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성윤은 몹시 피곤했다. 되는 일은 하나도 없고
먼지나게 매만 맞고나니 인생 살기 싫었다. 자살하려고 해도 용기가 나질 않
았다. 남들은 목을 메거나 다리에서 휙휙 잘도 뛰어내리는데 그것마져도 결
단력과 확신이 필요한거지 괜히 어정쩡하게했다가는 죽지도 못하고 평생 불
구로 남아 지금보다 더 고된 삶을 살아가야한다. 죽는 일도 현재로선 만만치
가 않은 일이었다.에라이 찌질이.
성윤의 커다란 눈은 붉게 실핏줄이 도드라져 금방 터져버릴 듯했다. 또 어떻
게해서 자금을 마련하고 무슨 방법으로 보물을 찾는단 말인가. 그는 괴로운
듯 헝클어진 머리털을 양손으로 감싸고 앉아 이리저리 흔들었다. 꼬마 불상
을 가지고 어떻게 영식을 꽤어 돈이라도 좀 뜯어내려고 했지만 허사가 되었
다.오히려 어설픈 쑈가 영식을 더욱 자극시키기만 했다.진주는 전보다 더 궁
지에 몰렸고 빌어먹을 놈의 돈스코이의 행방은 아직 오리무중이었다.돈스코
이 돈스코이..
이젠 똔스코이란 말만 들어도 뱃속에서 똥물이 넘어왔다.돈스코이는 역사적
으로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었다. 성윤은 자의가 되었든 타의가 되었든 간
에 그 보물의 실체를 밝히고자 지금까지 달려왔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서 고유한 스토리가 있다는데 지금 그
옆에 있는건 상처와 좌절뿐이었다. 그리고 이 빌어먹을 놈의 손때 묻은 꼬마
불상만 남아 있었다. 그는 이번 쑈에서 주연을 맡았던 꼬마불상을 신경질적
으로 벽에 던져버렸다. 이 시발..
"빠직~"
꼬마불상이 산산조각 나버렸다.웅크리고 앉아 괴로워하고 있는 성윤 앞으로
난데없이 금화가 떼구르르 굴러왔다.할매가 준 불상이 깨지면서 그안에 감춰
져 있던 금화가 빠져나온 것이다. 워낙 타이밍이 절묘해서 무슨 꼭 보물을 포
기하지 말라는 암시 같았다.이것이 진정 "신의 한 수" 라면 이 금화는 분명히
소브린 금화여야 할 것이다. 그토록 찾고 찾던 미치도록 찾고 싶었던 바로 그
소브린 금화말이다. 조심스럽게 금화를 살펴 보았다. 금화에 나 있는 이빨자
국을 보자 성윤의 동공이 축구공만큼 커졌다. 동시에 정신을 번쩍 들게하는
전율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고 내려갔다.쌌냐.
-서울 / 종로의 어느 커피숍
성윤과 하청이 카페에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소
브린 금화를 확보한 이후 보물선에 대해 확신을 가진 성윤은 자금줄이 절실
히 필요했다.1,2억 정도가 아니라 장비와 인력을 갖춰 제대로 탐사 할 수 있
도록 하려면 든든한 자금 줄이 필요했던 것이다.그래서 오래전부터 형,아우
하며 잘 알고 지내던 하청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동화건설의 전무로 있는 하
청은 말이 전무였지 회장의 이복 동생으로서 실직적으로 동화건설을 지배하
고 있었다. 정말 이거다 싶을때 마지막으로 쇼부치려고 성윤이 그동안 아껴
두었던 히든카드였던 것이다.성윤은 예의 금화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넉넉
한 풍채와 함께 푸근한 인상의 하청은 셀럽이어서 그런지 웬지 좀 있어 보이
고 누가봐도 정감이 가는 그런스타일이었다.
"영식이 자식이 정말 그랬단 말야?"
"점점 악마로 변해가고 있어."
"내가 데리고 있을때만 해도 그정도 쓰레기는 아녔는데 대체 어떤 양아치 밑
에 있길래 겁없이 그 따위 지랄을 하는거지."
"뒤에 잘 나가는 정치인 빽이 있대."
정치인 얘기가 나오자 하청이 침을 내뱉으며 진저리를 쳤다.
"캭 퉤.야야 정치하는 새끼들 얘긴 꺼내지도 마. 재수없으니까."
"알았어 안 할께."
"근데 너 지금이 어느 세월인데 보물선 타령이냐.몰던 택시는?"
