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자의 사진엽서
─────────────첫 번째 편지를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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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Water Beach, Coromandel, New Zealand / ⓒ chaelinjane, 2018
당신에게.
뜬금없이 보내는 이 편지가 갑작스레 찾아온 입추처럼 당황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제 편지의 수신인이 되어달라는 요구는 더더욱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겠지요. 하지만 저는 꽤 오래전부터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답니다. 아니, 답장을 쓰고 싶었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할 것 같네요. 당신은 편지를 보낸 기억이 없겠지만, 저는 꼭 당신의 물음들에 답을 하고 싶었어요. 편지를 쓰고 싶은 마음이 어찌나 치밀하게 차오르던지, 결국은 이렇게 펜을 들고 말았어요.
단 한 명의 당신에게만 편지를 쓰기가 무척 곤란하더군요. 이 사람에게 먼저 편지를 쓴다는 사실만으로도 저 사람에게 미안해지는 기분을 경험해 본 적이 있나요? 찬찬히 썼다가 한꺼번에 보내는 것도 좋은 방편이겠지만, 편지를 하나하나 써 나갈수록 아직 편지를 쓰지 못한 이들이 마음에 걸립니다. 시간에는 순서가 있고, 순서는 보통 '순위'로 인식될 때가 많지요. 편지를 쓴 행위의 유무가 상대를 얼마나 생각하는지에 대한 척도가 되어 불필요한 씁쓸함을 남기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 모두를 대신할 당신에게 이렇게 편지를 띄우는 거예요.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거 알아요.
요즘 일주일째 잠을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고, 하루 종일 약간의 두통이 지속되며, 비정상적으로 일찍 일어나고 있습니다. 결국 아침 일과가 끝나고 두통으로 기절을 한 것인지 그동안 밀린 피로감이 폭발을 한 것인지 필름이 끊긴 채 정오 무렵이 되었어요. 깨어남과 동시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더군요. 사람의 인생에는, 아무리 어렵더라도 해야 할 일을 이성적으로 담담하게 해나가야 할 순간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 무던함을 지속하는 것에서 단단한 에너지가 생겨나기도 하고요.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척 할 일을 이어나갔어요.
오후 네 시, 태양의 기운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쿵쾅대던 심장도 지는 해를 따라 차분해졌고요. 곤욕스러운 일들을 마치고 이렇게 햇볕을 맞으며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으니 고단했던 하루를 되찾는 기분입니다.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마음을 생각하자 구원, 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제가 머무는 곳은 숲이지만, 이따금씩 갈매기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갈 때가 있답니다.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어요. 심지어 동네 이름도 '바다가 보이는 곳'이라는 뜻이랍니다. 실제로 바다가 보이는 집은 몇 안되지만요. 이미 보셨겠지만 이 편지에는 사진이 동봉되어 있습니다. 오늘 보낸 사진에는 해 질 무렵의 바다가 담겨 있어요. 뉴질랜드 코로만델의 핫 워터 비치, 이 해변은 이름처럼 신기하게도 모래를 파면 뜨거운 온천수가 나와요. 사진의 아래쪽을 보면 희미하게 열기가 보인답니다. 덕분에 가장 따뜻한 겨울 바다를 느낄 수 있었어요.
이 사진 속에 깃든 따뜻하고도 냉정한 평온이 당신의 복잡한 영혼에 잠깐이라도 닿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조금씩 여름의 열기가 사그라짐을 느낄 때면, 여름이 모래시계의 가느다란 허리를 넘어와 이곳에 쌓이고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우리는 그렇게 천천히 계절을 교환하는 겁니다. 금요일, 주중의 찌꺼기를 잘 비우시길 바랄게요.
안녕하세요, 마나마인을 통해 사진엽서를 보내게 된 채린제인(
마나마인에서 새롭게 시작할 연재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Mary Warner Marien의 『100 IDEAS THAT CHANGED PHOTOGRAPHY』라는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워낙 방대한 책이라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읽는 도중 '사진 에세이'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좀 더 고민하다가 '편지' 형식을 갖춘 사진 글이라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이 편지를 읽으시는 분들께 제 언어가 조금 더 가깝게 느껴졌으면 해서요. 실제로 편지를 쓰고 보내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습니다. 다만 뉴질랜드라는 나라가 '세상의 끝'에 있다 보니 우편 요금이 상당하더라고요! 그 역할을 '마나마인 우체국'이 훌륭히 해 줄 것 같습니다. [기록자의 사진 엽서]에서는 편지의 문체를 빌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차근차근 꺼내보고자 합니다.
제 편지의 수신인이 되어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