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야구부 감독에게 던진 방망이는 감독의 키를 훌쩍 넘어 뒤어있는
초록색 안전용 그물에 걸렸다. 방망이는 꼼짝없이 그물에 걸린 물고기
처럼 안전망 위에서 출렁거리고 있었다.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아버지, 그리고 도망친 엄마, 어린동생.나
는 불우한 가정환경 탓을 할틈도 없이 열심히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거
센물살을 헤치고 나아가는 어린물고기처럼 몸을 바둥거리며 살아야만
했다. 아버지한테 정신을 잃을 정도로 얻어맞은 후 4만원짜리 알바를
뛰러 배를 타고 내해로 나간 어느날이었다.
찢어진 전복 어망을 고쳐서 다시 물속에 집어넣고나니 날은 벌써 어둑
어둑해져 있었다. 배는 약 1시간거리의 항구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바
람 한점 없이 고요한 바다는 쌔까맣게 이글거리고 있었다.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 보았다. 역시 깜깜한 어둠이 머리 위의 시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선반에 놓인 회칼을 조용히 집어 들었다. 그리곤 아랫배
를 가로로 긁는 시늉을 내어 보았다.
이렇게 활복하고나면 지금껏 나를 어둠의 실로 상하, 좌우 꽁꽁 옭아
매고 있던 세상으로부터 드디어 자유로워 질수 있을것만 같았다. 마치
등과 배가 그물에 걸려 옴짝달싹 할 수 없는 물고기가 자신의 내장을
터트려 버린 후 홀쭉해진 몸을 흔들어 유유히 그물코를 벗어나는 것처
럼 말이다.
내장기관을 잃은 물고기는 이제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된다.먹고 살
기위해서 투쟁하지 않아도 되고 먹을 것을 얻기위해 바다를 향해 꼬리
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바다밑으로 조용히 기억을 묻으면 그만인것
이다. 이미 다른누군가의 기억들이 끈끈한 침전물이 되어 켜켜이 바닥
에 쌓여 있는 뻘속으로 기억의 뼈를 묻을 것이다.희고 또렷한 나의 기
억은 시커먼 화석이 되어 먼훗날 다른 누군가의 조심스러운 붓끝에서
유물처럼 되살아나질 것이다.
먹기위해 살고 살기위해 먹고. 유물론적이고 1차원적인 악순환의 고리
를 끊기위해 나는 배에서 나의 내장을 갈라낼 것이다. 나는 나를 가꿀
권리를 가지고 있는 만큼의 질량만큼 나는 나를 파괴시킬 권리가 있는
것이다. 나의 쏟아져내리는 내장들을 향해 나는 비웃음을날릴 것이다.
파괴된 나를 보며 나는 손가락질을 해댈 것이다.
"하나..두울..세엣.."
"니 여기서 뭐하노? 비켜봐라쫌 일마야..여기 두번째 서랍에 있었다고
했등가.."
"오이야..퍼뜩 가온나.."
선원들이 모여서 한잔 하려는가 보다.조용히 세상을 떠나려는 나한테는
좋지 못한 환경이었다.
"니도 한잔 빨래?"
나는 대답도 하지 않고 조용히 선미로 나갔다. 나의 내장을 바다속으로
조용히 보내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택해서 말이다.
"절마 오늘 와 저라노?"
나랑 안면이 조금 있는 선원이 날한번 쓰윽 야려보더니 쓰게 입맛을 다
셨다.
"내비두라.절마 저 사춘긴가보다."
선미에 나와 고개를 숙여 바닥을 바라보니 배는 엄청난 힘으로 물살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디젤기관으로 들어간 연료는 공기와 섞
여 흡입, 압축,폭발, 배기 4행정 싸이클을 반복해가며 배밑의 지느러
미처럼 생긴 프롤펠러에 엄청난 동력을 공급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에겐 이제 아무런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죽을려고 칼을 배에 가져다
대고도 긋질 못했다. 나에겐 이제 죽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건가. 자
기 배때기를 과감하게 터트리고 자유로운 죽음을 향해나아갈 힘조차 남
아있지 않은건가.
