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적의 일기였다. 4학년 때 일기에 은비가 왔다고 적혀 있었다. 처음엔 내 눈을 의심했고, 그 다음엔 설렜다. 그런 여자친구가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었지만 알 수 없었다. 은비가 누구인지 찾아보려 애썼다. 이상했다. 내 기억 어디에도 그런 예쁜 이름의 여자애는 없었다. 여자애가 우리집에 놀러왔을 가능성도 극히 낮았다. 그런데 은비에 대한 언급은 달랑 한줄로 끝이었고, 이후 내용은 아무 상관없는 말만 잔뜩이었다.
결국 깨달았다. 띄어쓰기 오류였다. ‘오늘은 비가 왔다’를 잘못 쓴 것이었다.
내 못난 작문 실력이 가공의 그녀 은비를 만들었고, 나는 깜빡 속았다. 어린날의 나에게 속았고, 잠깐이나마 스스로를 과대평가했다. 그 상황이 재밌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해당 일기가 부모님 댁에 있는 것이 아쉽다. 사진을 찍어 올릴 수 없으니까.
아무튼 오늘은 비가 왔다. 이 비를 바라보며 나는 있지도 않은 은비를 떠올린다. 허구의 그녀가 왠지 그립다. 비가 내리면 마음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차분하게 옛날 생각을 하게 된다. 일기는 그 자체로 추억이지만, 일기를 보고 놀랐던 일도 추억으로 남아있다. 추억에 대한 추억이다.
일기를 쓰는 초등학생인 내가 있고, 그걸 읽고 있는 대학생인 내가 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30대의 내가 있다. 이 셋은 같은 사람일까?
추억은 미화된다. 소소한 사건도 영웅담처럼 기억된다. 허세나 허풍이 아니라 기억 그 자체가 오류일 때도 있다. 기억이란 확실하지 않다. 없었던 일을 기억하거나 있었던 일을 기억 못해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진짜 은비가 있었다고 믿어도 괜찮을 것이다. 은비가 왔다는 기록이 존재하니까. 기억이 없는 건, 내가 그저 잊었을 뿐 아닐까. 조금 슬픈 접근이긴 할 테다.
은비가 나타나길 기다린다. 봄비처럼 필요한 때에 나타나주길, 혹은 예보되지 않은 소나기처럼 갑작스레 등장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