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을 개돼지로 대우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A. 앞에서는 온갖 아부를 떨고 기만을 부리다 뒤에서는 그 아부와 기만에 놀아나는 시민들을 비웃고 경멸하는 것. 시민을 개돼지로 만드는 것. B. 시민들을 너무 사랑하고 걱정하여 폭력적인 게임, 포르노 등 나쁜 것들을 철저히 금지하고 강아지들 안의 온갖 잠재적 개돼지화의 씨앗을 뿌리 뽑을 궁리를 하는 것. 이를 따르지 않는 개돼지들을 경멸하는 것. 착한 강아지들이 개돼지가 되지 않도록 막는 것. 이 두 가지 태도는 국가와 위정자들의 머릿속에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 자신 역시 동료 시민들에게 품고 있는 암묵적인 혹은 공공연한 관점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자유는 무척 낯선 개념이다. 한쪽에서 그것은 개돼지들에게 던져줄 뼈다귀다. 반대쪽에서 그것은 위험하고 무책임하므로 중성화 수술을 시켜야 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인간의 자유 그 자체, 쾌와도 도덕과도 구분되는 자유 그 자체의 가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조소한다. 전자가 오직 지배와 복종, 이익과 손해의 진흙탕만을 믿는다면, 후자는 계몽주의되 인간의 자유에 대한 의식이 빠진 유치한 개몽주의다. 그렇게 이 두 공학자들은 각자의 개돼지를 만들어낸다. 개돼지란 오직 자유 없는 인간일 뿐이다. 인간을 인간으로, 자유인을 자유인으로, 동료 시민을 동료 시민으로 대우하는 일은 의외로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