진주를 처음 만날때만 해도 택시로 삶을 연명했었지만 지금은 잊고산지 오래
였다.택시 몰때 마지막으로 하청이 형을 만나 한잔 했던 기억이 났다. 그러고
보니 하청이 형을 만난지도 한참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전화 한
통 받자마자 헐레벌떡 달려나와 이렇게 반갑게 맞아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성윤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인복은 좀 있어 보였다. 세상에 워낙 나쁜 새끼
들이 많아서 그렇지 이 정도면 그럭저럭 살만한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
금전까지만 해도 죽으려고 맘먹었던 자신이 창피하단 생각마져 들었다.알긴
아냐.
"핸들 놓은지 꽤됐어."
"너 아직도 갈팡질팡 그러고 사냐? 이제 좀 정신차려라 인마. "
"이 금화 좀 봐봐. 뭔가 엄청난 포스가 느껴지지 않아?"
"그러지말고 너 우리회사 들어와라. 이번에 우즈베키스탄에 유전개발 하나
하려고 그러는데 거기 좀 가봐라. 니가 돈냄새 하난 기가막히게 맡잖냐 응?"
성윤은 하청의 말엔 콧방귀도 뀌지않고 자기가 할 얘기에만 빠져 있었다.
"보물은 촉이야 촉. 몰라서 그렇지 이 금화 어마어마한거야."
대체 이놈이 뭘가지고 이렇게 설레발을 쳐대는지 하청은 마지못해서 자세를
앞으로 숙이고 눈을 가늘게 떠 금화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500원짜리 동전
보다 조금 더 큰 금화였는데 앞면엔 여신의 얼굴이 있었고 뒷면엔 말탄 왕이
용과 맞서 싸우는 모습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하청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성윤이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앞면엔 우아한 '브리타니아'라고 영국출신 여신의 모습이고 뒷면엔 말탄 조
지왕이 다른왕을 조지고 있는 모습이고."
(챠 그새끼 얼마나 거시기에 자신이 있었으면 이름을 이따구로 지었을까.조
지왕이 뭐냐 조지왕이. 그럼 가슴크면 유방공주겠네. 아무리 생각해도 영국
새끼들은 참 이상해 크크..)
속으로 요딴 생각을 하면서 하청은 조지왕의 아랫도리를 유심히 살폈다. 그
닥 뭐 별거없어 보였다. 그러다보니 성윤이 하는 말에 좀처럼 믿음이 가질
않았다. 그가 인생선배이자 형으로서 성윤을 훈계했다.
"보물선이라.. 그거 참 낭만적인 얘기지. 거기에 뛰어들지만 않는다면 말야."
"형 그게 뭔 소리야?"
도와줄 것이라 철썩같이 믿었던 형 아가리에서 이런말이 튀어나오자 성윤은
적잖게 당황했다. 하도 당황을 해서 당근이 먹고 싶어질 정도였다.
"진주한테서 보물선 찾아다닌다는 얘기 다 들었다 .도대체 이거다 저거다 하
면서 보물 찾는데 보낸 세월이 얼마냐?"
"내가 뭐 어쨌다고?"
"너 그전에도 서해안에서 도자기 건져 올리다 잡혀갔었잖아."
"그건 철없을때 한 짓이고 지금 이 돈스코이는 좀 달라."
"다르긴 뭐가 달라. 내가 보기엔 그나물에 그밥이구만."
성윤이 의도했던대로 의사전달이 되지않자 목이 타올랐다.성윤이 커피를 원
샷한 후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안 쓰냐.
"인생역전이야 .잘만하면 앞으로 돈걱정안하고 살 수 있다고."
"내가 밥걱정하고 사는 사람으로 보이냐. 너 왜그래?"
하청 자신의 말처럼 그는 지금 대한민국건설업계 도급 2위인 동화건설의 전
무였다. 현재 그가 굴리는 자금만 해도 수조원이었다. 애초부터 밥걱정할 입
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미 하청의 인생은 거대한 황금의 누곽 위에 화려한
치장을 하고 있는 중인데 거기다 대고 인생역전이니 돈걱정 안 하느니 이런
먹히지도 않는 말들을 늘어놓고 있으니 하청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성윤이
아예 주소를 잘못 고른건 아니었지만 접근 방법에 있어서 서투른 점을 보였
던 것이다. 성윤은 방법을 바꿔서 고개를 숙이고 부탁하는 저자세를 취했다.
"형 좀 도와줘.제발 부탁이야."
