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문제가 뭔지 알아? 웬만한 성범죄자가 멀쩡하게 생겼다는 거야.
내가 스무 살 때 혼자 내일로 여행을 간 적이 있거든. 근데 아는 분이 자꾸만 연락이 오는거야. 자기도 여행 중이다, 어디쯤이냐, 자기 차로 편하게 같이 다니자 등등. 부산에서 시작된 스토킹은 보성까지 이어졌어. 혼자 다니겠다는데도 득달같이 연락해서 결국 얼굴을 굳이 보고서야 사양의 뜻을 받아들이더라."
"근데 그 사람 유부남이었어. 애만 둘이었어. 결혼생활? 매우 좋았어. 진짜 화목한 가족이었거든. 부부가 서로 아끼고 아이들 잘 키우는, 소위 '멀쩡한' 집이었어. 다만 남편은 연말에 혼자 여행다니는 아는 스무 살 여자애 쫓아다니면서 이런 소릴 했을 뿐이야."
'내가 이러면 안되는 거 아는데 너가 좋다. 자꾸 생각난다. 그래서 아내에게 여행 다녀오겠다 하고 내려왔다. 물론 뭘 어찌 하진 않겠다. 그러면 안 되니까. 같은 숙소에도 묵지 않겠다. 어찌 할지 모르니까.'
"스무 살이 뭘 알겠니. 저게 무슨 뜻인지도 잘 몰랐지. 남자는 자기 마음 편하자고 부산에서 보성까지 쫓아와서 구구절절 자기 감정 토로하고. 애는 난감해하고. 심지어 전날에는 저렇게 자중하는 척 하더니만 다음날 다시 숙소 앞에서 기다리다가 이런 말도 했대."
'근데 군산까지만 같이 가면 안 될까?'
"당연히 여자애는 극구로 거절했어. 아, 왜 만나서 거절했냐고? 왜 아예 차단하지 않았냐고? 그 남자는 애랑 같은 교회에 다녔거든. 평생 안 볼 작심을 하지 않고서야 고소하기도 힘들었지. 공론화? 그 인간 가족도 같은 교회 다녔는걸?
물론 이렇게 만나서 정중하게 거절한 걸 여자애는 두고두고 후회해. 왜냐. 여자애가 서울에 돌아왔을 때 또 연락이 왔거든. 남자는 '정말 자기한테 아무 마음도 없었냐'고 채근했어. 가만히 참아볼려다 더 빡칠 만하지?
여자애는 일련의 과정에서 아무렇지 않았어. 다만 학습했을 뿐이야. 자중하는 것도, 조심해야 하는 것도 여자지만 그런다고 다 막아지는 건 아니라는 거"
"멀쩡하게 생겼어도 미친 준범죄자일 수 있다는 거, 타인을, 특히 이성을 인간적으로 믿는다는 게 얼마나 큰 리스크를 거는 일인지. 심지어 술을 먹지 않고도 이런 작태를 보일 수 있고 그 인간이 또 멀쩡한 얼굴로 셋째까지 낳아서 화목하게 잘 산다는 거."
"모두를 경계할 필욘 없지만 한 번이라도 다쳐본 사람은 알아. 보기엔 다 멀쩡했어. 심지어 정말 착하다고 정평이 난 사람일 수도 있어. 근데 그 새끼가 나에게만, 내가 여자라는 이유 하나로 개쓰레기가 될지도 몰라. 이미 그런 두려움과 불안을 알게 된 여자에게 무슨 충고가 필요하겠어."
"조심해라? 처신 잘 해라? 그런데도 이런 거지같은 일이 생기면? 그땐 내 존재 자체가 문제인 걸까?"
"가해자는 잘 살고, 피해자는 몇 년이 지나도 그 순간을 곱씹어. 가해자는 자기 맘대로 털어버리면 끝나는 사건인데, 피해자에겐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끝난 게 없는 미제사건으로 남아. 그래서 비슷한 일, 비슷한 참상, 비슷한 무관심을 목격할 때마다 멱살이 잡히는 거야."
"잘 잊고 멀쩡하게 잘 산다고 믿었는데. 겨우 트리거 하나 때문에 잠 못 자고, 악몽에서 깨어나야 해"
"심지어 한 번 겪는 것도 아니고. 하하. 정도의 차이만 다를 뿐 공기처럼 반복되는 일이지. 뭐. 오늘은 여기까지만 얘기하자. 그동안 겪은 걸 어찌 하루만에 다 말하니. 그리고 사람들 이런 말 싫어해. 너무 자주 접해서 지겨운가봐. 잔인한 거 보다보면 사람 하나 죽는 장면쯤, 그냥 보잖아."
"너무 증언이 잦은 나머지 이젠 더 처참하게 당하지 않고선 감흥이 안 오나봐.. 부럽지? 그렇게 박식하던 사람들이 성범죄에 대해선 겪은 바도, 아는 바도, 할 말도 없다는 거.
그렇게 침묵이 흐를 때 정작 그 아이는, 누가 진짜 멀쩡한 사람일지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을 거 아냐."
많은 사람들이 법조계 성폭행과 범죄 묵인에 분노하고 있다. 표창원 의원은 '연대를 하세요. 그러면 평생 마음이 편해집니다'라고 말했다. 김어준 씨는 '드디어 한국에서도 미투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전했다.
정말 미투 운동이 한 번도 없었다고?
연대 발언만 해도 평생 마음이 편하다고?
부럽다. 그동안 아무리 쏟아내도 들리지 않던 목소리가 방송을 타야만, 법조계라는 특수성이 생겨야만 '정의 구현' 같은 여론이 생긴다는 게. 이다지도 흔한 범죄가 마치 갑자기 새롭게 밝혀진 것처럼, 아무도 증언하지 않았던 것처럼, 자기는 상관이 없던 일처럼 말할 수 있는 그 편리함이 말이다.
MeToo가 아니라 MeFirst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부터 조심하자는 것이다. 나는 이런 발상에 그나마 응원을 보내지만 MeFirst보다 선행해야 하는 것은 IDidThat은 아닐까. 어찌 사람들은 그렇게 쉬이 자기는 한 번도 잘못한 바가 없다고, 마치 갑자기 신에게 회개하면 죄가 없어지는 듯 한 마디로 편리하게 넘어갈 수 있는가.
분명 모두를 단죄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닐테다. 허나 지금의 왁자지껄한 여론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노란 리본을 달고 촛불을 들었지만 갑질을 하던 '그들'이 떠오른다. 사회운동을 하면서 나에게 데이트폭력을 저지른 옛 연인이 겹쳐 보인다. 자기가 아이를 납치해 죽여놓고 하나님께 죄사함 받았다던 '벌레이야기'의 그 남자가
제발 영화 속에만 있기를 바란다. 그나마 문제제기가 끊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다가도 한숨 깊숙이부터 무기력하다. 고약하다. 무심한 말 마디마다 그동안 '흔한 범죄'들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엿보여서다. 자기 생계 걸고 티비에 나선 피해자에게 아직도 꽃뱀, 꽃뱀, 꽃뱀 찾는 일부도 있으니 뭐,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래도 싸워야겠지. 포기하면 안 되겠지. 어차피 나는 당사자니까 이 잔잔한 지옥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나를 위해,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위해 죽지 않고 살아남아 계속 증언하자는 마음이 든다. 피차 계속 그래왔으니까. 조심스럽게, 타인을 덜 착취하는 방향으로 모두를 살릴 방안을 고민하고 싶다.
자기 잘못을 알면서도 그런 줄도 모르던,
알면서도 야비하게 넘기던 얼굴들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