이렇게 띵띵 부른 배때기로는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그물이 더 엉켜서
도저히 빠져나올수가 없다. 자유로움을 향한 몸부림이 되려 철창이 되
어 점점 더 구속시킬 따름이다. 그때 나는 깨닭았다. 내가 이 그물망을
빠져 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나를 억압하고 있는 그물을 야금야금
씹어먹는 방법밖엔 없다는 것을.
안전망 위의 방망이는 아직도 출렁이고 있었다.감독은 아무말없이 사무
실로 들어갔다.순간 그의 손에 붉은 피가 배어 있는 것이 보였다.저 인
간이 나한테 보여주려는게 대체 뭘까..저인간은 과연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걸까?
그의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의 허기는 느낄 수가 있었다. 고통과
허기는 엄연히 다른 것이니까. 허기나 굶주림은 고통보다는 훨씬 1차원
적인 본능에 가까운것이니까. 그러니까 눈에 더 잘보여.나에겐 아직 인
간적 본능은 남아있었다. 적어도 눈깔은 정상인것이다.
"야 이거 가져가서 한번봐봐.."
나는 감독이 내민 usb를 툭한번 쳐버리고는 야구장을 나왔다. 흙바닥이
끝나는 부분에서 신발에 묻은 흙을 탁탁털어냈다.감독의 행동에서 나는
뭔가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생각의 먼지를 덮어쓴 것처럼 느껴졌다.나
는 일부러 더 세게 발을 굴렀다. 쿵쾅콩쾅..
생각의 퇴적물들을 탈탈털어내고 단순하고 명징한 나의 1차원적 세계로
향하기 위해 그물을 잘근잘근 씹기위해 나는 딱딱한 시멘트 바닥을 향
해 한걸음한걸음 내딛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콘크리트로 지은 개미집처럼 오밀조밀 지
어놓은 회색빛 도시가 물에 젖어 더욱 검게 자글거리고 있었다. 거리는
뱃속에서 토가 나올 정도로 심각하게우울해 보였다.
아지트로 들어와 보니 땅꼬마가 나를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조직의 기
강을 바로 잡기위해 내가 내린 조치였다.친구라고 물렁하게 대해줬더니
저번에 뚱땡이새끼처럼 뒷통수를 치지 않나. 배째라고 덤비질 않나. 죽
었어 시발새끼들 하여튼.
"씹새끼는?"
내가 말한 십할새끼는 비 인기남을 일컫는 거였다. 절친인 뚱땡이가 떠
나버리고 나자 녀석은 스스로 무너져가고 있었다.전처럼 눈알을 희번떡
거리며 일에 의욕을 보이지않고 농땡이만 피우고 있었다. 돈을 보고도
그저 묵묵히 제몫을 챙겨 나갈 뿐 그 어떤 희열이나 욕망도 보이지 않
았다. 욕망이 없는 조직원은 죽은 시체나 마찬가지였다.
"말밥주러. 스크린 경마장에.."
나는 꼬마의 따귀를 한대갈겼다.그리고 발로 배를 차서 쓰러뜨린 후 머
리를 밟아버렸다. 그는 금세 피떡이 되어 구석에 몸이 쳐 박혔다. 조직
관리를 잘못한것에 대한 체벌이었다. 지금 다른 학교 일진들은 목이 좋
은 우리 포장마차를 호시탐탐노리고 있었다.하루에 포차 한대당 순익이
2백만원씩 쏟아지는 알짜배기 였던것이다. 이게 다 내가 선견지명으로
미리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선구자적 입장에서 누리는 프리미엄
이라고나 할까.기껏 알토란같은 사업장 일궈놓았더니 먹고 살만하게 만
들어 주었더니 키우지는 못할 망정 조직원들 지켜내는것도 못하고 자빠
졌으니 우라통이 터져서..
"씨발놈아.지금 때가 어느땐데.."