"그래 니말대로 보물선을 발견했다 치자. 그걸 제대로 삼킬 수나 있겠냐?"
"매장물 탐사를 위해 특허신청까지 했어. 아무문제 없다고."
하청이 그것 가지곤 택도 없단듯 콧방귀를 뀌었다.
"막말로 힘없는 파리 좆만한 우리나라에서 말이다 러시아 물건 잘못 건드렸
다는 골로 가는 수가 있어.푸틴이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겠냐고.이건 마치 파
리가 왕도마뱀 부랄을 만지는격이야. 죽을라면 뭔짓인들 못하냐?"
보물에 있어서는 성윤이 나을지 몰라도 하청은 해외를 자주 드나들며 배운
풍월이 있어서 국제정세에 매우밝았다.현 러시아는 전세계를 호령하며 미국
과 양강구조를 이루며 전세계를 나누어먹던 구소련 시절의 회복을 외치는 푸
틴과 그의 비호세력들에 의해 강력하게 통솔되고 있다. 푸틴은 그 특유의 마
초적인 성격과 더불어 다른나라와의 관계에 있어서 단돈 10원 어치의 손해
도 용납치 않는 실리적인 인물이었다.
워낙 집요하고 강인해서 잘설득하기도 어렵고 성격 또한 다혈질적이었다.구
소련이 몰락한 후에 중국이 세계무대에서 새로운 강자로 군림했다. 상대적
으로 유약해진 러시아에서 숨죽이며 무릎꿇고 살던 국민들에게 푸틴의 강력
한 이미지가 먹혀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푸틴에 의해 러시아는 옛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는 국민들의 기대가 충만해 있는 상황이었다. 뭔 핑계
만 생기면 러시아는 중국을 제치고 또다시 세계무대에서 강자로 나설 채비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푸틴의 말한마디면 러시아 국민들은 바로 전쟁도 불사할만큼 절대적인 지지
를 받고 있는 터였다. 만약 한국에서 돈스코이를 꺼낸다하면 푸틴이 어떻게
나올진 불보듯 뻔했다. 아마 돈스코이에 대한 지분전체와 그동안 엄청난 금
액의 보물이 한국에서 썩고 있었으니 이자 내놓으라 할 인물이었다. 만약 한
국에서 자신들이 만족할 만한 조건을 내놓지 않는다면 그냥두지 않을 것이었
다. 따라서 돈스코이를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는 자칫 전쟁이 나거나 아니면
러시아한테 엄청난 빚만 떠안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긴 해도 러시아 애들도 잘 한거 없잖아. 허락도 없이 남의 나라에 들어
와선 일본새끼들하고 치고박다 자빠진건데 뭐."
계속 부정적인 하청이었다.아니 어쩌면 아주 현실적인 얘기인지도 모를일이
었다.
"그건 그당시 우리나라가 힘이 없어서 어쩔수 없는거였지.누가 힘없으래?일
본 놈들 그렇게 발전할때 우린 매국이나 해서 나라를 좆밥으로 만들고. 누가
그걸시켰냐고."
1905년 러-일 전쟁이 일어날 당시만 해도 대한제국의 왕인 고종은 일본군을
피해 러시아 공사관에 도주해 있었고 조선은 곧 친일파들에 의해 일본의 식
민화가 당연시 여겨질 상황이었다. 한마디로 정치하는 새끼들이 온나라를 말
아먹어서 개판 5분 전이었던 것이다.이러니 이새끼 저새끼가 달라붙어서 나
라를 맘대로 식성대로 요리해 먹고 있었던 것이다.
"형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왜 내가 틀린말 했냐.시발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하는 새끼들은 변한게 하나
도 없어.아니 어쩌면 지금이 더해 시발."
정치인들한테 뇌물 쳐먹이느랴 허리가 휘는 하청의 입에서 좋은말이 나올리
가 만무했다.
"매장물 특허까지 냈으니까 소유권은 나한테 있는거야.그게 맞아."
하청이 또 반박하고 나섰다.
"그래도 그게 러시아 선박은 말이야 러시아 자국 영토로 인정된단 말이지.아
무리 침몰 했어도 러시아 영토라 이말이야 내말은."
"아냐 그게 국제법상 러시아가 우리나라의 허락을 받지않고 일방적으로 배
를 몰고 들어와서 벌인 싸움이라 자국영토로 인정을 못 받아."
"그당시 누구한테 허락을 받아. 주인도 없는 나라였는데."
