들을 위해 아비가 축복을 빌 수 있다면
그 신이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오래 전 버렸던 신을 찾아헤매었다.
그 밤에 오래도록 한자리에 앉아있었다.
[커트 보네거트가 임종을 준비하며 쓴 기도문 ]
신은 진흙을 창조했습니다.
그러나 외로웠습니다.
그래서 신은 진흙 덩어리에게 말했습니다. "일어나라"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덕과 바다와 하늘과 별, 내가 빚은 모든 것을 보라."
한 때 진흙이었던 나는 이제 일어나 주위를 둘러 봅니다.
운좋은 나 그리고 운좋은 진흙
진흙인 나는 일어서서 신이 만든 멋진 풍경을 바라 봅니다.
위대한 신이시여!
오직 당신이기에 가능한 일. 결코 나는 할 수 없는 일.
당신 앞에서 나는 그저 초라한 존재일 뿐입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내가 소중하게 느껴지는 유일한 순간은
아직 일어나 주변을 둘러볼 기회를 갖지 못한 다른 모든 진흙들을 떠올릴 때,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얻었지만, 진흙들 대부분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 영광에 감사드릴 뿐.
진흙은 이제 다시 누워 잠을 청합니다.
진흙에게 어떤 기억이 있을까요.
내가 만나봤던, 일어서 돌아다니던 다양한 진흙들은 얼마나 놀라운지.
나는 내가 만났던 그 모든 것들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