땅꼬마는 맞으면서도 고개를 숙이며 두손을 모아싹싹 빌었다.보스에 대
한 예의를 깎듯이 지키고 있었던 거였다. 퍽퍽.계속 밟다가보니 땅꼬마
의 바지가 찢어지고 맨살이 드러났다. 그물 코에 걸려있던 연약한 물고
기는 이제 폭력이라는 이빨을 가지고 자신을 옭아매던 그물을 잘근잘근
씹어먹고 있는 것이다. 프로펠라를 꼬리지느러에 달고 잠수함처럼 물속
을 휘젓고 있는 것이다. 퍽퍽..맨살을 계속해서 밟으니까 하얀 뼈가 드
러났다. 퍽..퍼벅..뼈를 발끝으로 비비니까 통곡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아아.."
(아참 이새끼 내 친구였지. 나비가 보고싶다. 나비가..)
나는 갑자기 나비가 보고 싶어서 흰붕대를 사가지고 집으로 향했다. 누
워있는 아버지의 몸뚱아리를 툭 건드려보니 죽었는지 딱딱하게 경직되
어 있었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부드러워야 붕대가 잘 감기는데.)
나는 있는 힘껏 시체를 밟았다. 보들보들해질 때까지. 붕대를 감을 수
있을만큼 부때까지.
(퍽.퍽..퍼벅...자 이제 됐군.)
아버지를 흰붕대로 칭칭감고나니 번데기가 된것같았다.화려한 나비가 되
려면 당연히 치욕적인 번데기 시절을 겪어야만 한다. 그건 진리다. 나만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라 세상사람들 모두가 알고 인정하는 명제다.따라
서 세상은 날 향해 함부로 손가락질 하지 못할것이다.
삼락은 이제 누가 찾지 않아도 제발로 학교운동장을 찾아 야구공을 던졌
다.일단은 직구,슬라이더 , 포크볼을 위주로 연습했다. 저번에 하이에나
를 잡을때 얼떨결에 삼락이 던진 스플리터는 그의 직구가 워낙 위력이
있었기에 효과를 본 것이지 볼 자체가 완벽한 스플리터의 면모를 갖추었
던 것은 아니었다.강속구를 가진 투수를 상대하는 타자로서는 항상 투수
의 빠른 볼에 대한 부담감을 안고 있는법이다.
[이번에도 빠른 직구가 들어오면 어떡하지.빠른 직구가 들어오면 반박자
정도 빠르게 배트를 휘둘러야 맞출 수 있을텐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타자한테 투수가 예상밖의 변화구를 던진다면
타자는 꼼짝없이 당하고 만다. 빠른 볼을 예상하고 있던 타자는 배트를
너무 일찍 휘둘러 헛스윙 하고 만다.타자가 헛스윙을 한 후 한참 있다가
공이 포수의 미트에 들어가는 어이없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그만큼 빠른
강속구를 가진 투수는 그렇지 못한 투수보다 타자를 상대하기가 훨씬 수
월한 것이다.
투수와 포수까지의 거리 18.8 m. 야구공의 무게 약 145그램.이지극히 짧
은 거리에서 종이처럼 가벼운 공으로 대체 뭘할 수 있을까? 뭘하려면 또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해야할까?
직구 하나만 하더라도 제대로 제구가 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
과 노력이 소요되었다. 삼락은 와인드업 자세를 취한 후 볼을 든 손이
땅에 닿을 정도로 내려 그 원심력으로 공을 던졌다..에잇 휘릭.. 후르르
르르..
언더핸드의 직구는 무릎아래에서 날아가기 때문에 타자가 보기엔 공이
약간 떠오르는 기분이 든다. 직구인데도 말이다. 담엔 포크볼. 변화가
심한 포크볼은 땅으로 깔려가다가 타자앞에서 갑자기 솟아 오르는 형태
를 취한다. 제구가 잘된 오바핸드의 포크볼이 쭉 날아오다가 갑자기 타
자앞에서 떨어지는 형태를 거꾸로 뒤집으면 그게 바로 언더핸드의 포크
볼인 것이다.
