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스코이-3 속도 위반
속으로 이런 달달한 소릴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도너츠아가씨가 보여준
현실은 냉혹하기만 했다.
"아저씨 빵으로 맞아본적 있어?"
내용이 많진 않지만 지금까지 이 여자의 행동을 종합해 보면 얘라면 진짜 빵
으로 날 때릴수도 있을것 같았다. 차안에 빵이 없어야 할텐데. 빵으로 쳐 맞
으면 아프기보단 기분이 무진장 나쁠것 같았다.
(입닥치고 운전이나 하란 얘긴데 그럴수야 없지.)
보기드문 미인이라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어떻게든 잘 낚아서 잡아먹을 생각
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만 그런가 뭐. 남자들새끼가 다 그렇지뭐.슬슬
작업을 시작해 보았다.
"저기요. 배고프시면 잠깐 모텔..아니 휴게실에 들러 뭐 좀 먹고 갈까요?"
"아 됐고.이 고속도로 최고속도 110km 아닌가? 아저씨 돈 많아?"
경부고속도로의 제한속도는 알다싶이 110km.자그마치 60km를 오바해 달
리고 있으니 간 큰 그녀도 좀 불안하긴한가보다.
(고맙게도 내가 낼 범칙금 걱정을 해주시고.혹시 나한테 관심있는건가?
이쁜 여자한테 관심받으니까 기분은 좋네.)
"아 그건요 손님이 아까 최대한 쏘라고 하셔서요."
"내가 쏘라고 했지 날아가라고 했나? 이러다 사고라도 나면 아저씨가 나 책
임질꺼야? 난 아직 아다..아니 시집도 못 간 처녀라고!"
조울증환자야 뭐야. 아까는 빛의 속도 어쩌고 저쩌고 신바람이 나서 나대더니
이젠 기분이 다운됐는지 신경질적인 말투였다. 만약 사고가 나서 책임지라면..
까지꺼 내가 책임지지 뭐. 데리고 살지뭐. 저 정도 미모라면 다리가 없어도 데
리고 살 수 있을것 같았다.양쪽다리가 없는 조울증환자라도 가슴과 엉덩이는
멀쩡할테니 기꺼이 받아줄 용의가 있었다.
"죄송합니다.그럼 속도를 줄이겠습니다."
"계속 쒜리 밟아!"
맞네 조울증환자.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리 갔다리 어쩌라는거야 지금. 거기
다 반말 찍찍갈겨대고. 이쁜 것들은 하나같이 다 싸가지가 없어. 누구한테 시
집갈지 몰라도 가슴하고 엉덩이는 괜찮으니까 냅두고 그 성질머리는 죽이고
가라. 오빠말 명심해라.
"부아아아앙."
신경질적으로 엑셀을 밟았다.그녀는 새침하게 앉아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듯
보였다. 짜증이 몰려왔다. 저 미친년을 태우고 부산까지 갈 생각을 하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내가 이래서 장거리 손님이랑은 왠만해선 말을 잘 안 섞는다. 이
런말 저런말 하다보면 괜히 오해도 생기고 특히 나는 상상력이 너무 풍부해서
쓸데없는 생각을 혼자 너무 많이 하곤해서 손님이랑 다투기도 한다. 지금처럼.
거의 습관적이다. 근데 나만 그런것은 아니었다. 택시기사들은 거의 다 그렇다.
그만큼 택시기사는 외로운 직업이다. 너무 외로워서 손님들한테 자꾸 말걸고
그러는거다. 꼬실려는게 아니다. 정말이다. 봐라 주머니에 콘돔도 없잖냐? 더
이상 나를 탓하지말고 내직업을 탓해라.사람을 외로움에 멍들게 하는 이 각박
한 사회를 탓하란 말이다.
차 안엔 오랜침묵이 이어졌다.괜히 말 잘못했다가 또 쿠사리먹기도 싫고 어린
애한테 반말 듣기도 싫어서 나도 입을 닫았다.그래 나 삐졌다 어쩔래?아무 생
각없이 그냥 달렸다.한번 무거워진 분위기는 다시 살려내기가 쉽지 않았다.
너무 오래 침묵이 이어지자 오히려 내가 더 불편했다. 액셀을 너무 밟아서 엔
진에 과부하가 걸리는지 rpm이 계속 올라갔다. 그래도 아랑곳 하지 않고 밟
아 제꼈다.침묵은 마취제처럼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있었다.
(먼저 말을 걸어서는 안 돼. 그러면 지는거잖아.)
그렇지만 너무 갑갑했다. 마음이 불안해졌다. 나 혼자서 행복했다가 또 나혼
자서 불안해지고. 나이먹고 너무 초라하단 생각이 들었다. 니까짓게 뭔데 날
이렇게 만드냐.백미러로 훔쳐보니 그녀는 조는 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눈을 지그시 감고 앉아 있었다.날 비참하게 만든 이 여자를 어떻게 해
서든 골탕먹이고 싶었다. 에라 한번 뒤져봐.속도를 100킬로 이하로 낮추었
다가 급하게 가속을 했다.
"끽..부아아아앙..180, 190, 200.."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흥분을 했다. 별것도 아닌게 까불어. 발바닥에 진물
나도록 악쎌을 밟았다. 아까 쿠사리 얻어 먹은것이 괜히 억울하다는 생각이
또 들었다.딱 억울한 깊이 만큼만 악쎌을 내리 밟아주었다.220km..
(아까 분명 니가 밟으라고 했다. 난 책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