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에도 없던 친구를 만났다.
사실은, 전시를 보러 가려 했어
보고 싶던 퍼포먼스가 있었고 몇 주 전에 사놓은 티켓이 있었다. 계획한 건 아니었지만 잘 들어맞는 휴무 덕에 꼭 보러 가기로 결심을 했었다. 그런데 여름철 장마처럼 날씨가 좋지 않았고 점심쯤 눈을 떴는데 이건 밤인지 아침인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그렇게 술렁이는 마음을 지니고 그럼에도 보러 가기로 발걸음을 당기는데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고, 이건 이년의 시간을 정리한 친구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좀 더 머리를 굴려볼까 했지만 밟히는 친구의 잔상이 나를 쫓아다녀 티켓은 포기하기로 했다. 덜컹거리는 봉에 머리를 기대는 시간이 길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가방 가득 뭔가를 넣고 친구를 만나러 연남동으로 향했다.
날씨는 여전히 좋지 않았고 우리가 내리기를 기대했다는 듯 억수같이 쏟아졌다, 비는.
우리는 어느 카페에 앉아 빙빙 얘기를 돌렸고 그러다 가족에 대한 얘기를 했고 그건 단지 세상의 끝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건 모든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고 우리는 다가오지 않은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왜 카메라로 그들의 얼굴을 담아놔야 하는 지에 대해 생각했다.
친구는 결국 울지 않았고 우리는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며 초점이 없는 눈을 비비고 또 비볐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에어컨 바람이 느껴졌고 이건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얘기였다. 우리는 자리를 옮기기로 결심했고 그건 어느 타코집으로 이어졌다.
비가 와서인지 두개의 테이블만이 채워져 있었고 최대한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꽤나 오랜 시간 동안 글과 그림이 적힌 종이를 들여다보았고 한국말이 서툰 직원은 우리에게 나쵸칩을 가져다주며 천천히 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고민끝에 두개의 타코와 샐러드를 주문했고 상그리아도 주문했다.
사실 우리의 목적은 술이었으니까,
입맛이 없어 하루에 한번 밥을 먹는다는 친구의 말처럼 너는 전처럼 젓가락질을 오래 하지 않았다. 그래도 오늘은 두번이나 밥을 먹는 거라던 친구, 나는 친구의 식사가 세번까지 이어지길 바라며 잠자코 귀를 기울였다. 사실 이건 내가 제일 못하는 건데 말이야. 너는 늘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니까 오늘은 꾹 참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음식은 참 맛있었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자는 말을 했었고 너는 그 곳의 노래들이 네 플레이리스트 같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다 너는 어제 이불을 뒤집어쓰고 보았다던 카모메식당에 대한 얘기를 했고 아직까지도 사치에가 엄마가 죽었을 때보다 키우던 뚱뚱한 갈매기가 죽었을 때 더 슬펐다던, 그러니까 사치에가 왜 삐쩍 마른 것보다 뚱뚱한 것들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의 첫 부분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했었고 나는 다시 그 영화를 떠올리며 읽었던 빨간색의 비평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고
또 우리는 각자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고 다음주 일요일까지 꼭 보자는 약속을 했다. 깍지를 끼고 손가락을 거는 약속은 아니지만 꼭 지킬 것만 같은 약속을 말이다.
너의 평안을 빈다.
나는 너의 이별에 대해 한마디 말도 덧붙일 수 없지만 그저 괜찮아지기를 바란다 괜찮아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