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먹vs찍먹 논쟁은 언제나 뜨거운 화두다. 부먹파와 찍먹파의 대립이 확고하고, 어느 편도 절대 굽히지 않는다. 이를 빗대 <탕수육으로 본 조선 붕당의 이해> (https://pgr21.com/pb/pb.php?id=freedom&no=42883) 같은 글도 자주 나온다.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논쟁이지만, 나는 이 논란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아직까지 장난이려니 생각한다.
부먹도 찍먹도 아닌 다른 방법으로 탕수육을 먹기 때문이다.
담먹을 아는지. 담가서 먹는다. 나에게 탕수육은 담먹이다. 철들기 전부터 그래왔다. 누군가에게 배웠는지, 직접 익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렇게 먹었다. 가족들의 모습을 따라했을 수 있고, 어린 욕심에 더 맛있게 먹으려고 시도해봤는지도 모르겠다.
나 같은 사람이 소수 있는 모양이다. 일단 용어가 존재하고, 검색하면 극히 적지만 결과가 나오긴 한다. 부먹파와 찍먹파 사이의 갈등이 심해져 타협이 불가능할 때의 중재안이라고 한다. 이런 설명이 다소 황당하다.
탕수육 그릇에 소스를 부으면 케첩 바른 샐러드까지 둥둥 뜨게 된다. 맛을 버리는 것은 둘째고 멋을 버린다. 실패 가능성도 있다. 손에 소스가 묻거나 대량의 소스를 흘려버릴 여지가 있다. 담먹은 그렇지 않다. 소스 그릇 자체에 탕수육을 푹 담그는데 실패할 리 없다. 잘못 쏟을 우려가 없고, 부먹보다 더 진하게 소스 밴 탕수육의 풍미를 느낄 수 있다.
형태로는 찍먹에 가깝고 맛은 부먹에 가깝다. 찍먹보다 편리하고, 부먹보다 맛이 좋다. 양쪽의 상위호환인 것이다. 몇덩어리 골라 소스에 퐁당 빠트린다. 그러면 일부는 바삭한 튀김으로서의 찍먹을 맛볼 수 있고 일부는 소스 스민 부드러운 부먹을 느낄 수 있다. 양쪽 모두를 맛볼 수 있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부먹이나 찍먹보다 우월하면서 세련된 방법이다.
이런 방법을 사람들이 진정 모르는지, 모르는 척 장난인지 아직도 의심스럽다. 위에 언급한대로 갈등 사이에서 타협안으로 모두가 만족할 묘안이기도 하다. 제 3의 길이라고도 할 법하다. 나는 변증법의 정반합 중 ‘합’에 해당하는 최종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진화의 종착점이라 본다.
극단적인 이분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더 나은 제3의 길이 있고, 때로는 제4, 제5의 길도 가능하다. 그래서 짬짜면과 볶짜면, 후라이드-양념 반반이 있는 것이다. 한쪽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모두가 웃을 수 있는 길은 의외로 많다.
논란이 되는 것들을 양분 구도의 이분법으로 생각하지 말자. 두개 중 하나로 나뉠 정도로 세상은 단순하지 않다. 사람들은 싸우기 좋아해 많은 논쟁을 만든다. 그러면서 파벌이 생긴다. 웃어 넘길 장난일 때도 있지만 난처한 상황도 있다. 이것만 생각하자. 본질은 분쟁이 아니라 해결이다. 논란이 있을 때, 모두가 웃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그래도 고민은 있다. 싸우기 좋아하는 극단주의자는 무시해야할까, 포용해야할까? 모르겠다. 오늘 저녁은 탕수육을 시켜 먹으며 모두가 웃을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싸움을 그치고 색다른 해결책을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