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마그리트, <집합적 발명>. 이미지 출처)
많은 현대인은 사람보다 동물을 더 사랑한다. 동물은 사악한 인간에게 괴롭힘당하는 약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물은 다른 약자들처럼 지저분하고 추하지 않으며 귀엽고 사랑스럽다. 인간의 도덕성은 사랑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것을 향한다. 사실 옛말에도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랬다. 동물은 사람과 달리 내가 보살피고 쓰다듬어줄 수 있다. 동물은 배은망덕하지 않고 확실히 보답한다. 혀를 내밀고 꼬리를 흔들며 내게 전적으로 의지한다. 전적으로 의지함으로써 보답한다. 그렇게 동물은 내 소유욕과 허영심을 만족시켜준다. 동물은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어떤 불평도 쓸데없는 자기주장도 하지 않는다. 반면 인간관계에는 얼마나 많은 말과 불평과 트러블과 상처가 있는가? 솔직히 인간은 다 죽어도 좋을 만큼 사악하고 꼴 보기 싫다. 반면 동물의 눈은 얼마나 사랑스럽게 반짝이며 나를 마냥 신뢰하고 의존하는지! 얼마나 마냥 따뜻하게 존재하는지! 인간관계는 차갑고 더러운 이해관계뿐이다. 그러나 동물의 눈은 그 모든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나를 응시하고 사랑해준다. 이 순수함을 위해서는 분양비와 사료값 따위 얼마든지 쓸 수 있지. 인간 따위 필요 없다. 동물이야말로 가족이다. 그런데 사악한 인간들은 여전히 얼마나 많은 폭력을 동물에게 저지르는지! 오만한 인간중심주의를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지껄이는지! 아아, 나에게 안겨오는 이 녀석들의 반짝이는 눈을 보라. 살아 움직이는 앞발을 보라. 이들은 인형(人形)이 아니다!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존엄한 존재다! 우리는 주종 관계가 아니다! 동물이야말로 친구(hetaira)다! 동물이야말로 가족이다! 동물이야말로 인간이다! 나는 오직 동물에게서만 친구를 보고 가족을 보며 인간을 본다. 주인이라니, 참으로 오만하고 불쾌한 개념이야. 우리는 함께하는 가족이고 동반자일 뿐인데! 나는 기껏해야 보호자(the catcher in the lie)일 뿐인데! 하지만 저 개(papillon), 저 개의 분명한 서열 본능은 확실히 나를 불쾌하게 하지. 저 녀석들은 모든 것에 서열을 매기고 철저히 그에 따라 복종하며 그에 따라 물어버려. 짐승(bastard) 같은 놈들. 확실히 개는 나를 주인으로 만들지. 엄격하게 명령하는 역겨운 주인. 역겨운 계급과 서열과 권위의 논리가 여기서도 반복되다니! 포르코 로소가 말했듯, 그딴 건 인간들끼리나 많이 하라고! 아아, 고양이! 자유롭고 도도한 이 팅커벨이 나에게서 주인의 짐을 덜어줘. 그래, 나는 너에게 명령하는 주인이 아니야. 우리는 주인과 종(breed)의 관계가 아니야. 여기엔 국가도 법도 주인도 노예도 없어. 우리는 동등한 친구야. 내가 너를 사랑하듯 너도 스스로 나를 사랑하는 거지. 너는 자유롭고 도도하게 나를 사랑하고 심지어 질투심에 불타오르지. 아니, 아니, 아아, 주인님, 저야말로 당신의 분부를 따르는 집사입니다. 기르는 것이 아니라 봉사하는 것일 뿐. 은혜로운 주인님께서 불편한 주인의 의무를 가져가주셨군요. 권력을 가져가주셨군요. 아아, 복종과 봉사는 참으로 기쁜 것! 저는 기쁨(petting)을 아는 몸이 되었어요. 더군다나 주인님은 저 쓰레기! 같은 인간들과 달리 무리한 갑질은 하지 않으시지요. 주인님은 작고(petit) 자유의지가 없으며 중성(non-sens)이시니까요! 그럼에도 주인님은 철저히, 철저히 능동적으로 저를 사랑해주시는군요. 좋아, 좋아, 잠들기 전에 마실 따뜻한 우유, 새하얀 우유를 가져올게요. 주인님, 뭐든지 분부하세요. 저를 선택할 수도, 저를 해고할 수도, 저에게서 도망칠 수도 없으시지만요. 저는 저를 사랑해주시는 주인님을 사랑해요. 동물은 계몽되어 시시하고 피곤해진 인간 사회를 대체하는 마지막 계몽의 네버랜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