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폭력은 그날 이후로 잠시 잦아들었다.벽을 향해 누워서 밥도 잘
먹지 않고 TV도 보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알바
뛴 돈으로 좋아하는 담배를 한보루 사다 놓았는데 뜯지도 않은채 일주일
째 그대로였다.죽었나 보려고 죽었으면 당장 내다가 화장시켜버리려고 실
수인척하며 지나가다가 발로 툭한번 건드려 보았더니 쿨룩쿨룩 거리며 기
침을 했다. 아버지의 마른 기침속에서 그가 느꼈을 자식에 대한 미안함과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읽었다면 나의 자폐증이 다시 활개를 치고 나왔다
고 보아야 하는것일까?
내가 가진 병은 이렇게 애매모호한 면이 있었다.남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
았지만 옆에 있으면 괜히 불편했고 그 불편함이 상대와 나를 지치게 만들
어 자폐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고 결국 피하게 된다. 그러나, 학교에서 나
는 과묵한 성격의 소유자로만 알려져 있고 자폐증이 있는 것은 아무도 모
른다.생활기록부에 실려 있는 건강기록을 유일하게 관람 할 수 있는 담임
선생님만 입을 쳐다물고 있는다면 누군가가 내병을 알 수 있는 확률은 거
의 없다.
"야새꺄 자폐아!담배 하나만 줘봐!"
"......"
운동장 청소를 마치고 야외화장실에서 소변을 누고 나오는데 우리반 싸가
지들이 앞을 가로 막았다. 저번에 뚝방에서 본 그애들이다.싸가지는 원래
발음이 4가지로써 TV 개그프로에 나오는 코너를 패러디 하여 놈들이 무료
로 가져다 쓰고 있었다. 이름 뿐만 아니라 구성인원도 똑같이 인기 없고
촌스럽고 키가 작고 뚱뚱한 놈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그중 키가 작은 놈이
어디서 깡다구는 있어서 저보다 네뼘이나 더 큰 나한테 담배를 달라고 한
다. 담배를 피우지도 않지만 있어도 안 줄것이다.내가 만약 이 꼬마 한테
담배를 준다면 아버지가 아들한테 해로운 담배를 주는 것 같은 흉한 장면
이 만들어 질것 같았기 때문이다.
(놈들도 내가 담배 안 피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텐데 여태 조용히 지내
다가 오늘은 왜들이러지.뒤지고 싶은가.)
어쩌면 놈들이 나한테 원한 것은 담배가 아니라 담배 같은 복종을 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역다툼에서 이긴 수컷이 진 수컷의 담배를 아무 때나
지 꼴리는대로 마음껏 꺼내어 피울 수 있는 무한자유를 맛보고 싶은 것인
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이게 단순히 담배 달라는 소리가 아니라 무릎
꿇으라는 얘기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그리고 나보고 자폐아라니.대체 어
떻게 알았을까.생활기록부 깠나.니네 엄마 선생이냐.
"담배달라고 새꺄.."
"..."
집에서는 아버지한테 매일 얻어터지고 알바 뛰러 나가서는 거친노동에 개
처럼 시달리고.학교에서 조차 괴롭힘을 당한다면 나는 정말 미쳐 버릴 것
만 같았다.거지 같고 좆같은 인생이지만 열심히 한번 살아 보려고 애쓰고
는 있지만 참고 견디고는 있지만 누구나에게 한계는 있는 법이다.나는 지
금 내가 견딜 수 있는 한계점에 이르러 있다. 그 동안 용수철처럼 짓눌려
있던 분노가 이젠 임계점에 이르러 작은 자극에도 폭발직전까지 도달할것
같았다.아버지의 두 얼굴을 본 뒤로는 이상하게 더 감정조절이 되지를 않
았다.그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잘 참고 견뎠는데.
"야이 개씨방새야 내말 안들려? 이새끼가 귓구멍에 좆대가리를 쳐 박았나.
