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처 옮기기
어제, 그러니까 화요일날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왔다. 집을 알아본 건 그 전날인 월요일이었다. 계획에 있었던 게 아니라 모든 것이 우연한 타이밍의 연타였다. 원래 지내던 플랫은 플랫메이트들끼리 '바람 부는 정신 병동'이라고 부르던 곳이었다. 플랫 주인은 유난스럽게 절약을 요구하던 사람이었다. 남편과 이혼을 준비중이었고 자식들은 호주에서, 본인은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었다. 그 유난스러움 때문에 자식들도 질려서 잘 찾아오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 절약을 강조하냐면, 수돗물이 아까워서 설거지에도 음식물이 그대로 붙어 있을 지경이고, 습기가 많은 겨울철에 제습기를 틀어도 된다고 해놓고선 누가 쓰고 나니 어디다 숨겨 놓은 사람이었다. 그런 식의 절약 강조가 그 사람에게서는 지난 식사 때 먹은 그릇을 반나절이 지나도록 치우지 않고 그대로 올려 놓거나 썼던 걸레를 또 쓰거나 플랫하는 사람들에게 잔소리를 쏟거나 하는 식으로 이어진다. 어느 날 아침 별안간 본인이 정리한 수칙들이 적힌 종이가 부엌에 붙어 있었는데, 밤 9시 30분 이후로 부엌 사용 자제와 복도 절전, 전기장판 외 추가적인 난방 기구 사용 금지 등등이 적혀있었다. 그래 놓고 본인은 밤 열시가 넘었는데 복도 쪽으로 문을 열어 놓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해산물을 요리하는가 하면, 느닷없이 밤 열 두시에 2층에 올라와 온 복도 불을 다 켜고 시끄럽게 화장실을 청소하던 사람이었다. 앞 뒤가 하나도 안 맞는 사람. 게다가 사이비 종교까지 믿고 있으니 이 얼마나 그로테스크한 인물인가.
불법 플랫 영업으로 세금 포탈이나 하는 주제에 돈 욕심이 올랐는지 마스터룸 빼고 샤워실 두 개 있는 집에 사람을 아홉 명이나 받았다. 그중에는 억지로 벽을 세워 만든 방이 여러개 되는데 방음도 전혀 안 되고 창고 같은 방 하나는 주에 150달러나 받는다. 잠깐 머물다 가는 여행객도 받는 바람에 (그런 사람들은 더욱 집을 마음대로 쓰기 마련이다) 같이 사는 사람들이 정말 고생이 많았다. 여긴 플랫이 아니라 거의 '백패커스' 수준이었다. 함께 사는 분 중에는 밤 늦게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셰프 언니도 있었는데, 밤 늦게 샤워하면 시끄러우니 그냥 자고 다음날 아침에 씻으라는 말까지 뱉은 사람이다. 아니, 하루종일 기름 불 앞에서 일하고 온 사람한테 그게 할 소리인가? 집에서만큼은 편안하게 머물러야 할 것이 아닌가. 다들 집에 와서도 긴장 상태를 놓지 않고 지내야 했다. 마침 두두가 발견한 마스터룸을 보러 가서 마음에 쏙 들었던 월요일날 저녁에, 새로 이사 온 사람 세 명이 더 늘어서 부엌이 미어터질 정도로 복잡했고, 그 상황을 기점으로 마음을 완전히 굳히게 되었다. 이사 가자. 진짜 나가자. 그 날 주인에게 최대한 빨리, 할 수만 있으면 내일이라도 나갈 수 있다고 말했고, 이 집은 겉보기에는 가격 대비 깔끔하다는 이유로 집 없는 불쌍한 사람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아주 빨리 상황을 정리하고 새 집으로 이사를 갈 수 있었다. 당장은 이사를 떠날 수 없는 언니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월요일 밤과 화요일 아침에 부랴부랴 짐을 정리했다. 진절머리나던 집. 다시는 갈 일이 없기를. 어제 정오 즈음 새 집으로 가는 길에 기분 전환을 위해서 Toploader의 'Dancing in the Moonlight'을 짱짱하게 들으면서 왔다. 정말 달빛 아래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시간의 초조함에 관하여