"왜 주인이 없어. 한국사람이 살고 있었으니까 한국땅이지."
"얘가 또 뭘 모르는 소리하시네. 당시 대한제국은 이름뿐인 허당이었고 실질
적으로는 일본이 한반도를 차지하고 통치권을 휘두르던 시절이었어.그럼뭐
니말대로라면 러시아 배가 일본한테 좀들어가겠습니다 비켜주세요,하고 출
입허가를 받아야 했었단 말이야뭐야. 적군인데?너 지금 제 정신이니?"
가만히 듣고 보니 하청이형 말에 일리가 있었다.예로부터 우리나라 땅인 독
도도 두눈 시퍼렇게 뜬채로 일본새끼들한테 빼앗기게 생겼는데 하물며 돈스
코이라. 러시아를 배제한 채 단독으로 차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하
청이 불가능에 휘발유를 뿌렸다.
"정부에서도 러시아랑 외교분쟁 일어나는거 절대 원치 않을껄.포기해."
"그럼 러시아 애들하곤 잘 협상해 봐야지. 돈없는 우리나라 정부에선 오히려
반겨 줄테고."
성윤의 말은 사실이었다. 최근 닥친 경제위기에 국민들은 지쳐있었다.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정부는 보물탐사를 대거 허가해주며 인양시 세금도 적당히 걷
고 있었던 것이다. 하청이 자세를 뒤로 빼며 팔짱을 꼈다.회의적인 태도로 일
관했다.
"아무래도 러시아가 맘에 걸려."
"배는 러시아 다 줘버리고 그안에 든 금은 뿜빠이 하자고 쑈당붙여봐야지."
"글쎄다.."
"자고 일어나면 금값오르는데 오케이 안 하면. 지들도 꽁돈 생기니 좋지 뭐."
성윤이야 아이디어만 제공하는 입장이고 그러다보니 계획이 완벽해 보이지
만 자금줄이 되어야만 하는 하청의 입장에선 여기저기 빈틈이 많아 보이는
위험천만한 프로젝트였다.그러나 성윤의 말처럼 애초부터 러시아가 불법적
으로 남의 나라 해역을 침범했기 때문에 희박하나마 그 가능성은 있어 보였
다. 괜히 애 기죽이기 싫어서 다른얘길 꺼냈다.
"근데 정말 금이 있긴 있는 거냐?"
미심쩍은 하청이 다시묻자 성윤은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크게내
쉬며 뺨을 박박 긁었다. 마치 머리 위에서 다 낡아빠진 물레방아가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똑같은 자리를 계속해서 돌고 있는것 같았다.
"아 정말형 지금까지 뭐들었어. 내가 그 얘길 또 해? 울릉도에서 말이야."
"알았어알았어 그럼 내가 뭘 어떻게 해주면되냐?"
"형네 회사 요즘 자금사정이 어때?"
"남의 밥그릇에 죽이 끓든 똥이 끓든 알게뭐냐."
하청은 회사이야기가 나오자 체념하듯 의자를 뒤로 빼앉으며 담배를 피워물
었다.걱정할게 전혀 없을거 같아보이는 하청이 의외의 반응을 보이자 성윤
은 적잖이 놀랐다.
"뭔소리야. 동화건설 형꺼 아니었어?"
하청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안통운, 증권, 시멘트, 청라지구,해외 골프장 할 거 없이 죄다 이복 형놈꺼
다 시발."
"아맞다.지금 회장이 배다른 형제랬지? 근데 왜그렇게 큰아들한테만 다 준거
야?"
"노인네가 죽지도 않고 노망을 부리지 뭐야."
"아버님이 왜?"
"글쎄 저번에 상속문제 마무리한다고 불러서 갔더니 누구는 이쁜작은마누라
아들이라고 땅에 회장자리까지 던져주고 누군 미운 조강지처 아들이라고 사
막에서 8년동안 좆뺑이 치고 온 사람을 겨우 전무에 앉히고. 다같이 한조상
아래에서 태어나고 자랐건만 이렇게 차별을 두니 이게 지금 말이되냐."
아버지의 재산분배에 대해 하청은 불만이 많아 보이는 듯했다.
"형이 말은 그렇게 해도 회사를 무지 사랑하는 거 다 알아."
"너지금 누구 약올리냐?"
"안 그럼 어떻게 8년씩이나 썩어.그 뜨거운 사막에서."
"아암 사랑했지.아주 좆나게 사랑을 했더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