내말 안들리냐고 이 호로색꺄!휘릭.."
작은 놈이 공중으로 날아 올랐다.작은 몸에 비해 동작은 빠르고 민첩했다.
어느새 놈의 발이 저보다 50cm나 높은 곳에 매달려 있는 나의 턱을 강타
했다.나는 알면서도 그냥 맞아주었다.어줍쟎게 피하려다가 넘어지는 날엔
괜히 가오 떨어지고 그렇게 되면 기선 제압에서 지고 만다.
"퍽.."
"......"
발차기에도 나의 턱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워낙 힘든 일을 해가며 죽은
새끼 돼지로 몸보신을 해온 나였기 때문에 몸도 성인 남성처럼 건장 했을
뿐만 아니라 그에 걸맞는 몸빵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피식..나의 입가
에는 호수에 떠 있는 종이배처럼 가벼운 미소가 조용히 지나 가고 있었다.
나는 꼬마의 머리털을 잡고 바닥에 내리찍었다.
"우두득"
다량의 머리털이 모공에서 이탈하는 소리가 나며 녀석은 땅바닥에 얼굴을
쑤셔 박았다. 쌍코피를 흘리는지 땅바닥이 삽시간에 붉은 피로 물들었다.
"헐 새끼봐라.가만 안둬."
이번에는 졸라게 촌스럽게 생긴놈이 사마귀처럼 날카롭고 예리하게 펀치를
날렸다.
"어훗.."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나는 놈의 주먹을 가까스로 피한 후 양손으로 녀석
의 허리를 붙잡고 가볍게 들어서 내던져 버렸다.
"이익..익..휘리릭.."
놈은 많이 놀랐는지 허공에서 공허하다 싶을 정도로 과하게 허우적거렸다.
전혀 생각치 못했던 상황을 접해서 몹시 당황스러웠나보다.녀석은 포물선
을 그리며 맨땅에 떨어졌다.어깨부터.
"우드득"
애들 싸움은 다 거기서거기라 기술보다는 힘이 먼저다. 힘센 놈이 짱먹는
것이고 우두머리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나머지 놈들은 나의 괴력을 목격
하고는 덤빌 엄두를 내지 못했다. 촌놈은 쪽 팔려서 인지 아픈 줄도 모르
고 줄행랑을 쳐 버리고 말았다.
"너 우리 싸가지에 들어와라."
뚱뚱보가 겁먹은 표정으로 약을 팔았다. 나의 야수성을 충분히 표현한 이
상 난 더이상 싸울맘도 없는데 놈이 지레 겁을 집어 먹고 휴전을 선언 해
온 것이다.
(좋다고 할까. 아냐 괜히 놈들 앞에서 말 더듬었다가 들통이라도 나면 괜
히 나만 손해잖아.)
"조..조까."
"그렇게 알고 우린 간다.낼 학교에서 보자 삼락아.아니 친구야."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는 사이 뚱뚱보와 인기 없는 놈이 땅꼬마를 부축해
데리고 갔다. 그들은 벌써 날 친구라 부르고 있었다.자폐아,라는 말을 들
었을땐 죽이고 싶었지만 친구라는 말에 가슴이 따뜻해졌다.사람의 말이란
참 묘한 구석이 있었다.나쁜말을 하면 진짜 나빠지고 좋은말을 하면 진짜
좋아진다. 누가그랬다. 사람의 말은 우주에 뿌리는 씨앗이라고.
비록 불법 폭력써클이었지만 친구라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묘하게 설레
었다. 보이지않는 울타리 속,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정다움이 느껴지고 챙
겨주며 아껴주는 소속감 같은 느낌도 들어서 왠지 모르게 든든한 느낌이
었다.
(친구라..참 좋은말이지.나에게도 이제 친구란게 처음 생기는건가.)
