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에는 꽃게를 먹었습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저를 제외한 저희 가족이 꽃게를 먹었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꽃게를 저녁에 먹었다고 한 건
저녁 반찬의 주된 메뉴가 꽃게였기 때문입니다.
다들 꽃게를 먹었다고 하니
저도 그냥 오늘 저녁은 꽃게를 먹었다고 착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전 꽃게를 먹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꽃게를 못 먹는 건 아니고 그냥 먹지를 않습니다.
꽃게는 일반 음식과 달라서
먹으려면 너무 많은 수고를 들여야 하죠.
일단 손을 전혀 쓰지 않을 수가 없는데다
살을 발라먹는 것도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니까요.
먹기 위해 그렇게 노력을 한다는 것이 너무 귀찮은 저는
그래서 아예 꽃게에 손을 대지 않습니다.
물론 가족들은 저에게 꽃게 살을 발라줄테니 좀 먹으라고 합니다.
가족들은 저를 사랑하니까요.
하지만 그럴 수 있나요.
제가 귀찮아서 먹지 않는 걸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해달라고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 단호히 거절을 합니다.
오랜 시간 그래오다 보니 이제는 아예 전 꽃게를 안 먹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꽃게를 먹은 게 언제인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꽃게를 먹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
열심히 꽃게를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는 건 나름대로 흥미롭기도 한 것 같습니다.
가만히 보면 꽃게를 먹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꽃게를 먹는 자세(?)에서도 우리 삶의 단면을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면 너무 지나친 걸까요.
하지만 어떨 때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고난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팔짱 끼고 유유히 쳐다보는 기분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우선 꽃게를 먹을 때 최대한 손을 쓰지 않고 오로지 치아의 힘으로만 먹는 사람이 있지요.
몸통이든 다리든 양양양양 씹으면서 말입니다.
이렇게 먹는 경우에는 속도가 빠르고 그런 만큼 수고를 좀 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거 같아요.
하지만 반면에 또 그만큼 놓치는 살도 많죠.
뭐든지 쉽게 빨리빨리 하다보면 좋은 점도 있지만
반면 대충대충이 함정처럼 필연적으로 따르게 되는 것에 갈음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 굉장히 심혈을 기울여 꽃게를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위로 껍질을 가르고 속살을 남김없이 긁어내죠.
이런 경우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지만 얻는 건 많은 것 같습니다.
거의 놓치고 버리는 살이 없다시피 하니까요.
말하자면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가 이런 경우에 해당될 것 같은데
그러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또 다른 건 정말 어이가 없다고 할 수 있는 건데요.
전에 어떤 지인이 말하기를 자기는 누가 살을 발라주지 않으면 꽃게를 안 먹는다고 하는 겁니다.
원래는 여동생이 살을 늘 발라줬는데
여동생이 결혼을 하더니 꽃게 살을 안 발라줘서 먹지를 못한다는 거에요.
순간 어안이 벙벙했죠.
겉으로 말은 못했지만 어떻게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남이 해주기만을 바라고 또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우니
정말 살면서 이런 것만은 자제해야 할 거 같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어떨까요.
전 사실 좀 많이 실용적인 스타일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합니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거 안 먹고 말지 귀찮은 건 싫다는 건데
저같은 경우 시간도 벌고 노력도 할 필요가 없으니 좋긴 하지만
꽃게를 먹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요.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꽃게가 아니더라도 세상에 널린 게 음식인데요.
길이 아니면 굳이 갈 필요가 있나요.
이제 다시 말하자면 오늘 저녁에 전 가족들이 꽃게를 먹을 때 혼자서만 계란말이를 먹었습니다.
가장 평범한 거지만 제가 평소에 좋아하는 음식이죠.
전 계란말이만 있어도 행복하게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주절주절 늘어놓긴 했지만 사실 음식이 뭐 별 건가요.
맛있게 그리고 편하게 먹으면 그만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