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일, 삼일천하

coldbeec(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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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삼일. 마음 먹은 것이 딱 3일 간다. 처음 계획은 거창하다. 지구라도 정복할 기세다. 보지도 않을 토익책을 세트로 지르고, 가지도 않을 학원이며 헬스장을 잔뜩 끊어놓는다. 새해 계획은 또 어떤가. 실행만 하면 연말엔 재벌이 될 것 같다. 최대 3일이면 끝날 계획을 많이도 잡는다. 그래도 3일 동안은 세상이 내 것 마냥 행복하긴 하다.

코인 공부를 하다가 부족함을 느꼈다. 1만배 폭등을 기원하며 주시 중인 300-500위권 잡코인은 정보가 참 없었다. 그나마 있는 정보도 전부 영어였다. 내 영어는 아주 짧아서, 좀 그럴듯한 단어가 나오면 매번 사전을 뒤적여야 했다. 백서 이해와 해외 트윗, 단톡방 들을 이해하기 모자랐다. 영어 원서를 읽으며 독해력과 어휘력을 키우기로 결심했다.

무려 서점까지 가서 쉬워 보이는 영어소설을 샀다. 드래곤 어쩌고 하는 제목이었다. 대충 불 뿜는 용이 나오고 마법사 이모와 공주, 개구리로 변한 왕자가 등장하는 12살 여자아이를 위한 책이었다. 돈 낭비면 어쩌나 하고 긴장했는데, 처음 몇 장은 심지어 재밌었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엔 돈낭비였다. 공주가 순간이동 마법으로 이상한 미로에 떨어지면서부터 나도 길을 잃었다. 모르는 단어가 페이지당 10개쯤 쏟아지며 재미가 없어졌다. 10페이지쯤에서 그만뒀다. 내가 본 페이지까지는 밑줄이며 동그라미가 가득했다. 아주 걸레짝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읽은 흔적조차 없다. 새책이다.

토익책이며 문법책도 그랬다. 처음부터 1/3 지점까지는 책을 아주 지저분하게 만들었다. 여백마다 빼곡이 필기 하고 문제도 풀고 밑줄도 그었다. 딱 초반만 그렇다. 중간부터는 아예 펼쳐본 표시도 흔적도 없다. 나는 매사 한결 같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나중은 미약하다. 용두사미에 미완결이다. 처음 뿌린 떡밥은 회수도 못했다.

처음 기세는 등등하다가 며칠쯤 뒤엔 슬슬 꼬리를 내리며 안 될 이유를 찾는다. ‘역시 이건 무리였어’ 혹은 ‘이걸 해서 뭐해?’ 하며 스스로 합리화한다. 자괴감이 든다. 다만,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른 이들도 비슷한 것 같긴 하다.

도서관에 가보면 안다. 10권 분량 넘는 대하소설을 아무거나 집어보자. 토지, 태백산맥, 아리랑, 임꺾정, 혼불 등등. 1권은 아주 지저분하다. 손때 묻은 흔적이 다분하고 책은 너덜너덜 하다. 2권부터는 어떨까. 상태가 양호하다. 그러다가 7권 8권쯤 되면 심지어 누가 빌려간 흔적조차 없다. 1권은 엉망인 책이 더 훼손될까 조심조심 읽어야 하지만, 2권을 넘어가면 아주 쾌적하게 볼 수 있다.

1월엔 금연 결심으로 담배판매량이 급감하고, 새해 계획의 영향으로 학원이나 헬스장 등지의 매출은 늘어난다고 한다. 명절이 있는 2월을 지나 3월이 되면 평소와 같아진다고 한다. 사람들은 작심삼일 계획으로 3일쯤 불타오르다 식는다. 나만 그런줄 알았는데, 사람들은 비슷한 모양이다. 위안을 받는다.

내가 일기를 쓰기로 하고 며칠 만에 관뒀더라? 다이어트는? 운동은? 공부는? 다들 나같은 줄 알았다. 반전이 또 있었다.

스팀잇에 운동일기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끊어지지 않은 채 기록을 이어나간다. 운동일기 xx일 차 같은 제목이다. 이런 이들은 과연 무엇일까. 나와는 다른 존재일까? 드래곤이나 유니콘처럼 전설로만 알려진 환상의 존재는 아닐까? 내 견해로는 결심은 3일만에 끝나야 옳다.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으니 환상의 존재라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