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어진 개들의 하수처리장, 개농
장
멀리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김 팀장은 걸음을 멈
췄다. 그녀는 음악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가늠하다
니 아래쪽 길을 가리켰다.
"저쪽인 거 같아요."
우리 일행은 세명이었다. 동물단체의 활동가인 김
팀장과 박 간사, 그리고책취재 차 동행한 나, 우리
를 이곳으로 안내한 사람은 김 팀장이었다. 그녀는
3월에 이 개농장에 잠입한 적이 있었다. 차 안에서
그녀는 지난번에 찍은 사진을 내게 보여주었다. 사
진 속 개농장의 전경은 내가 자료조사를 하면서-
아온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개농장 구석에서
발견했다는 냉장고 사진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그
랬다.
"애들도 개소주 재료로 팔아먹는다는 거죠."
냉장고 안에는 눈도 못 뜬 새끼강아지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하나같이 눈을 꼭 감은 채 앞발을 가
지런히 모은 자세였다. 종을 불문하고 아기들은 같
은 얼굴을 가지는 것인지 냉장고 속 강아지들은 막
태어난 사람 아기들과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얼굴은 태어나는 순간의 표정이었을까, 죽는
순간의 표정이었을까.
(...)
개농장을 찾아 들어가는 길 ⓒ하재영
길의 끄트머리에 다다르자 김 팀장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 방향으로 고개
를 돌려도 숨 막히게 우거진 나무들뿐이었다. 길을
찾을 수 있는 단서는 희미하게 들리는 음악 소리뿐
이었다. 차 안에서 김 팀장이 했던 이야기대로라면
음악 소리는 근처에 개농장이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밤낮없이 음악을 크게 틀어놔요. 개 짖는 소리를
숨기려고 그러는지.”
김 팀장은 갈림길에서 두리번거리더니 아래쪽 비
탈길로 접어들었다. 음악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멜로디는 물론 가사까지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산속에 울려 퍼지는 노래는 수전 잭스의
「에버그린」이었다.
(...)
우리가 개농장 입구에 들어섰을 때, 음량을 최대
치로 높여놓은 스피커 속에서 수전 잭슨은 고막이
터질 것처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상록수처럼 변
치 않을 사랑을 노래했고, 개들이 울부짖는 소리
는 달콤한 단어들 사이 로 코러스처럼 끼어들었다
입구에는 어린 비글이 묶여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
에는 다리가 길고 삐쩍 마른 회색 개가 묶여 있었
다.100여마리 개들의 울부짖음과 그 울부짖음보
다 더 큰 음악 소리가 뒤섞여 나는 정신이 없었다
이 기묘한 상황에서도 어린 비글은 꼬리를 흔들며
낯선 사람들을 반겼고 활동가들은 벌써 개농장의
구석구석으로 흩어져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있었
다.
개농장 입구에서 사람을 반기던 어린 비글 ⓒ하재영
비글은 생후 4개월쯤 되어보였다. 암컷이었고 사
람에게 아무 경계심이 없었다. 아직 어려서인지 강
아지는 개농장 입구의 일 미터 남짓한 쇠사슬에 묶
여 있으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장소에 있는
지 잘 모르는 듯했다.
내가 다가가자 강아지는 배가 보이도록 발라당 드
러누웠다. 배를 쓰다듬어주자 천진난만한 몸짓。
로 흙바닥을 뒹굴었다. 강아지는 사람들이 찾아온
것이 기쁜 듯 자꾸 폴짝폴짝 뛰었다. 두어 걸음 뛴
뒤 목줄과 연결된 쇠사슬에 목이 홱 당겨지면서도
그좁은 반경 안에서 왼쪽으로 두번, 오른쪽으로
두번 뛰기를 반복했다.
개농장 입구에 있던 회색 개 ⓒ하재영
반면 조금 떨어진 곳에 묶여 있는 회색 개는 자신
이 처한 상황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짖지는 않았
지만 경계심과 불안감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개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뒷걸음질 쳤다. 그래봐야 역시
일 미터가 될까 말까 한 쇠사슬에 묶여 있는 개로
서는 도망을 칠 수도 몸을 숨길 수도 없었다.
개농장은 전체적으로 원형을 이루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입구에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뻥개장이
둘러서 있었다. 뻥개장은 여섯면이 모두 쇠창살로
만들어진 철제 사육장이다. 천장에 얹어놓은 판자
가 최소한의 지붕 역할은 하지만 뻥개장이라는 이
름 그대로 사방이 뻥 뚫려 있어 개들이 추위와 더
위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뻥개장은 약 50센티미터 높이의 지지대 위에 올라
가 있는 이른바 '뜬장이기도 했다. 개들이 배변을
하면 바닥면의 격자 구멍 사이로 똥오줌이 빠지는
구조다. 뜬장 아래는 오래된 배설물부터 방금 떨어
진 배설물까지 똥오줌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고 그
위에는 파리 떼와 구더기가 득실거렸다.
