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은 닭볶음이 나왔다. 한 덩어리만 먹었다. 맛이 나쁘지 않아서 더 담을걸 했다. 허연 묵 같은 것이 맛있어서 숟가락으로 잘게 끊어서 막 퍼먹었다.
다음날엔 돈까스가 나왔지만 명태조림 한 덩이를 먹었다. 알고 보니 생선까스였다. 제길. 생선까스는 먹다 가시가 걸려도 좋은데..
다음날엔 잡채가 나왔는데 보질 못해서 잡채를 다 먹고 밥도 다 먹어가는데 계속 잡채만 쳐다봤다. 잡채 떠가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옆을 지나가는 남자의 식판에 수북히 담겨 흘러넘치는 잡채가 걸을 때마다 흘러내릴 듯 하고 가무잡잡 반들반들 탱글탱글한 잡채 한가닥이 식판 밑으로 탄력있게 후들거리며 덜렁댔다. 에이.. 밥을 덜 담았어야 했는데. 다음엔 음식을 담기 전에 앞에 뭐가 있나부터 보자.
다음날엔 카레가 나와서 밥도 카레도 넘치게 펐다. 카레는 맛없기 힘든데 이 놈의 카레는 맛대가리가 너무나 없었다. 카레에는 카레가루만 넣으라고. 녹말가루 넣지 말라고. 입에서 뭉클~ 덩어리가 느껴졌다. 넣었으면 잘 젓던가. 누가 내 입에 코를 풀었어? 맛도 없었지만 식감이 비위상했다. (볶음밥이나 덮밥 같은데도 녹말가루 넣지 말라고!! 탕수육 소스에나 넣으라고!) 그 날 밥은 다른 반찬도 전부 꽝이었다.
오늘은 보쌈이 나와서 좀 적게 집었다. 쩌어기 앞을 보니 묵무침이 아주 먹음직스럽게 보였고 고기를 되게 좋아하는 편도 아니다. 근데 먹어보니 아뿔싸. 묵도 맛있었지만... 나는 막날까지 실수를 저지르는구나. 배가 고파서 그랬는진 몰라도 보쌈이 정말 맛있었다. 같이 나온 갓 만든 생채도 맛있고. 매번 나오던 중국산 김치랑은 때깔부터 다른 막 담근 김치도 맛있다. 심지어는 새우젓 소스?도 맛있다. 딱 네 점 먹고 아쉬워하는데 "00는 고기 안좋아하나보다" 하길래 "네, 저는 고기는 그다지.." 라고 쓰리게 대답했다. '하지만 오늘 이것은 참 맛있네요. 흑흑'
아침을 맞아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능숙하고 주저함이 없다. 직장을 향해 저렇게 빨리 걸을 수 있다는 게 나는. 자신이 탈 버스가 오는 쪽을 향해 고개를 내밀고 조급해하는 모습이 나는. 버스에 앉아 태연히 휴대폰에 열중하는 여유가 나는. ...... 저 능숙한 사람들이 나를 압사시킬 것 같다. 걸으면서도 돌아서고 싶고 버스를 타도 집으로 되돌아가는 맞은편 버스를 보며 갈아타고 싶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주치는 사람들은 아침에 마주친 사람들이지만 그 때는 그냥 길가는 사람일 뿐이다. 아침에만 만나는 무서운 사람들.
일을 하기로 결심하고 나서 지키자고 한 것이 있다. 남 얘기 하지 않기. 고작 5일이지만 그 사이 그 생각이 더 굳어졌다. 뒷담화라는 것을 질색하는 건 아니다. 은근 듣는 것도 재밌고. 하지만 끼어서 혀를 놀리진 말자. 나는 멍텅해서 잘못 했다간 큰 화를 당할 상..
은근슬쩍 회피해도 집요하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 남의 과거는 뭐가 그리 궁금하며 남의 미래는 또 뭐가 궁금할까. 지금 할 얘기도 많지 않나? 날씨 얘기도 좋고 오늘 먹은 밥 얘기도 좋고. 그래봐야 집중해서 얘기하는 시간은 일이십 분인데. 날씨얘기 딱이잖아.
나와 같이 출근한 사람이 있는데 나오지 말라는 얘기를 결국 듣게 됐다. 내 일도 바빠 볼 새는 없었지만 아무튼 내보기엔 열심히 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있었다. 물론 안다. 노력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닌 것을. 내 모습이 겹쳐졌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나는 내가 그만뒀지만. 나는 좀 쉽게 놓은감이 있던 게 사실이고. 그녀는 나랑 좀 달랐다. 순한 인상과는 달리 나처럼 징징대면서 제풀에 떨어져나갈 그런 타입은 아닌 걸로 보였다. 내가 당사자도 아니니 단언은 못한다. 어쩌면 그녀는 아무 생각도 없을지도 모른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오래지않아 나도 그녀가 했던 일을 하게 된다. 그래서 더 내가 보였다. 내가 지금 저 자리에 있었다면 지금 같으면 나는 3일도 못갔다... 어쨌든 나는 다음주에도 다음달에도 꼭 봤으면 했다. 나 같으면서도 절대 나 같지 않은 그녀.
사람들은 쉬는 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아침부터도 그녀 얘기를 했다. 나는 그게 너무 듣기 싫었다. 나쁜 말은 거의 없었다. 뒷담화라는 게 없을 수도 없다 생각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뒷말은 되게 악의적이라기보다 미운정 비슷한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남의 말은 아는 사이의 자기들끼리 치고 박고 하는 그런 것이지 처음 온 사람을 가지고 하는 건 아닌가 한다. 뭐만 하면 다 쳐다 보고 모이면 수근거리고. 잘하네 못하네 이러쿵 저러쿵. 시선화살 뒷담화살. 생각만해도 견디기 힘들다. 그냥 아...무말 않고 어깨 톡톡 미소 방긋 해주면 안되나? 단언컨데 나도 틈틈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을 것이다. 그럴 여지를 흘린 내가 밉다. 그런데 비녀 대신 머리에 꽂고 다니는 기다란 연필에 대해선 아무도 얘기를 안한다. 나는 첫날부터 '머리에 그게 뭐니?' 소리를 들으리나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그렇다. 사람들이 그렇다.
둘째날 새로온 사람들 소개를 시켜줬다. 간단히 이름만 호명되고 박수를 받았다. 처음 사람이 인사를 하자 어느 누군가가이름이랑 나이 어쩌구..했다. 순간 살의를 느꼈다. 이름 얼굴이면 되지 나이는 머하러. 결혼은 했냐 애는 있냐도 하라지 왜. 노래도 하고. 물론 인사가 끝나고 골고루 들었다. 교회다니는가 소리까지. 언젠가 어느 자리에서 노래를 부르게 될 처지에 놓일까 두렵다. 자기소개와 노래자랑을 하느니 죽겠다.
적당한 사진을 붙이려고 했는데... 없다. 일주일간 사진 한 컷 찍지 않았다니 놀랍다. 이렇게 여유없이 불안 속에 사는 처지가 되었다. 5일 전부터 한 일이라곤 먹고 자고 일한 것 뿐이다. 그나마 위안은 5시 반 칼퇴에 토.일 놀기. 그래서 이나마 글이라도 끄적댄다. 음..인형질은 언제 한다...
다행히 내게 일을 알려주시는 분이 참 좋으시다. 한줄기 강렬한 빛. 흑흑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