지난 주부터 처음으로 온라인으로 외국인 클라이언트를 상대로 하는 번역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것도 예전에 프리랜서로 등록해 놨다가 어느 책을 읽고서 그곳이 생각나 접속하게 되면서 이어진 사건이었다. 다들 제각각인 시간대에 살다보니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던 새벽 세 시에 문의가 오기도 하고, 밤 열 두시에 잘 준비를 하는데 메시지가 날아온 경우도 많았다. 기술 특허라든지, 교육 관련 기사라든지 어떤 분야의 번역인지도 매번 달랐기에 나도 모르게 밤늦게까지 괜히 긴장을 하고 있었다. 새벽 세 시에 그 다음 24시간 전까지 제출해야하는 작업물을 받고 편히 잠도 오지 않아서 해가 뜰 때까지 타이핑을 하다가 잠이 든 때도 있었다. 보수도 거의 사기 수준이지만, 일단은 이렇게 시간이 자유로울 때 이런 저런 것들을 해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승낙은 하고 있는 편이다. 이사가 겹치는 바람에 오늘까지 마감하는 기사를 아침에 부둥켜 안고 억지로 써서 정오에 제출했다. 이러다보니 〈두리의 모험〉과 〈서프 매거진〉에 즐거운 마음으로 매진할 수가 없게 되었다. 나는 글을 쓸 시점의 내 감정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데, 즐겁지 않으면서 즐거운 척 글을 쓰는 거짓말이 정말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 좋은 일이 생겨도 감정을 추스리고, 다시 기분을 한껏 끌어올리고 작업을 시작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기분 좋은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도 힘에 부쳤고, 두두도 웰링턴에 가버리고 없어서 더욱 고역이었다. 연어 덮밥으로 겨우 감정을 추스리는 정도. 마음이 자꾸 초조해지고, 먹고 살기 참 힘들구나- 싶지만 이럴 때는 그냥 앞에 닥친 작은 것에 집중해서 하나씩 성공적으로 끝내다보면 기분도 감정도 원래 상태로 돌아가게 되어있다. 이제 곧 모험기와 서프 매거진 글 차례다.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전용 화장실과 샤워실에, 숲이 눈 앞에 있는 작은 베란다에, 벽면의 절반이 널찍한 통유리창으로 훤히 뚫려 있는 곳에 있으니 마음도 안정되어서 잘 쓸 수 있겠지. 일단 오늘 커피 수업에 가기 전까지 매진해보자고.
스팀잇에 둥지를 튼 지 +99일, 그리고 생일 사흘 전
'이번에는 처음으로 외국에 있는 상태에서 생일을 맞겠다!'며 올해 다이어리 날짜를 적어내려가고 있던 작년의 어느 날의 설렘이 고작 삼일 앞이라니. 게다가 내일은 스팀잇 내에서 꽤 의미 있게 치러지는(?) 100일 기념일이다. 날짜를 세기 전까지는 '설마 내 생일이 스팀잇 100일???'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이틀이 빗나가 있었다. 이번의 내 생일 선물은 그야말로 다 필요 없고 '이사'다. 그 집에서 생일을 맞이하지 않은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마스터룸이라 주에 내야하는 플랫비가 40달러 정도 비싸졌고 디파짓도 3주치나 내야했기 때문에 두두에게는 그냥 생일날 무슨 특별한 이벤트 같은 걸 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생일 전까지 지금까지 미뤘던 글들을 모조리 다 써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니면 생일날까지 글을 안 써도 되는 자유를 얻든지!(ㅋㅋㅋ) 이 부채감을 지워내고 홀가분하게 생일을 맞이하고 싶은데 그건 너무 무리겠지. 눈 앞의 작은 일들을 차근차근하다보면 '그 시간'이 오겠지,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