나는 개들의 상태를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철창은 온통 녹슬어 있었고 바닥면은 개들의 무게
를 지탱하느라 가운데가 움푹 꺼져 있었다. 이 위
태로운 뻥개장 하나에 많게는 일고여덟 마리가 들
어가 있었다. 거의 다 백구나 황구의 외모를 가진
진돗개 혼종이었다. 몇몇 개들은 항문으로 시뻘건
덩어리가 튀어나와 있었다. 회음부 탈장으로 복부
내장의 일부가 항문을 통해 빠져나오는 증상이었
다.
개농장 뜨자의 개들 ⓒ하재영
개농장의 안쪽으로 들어가자 레트리버, 맬러뮤트
같은 중대형 품종견이 보였다. 주인이 팔았든 유기
된 뒤 잡혀왔든 한때 는 사람과 함께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개들이었다. 여전히 사람에 대한 애정과
믿음을 버리지 않은 개들은 방문자를 반기며 철창
사이로 코를 내밀고 가까이 다가오려 애썼다
뻥개장 안에는 낡은 쇠그릇이나 찌그러진 냄비가
놓여 있었다. 빈 그릇이지만 오래된 음식물이 말라
붙어 있어 파리와 바퀴벌레가 들끓었다. 7,8월의
숨 막히는 폭염에 비할 바는 아니라도 초봄부터 이
어진 가뭄이 해갈되지 않은 6월 말의 더운 오후여
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물그릇은 찾아볼 수 없었
다 개농장을 운영했었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
다.
“개들에게 물을 준 적이 없어요. 개농장의 개들은
노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맹물을 마시지 못해요."
개농장에서 급여하는 음식물 쓰레기 ⓒ광주동물보호협회 위드
한쪽에는 커다란 드럼통들이 놓여 있었고 드럼통
안에는 개들의 먹이로 쓰는 음식물 쓰레기가 들어
있었다. 썩어 문드러져 액체 상태가 된 그것은퇴
사물처럼 보였다. 그 위 에도 파리와 구더기가 바글
거렸다.
나는 헛구역질을 하며 드럼통 옆에서 물러났다. 배
설물과 썩은 음식물이 뒤섞여 풍기는 악취로 숨 쉬
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개의 후각 능력은 인간의
약 1,000배다. 사람은 많은 것을 시각에 의존해서
판단하지만 개들은 인지와 소통에서 후각에 대한
의존도가 월등히 높다. 그들에게는 이곳에서 숨 쉬
고 있는 자체가 고통일 것이다.
내가 서 있는 건너편으로 검은 가림막이 씌워진 또
다른 사육 공간이 있었지만 그곳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중에 활동가들에게 들은 바에 의
하면 무덤처럼 어두운 가림막 안에는 발바리와 소
형 품종견 같은 작은 개들이 뜬장에 갇혀 있었다고
했다)
고개를 돌리자 조금 떨어진 곳에 놓인 낡은 냉장고
가 보였다. 차 안에서 김 팀장이 보여줬던 사진 속
의 냉장고였다. 나는 냉장고 문을 열까 말까 망설
였다. 죽은 새끼 강아지들이 쌓여 있으면 내가 그
장면을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내가 갈
등하는 사이 내 옆으로 다가온 김 팀장이 냉장고
문을 확 잡아당겼다. 시선을 돌릴 새도 없었다. 안
은 텅 비어 있었다.
(...)
음악이 서너번쯤 바뀌었고 디제이의 멘트가 흘러
나왔다. 그제야 나는 개농장과 어울리지 않는 이
노래들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개
달았다
"이제 가야 해요."
김 팀장이 재촉했지만 박 간사는 입구에서 서성거
렸다. 그녀는 먼저 비글 강아지에게 다가가 목덜미
와 등을 쓸어주었다. 다음으로 그녀는 회색 개에게
다가갔다. 회색 개는 여전히 불안한 표정이었지만
그녀가 머리를 쓰다듬자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손
길을 받아들였다.
갑자기 회색 개는 몸을 일으켜 뒷다리로 섰다. 두
발로 선 개는 박 간사와 키가 거의 비슷했다. 다음
순간 개는 앞발을 박 간사의 어깨에 올린 뒤 그녀
를 끌어안았다. 그녀도 개를 꼭 끌어안았다. 나는
사람과 개가 같은 몸짓으로 서로를 포옹하는 모습
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개를 안은 채 몇번이나 등
을 토닥였다
"구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잘 지내 ,,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었다. 회색 개는 결코 잘 지
내지 못할 것이다. 먹을 것이라곤 썩어빠진 음식물
쓰레기뿐일 것이다. 곧 다가올 폭염에도 물 한모금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더럽고 열악한 환경에서 질
병에 걸릴 것이고 질병으로 죽기 전에 도살장에서
먼저 죽을 것이다. 회색 개뿐 아니라 개농장의 모
든 개들에게 그 이 상의 삶은 없다.
“저 개들은 하루라도 빨리 죽어버리는 게 나아요
그 편이 훨씬 덜 고통스러워요"
비탈길 위에서 개농장을 내려다보고 있던 김 팀장
이 말했다. 화난 목소리처럼 들렸는데 얼굴을 보니
울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옆에 서서 마지막으로
개농장을 바라보았다. 스피커에서는 여전히 올드
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