직구, 포크볼..그 중간의 볼이 바로 슬라이더다. 물론 직구와 슬라이더
사이를 떨어지는 각과 좌우로 휘는 각으로 미세하게 다시 나누면 좌,우
로 꺾어져 들어가는 커터와 45도 각도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이 있긴 하
지만 지금은 슬라이더를 익히는게 급선무다.
직구와 포크볼 사이의 변화각을 가지는 슬라이더는 직구를 노리는 타자
들에겐 변화각이 커서 효과를 볼 수 있고 포크볼을 기다리고 있는 타자
한테는 속도가 빨라 헛스윙이나 뒤로 빠지는 파울을 만들어낸다.적재적
소에 알맞게 적절히 사용하면 타자를 잡을 수 있는 좋은 무기가 된다.
그밖에도 슬라이더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각(종으로의 각)만을 가
지는 포크볼과는 다르게 종으로 떨어지면서 약간 횡으로도 움직이는 미
세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에잇 슬라이더..휙.."
손가락이 유난히 긴 삼락은 그립을 여러번 바꿔가며 공에 나있는 붉은
색 실밥자국을 이용해 여러가지 조합으로 손가락을 바꿔잡으며 연습했
다. 슬라이더라고 해서 모든 투수가 검지와 중지를 모아 던지는 것은
아니다. 개인마다 슬라이더가 구현되는 최적의 그립이 조금씩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자신만의 좋은 슬라이더를 만들기 위해선 반복해서 던져
보고 실습해보는 수밖엔 없었다.휘릭..
퍽..
구종연습을 마친 후 감독새끼가 부탁한대로 와인드업 자세를 바꾸었다.
하도 간절히 애원하길래 사람하나 살린다,생각하고 들어주기로 한것이
다. 구대성이라는 선수의 투구모습을 비디오 화면으로 보여줬는데 던
지는 모습이 졸라 특이했다.마치 꽈배기처럼 타자를 향해 등을 보였다
가 몸을 돌려 회전하며 볼을 던졌다. 그렇게하면 타석에 선 타자들이
보기엔 공이 마치 투수의 등뒤에서 갑자기 날아오는 듯한 착각을 일으
킨다고 했다. 과연 비디오속 영상 속의 타자들은 당황하여 휫스윙하기
일쑤였다.감독새끼는 오늘은 와인드업 자세만 바꾸고 퇴근하라고 했다.
이게 미친새끼지 자세 고치는게 하루,이틀만에 바꿀 수 있는데 아니었
다. 투수에게 투구폼은 마치 오래된 습관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
걸 하루 아침에 바꾸라니. 미친 또라이지. 다행히 나는 아직 투구폼을
배운적이 없어 비디오 화면대로 수월하게 따라 던질 수 있었다.더군다
나 예전에 트럭에 돼지똥 퍼올리는 자세랑 비슷해서 쉽게 터득 할 수
있었다.
등돌리고 구부리고 후까시주면서 일어서면서 퍼올리고.. 딱 돼지 똥푸
는 자세였다. 볼을 받아주는 포수도 없이 삼락은 혼자 열심히 스트라잌
존이 그려져 있는 빽보드에 외롭게 볼을 던지고 있었다.쿠콰쾈콰쾅쾅..
대신 옆에 제트엔진을 단 F-16전투기가 날아다니고 있었다.감독새끼는
그어떤 상황에서도 재구가 흔들리지 않으려면 극한의 외부환경에 처해
볼을 던져야만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곳 군산비행장까지 원정을 와서
이지랄을 떨고 있는 것이다. 가자고 하는 새끼나 따라온 나나 미친 새
끼인건 맞는데 이왕 온 김에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었다.
외부로 부터 들어오는 모든 자극으로부터 차단된 삼락은 날이 새는 줄
도 모르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그는 종과 횡으로 볼의 위치
를 바꾸어가며 바다처럼 출렁이는 세상을 향해 또다른 그물을 치고 있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