다음날 학교에 가보니 난 이미 4가지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뿐만 아니라
두목급 대우를 받았다.전날 나한테 뒈지게 얻어맞고 개망신을 당한 촌놈
은 두목의 자리를 나한테 내놓고 다른 학교로 가기위해 아침에 전학신청
을 해놓고 하이방을 깠다고 들었다.
이른바 학교 일진인 싸가지가 된 후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일단은 수업
시간에 앉는 자리도 중간에서 후미진 뒷자리로 이동되었고 등교 하자마
자 담배와 라이터가 척하니 내책상 속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리
고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갈때는 입가심하라고 누군가 우유를 갖다 놓았다.
물론 점심시간엔 김밥과 라면 그리고 중국집에 직접 배달해 온 짜장면이
가끔 책상 위에 올라와 있다. 중간 중간에는 간식으로 빵셔틀이 분주히
움직여서 빵과 마실 것을 갖다 놓는다.일반 학생들은 꿈도 꾸지 못할 황
제나 다름없는 생활이었다. 외롭게 왕따생활 할때는 상상도 못할 편안하
고 안락한 생활 그 자체였다.
"어때? 할 만 하지?"
괜히 말실수라도 할까 봐서 나는 인기 없는 놈의 질문에 여유 있는 표
정으로 미소 지어 보였다.나한테 크게 당한 꼬마는 이제 알아서 기었다.
"우리 삼락이는 과묵해서 좋은것 같아.차세대 두목감이야.그치 얘들아."
"당근이지.지금도 우리 두목인걸 뭐.차세대 뿐만아니라 차,차세대도 기
리기리 두목 해야지.."
뚱뚱보가 크림이 들어 있는 기다란 빵을 끊어먹으며 아첨을 떨었다. 황
제가 된 기분을 다시 한번 느낄수 있었다.
"임금은 충신은 베어낼 망정 아첨 하는 신하는 절대로 베지 않는다. 그
것은 아첨을 하는 신하가 이뻐서가 아니라 옆에서 임금 자신의 존재가
치를 수시로 일깨워 주는 상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왕은 외로
운 자리다."
어디서 읽은 기억이 났다.왕의 자리는 사치스러운 자리인 것이다. 나는
사치를 떨기 위해 놈들을 데리고 잘 아는 성인노래방으로 향했다. 사치
라는 단어를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전에 방학때 고깃배에서 잠깐
알바하다가 만난 아저씨가 한번 데려가 준 곳인데 거기가면 술도 마실
수 있고 아가씨도 부를 수 있었다.주인아줌마는 내가 중학생인 줄은 꿈
도 못 꾸었을 것이다. 그냥 절대 동안인 대학생이거나 복학생 정도로만
알고 있을 것이다.나는 오늘 이 4가지 놈들에게 유일한 나의 친구 들에
게 왕의 권한으로 중학생이 누릴 수 있는 사치란 무엇인가를 제대로 맛
보게 해 줄것이다.짤랑짤랑.
"어서오세요.엉 그때 그 이쁜 총각아녀.어여 들어와."
나를 반갑게 맞이하던 여주인은 나를 뒤따라 들어오는 4가지들을 보고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안녕하세요.잘 부탁합니다."
"어머, 미성년자는 우리가게 못 들어오는데."
술을 팔고 웃음을 팔고 때에 따라서는 몸을 파는 노래방에는 미성년자들
을 들여보낼 수 없다. 그러나 현찰뭉치가 가게 주인의 입으로 굴러 들어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여기.이모.."
돈뭉치를 건내자 주인아줌마는 언제 그랬냐는듯 7번 방으로 우리를 친절
히 안내했다.7번방에 들어가면 예상치 않은 행운이 우리를 기다리고있을
것이라는 그런 웃기지도 않는 상상은 하지 않는다.다만 타락한 어른들을
흉내내며 이 더럽고 혼탁한 세상을 향하여 한발 더 가까이 내딛을 수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