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지나가고 아름다움은 남는다,
베토벤
오늘은 날이 좀 풀렸다했나요, 하지만 저에겐 유독 추웠던 하루였습니다.
유학 전까지 일하기로 했던 가게에서 난데 없는 해고를 당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저는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단지 단 것이 아주 많이 당기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하나 잠시 막막해졌을 뿐.
가게에 일하면서 좋았던 건 홀로있는 시간의 확보.
블루투스 스피커로 크게 들을 수 있는 클래식.
그리고 틈틈히 찾아오는 손님들과의 짧은 대화.
그 외에도 남는 시간마다 읽을 수 있는 책과 마실 수 있는 따뜻한 물,
그리고 편안하진 않지만 안락했던 의자, 마지막으로 성격좋은 사장님까지 어느것하나 불만스러운 것이 없었습니다.
단지 집으로 돌아오던 길 어두컴컴한 하늘을 보며 느끼는 약간의 고독이 조금 아쉬울 따름이었어요.고독한 것인지, 내가 잘 하고있는 것인가에 대한 불안함인지 도통 알 수가 없는 나날들이 꽤나 지속되었지만 저에게는 그것이 행복이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오늘, 사장님의 대대적인 결심으로 저는 이번주까지만 일을하고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작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아트페어샵을 운영하는 사장님은 이제 본격적으로 본인 작업에 몰두하고자 하셨습니다. 가게에 매여있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작가로써의 삶을 살아가고자 했던 것이었지요. 그러다보니 매장 전체를 맡아줄 매니저가 필요했고, 오전시간에 학원을 가야했던 저는 그야말로 탈락이었습니다. 어쩐지 평소와 달리 일찍 가게에 와 저와 시간을 보내던 사장님은 어렵지만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저는 의외로 담담했어요. 실패의 경험이 많아서인지 앞으로의 겪게될 것들에 대한 연습임을 알았던 것인지 그저 묵묵히 고개만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간만에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는데,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라 미안하다.'
저를 마음에 들어하셨다는 것을 저 또한 압니다. 그랬기에 그곳이 더 좋았습니다. 저의 경제적인 부분을 채워줄 월급과 꿈을 든든히 응원해주는 사장님을 하루만에 잃었습니다. 사장님의 기나긴 설명에도 아무렇지 않게 맞장구치며 그녀의 꿈을 응원했던 순수한 소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오로지 내 현실을 직시한 취준생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사실 저는 취준생이란 단어를 좋아하지 않고 더군다나 제겐 어느 한순간도 해당되는 날이 없으리라 확신하며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현실앞에 저를 이름지어줄 것은 '취준생' 이란 단어와 제 이름, 단 두가지 뿐임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일을 계기로 저는 완전히 저에게로 시선을 고정시켰습니다.
현실에 끌려살았던 지난 몇달을 돌이켜보니, '어쩌면 지금 나에게 강한 변화의 바람이 필요했던 것이었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서의 삶이 좋고, 내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가 희미하지만 강하게 저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조금 느리게 걷고있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저의 무디고 조심스런 결단에 힘을 실어줄 조력자가 찾아온 것일까요.
이십대 초반까지만 해도 돈이라는 것은 단 한번도 저의 근심거리가 된 적이 없습니다.
부족하면 그저 얹어주던 부모님의 손길에 저는 금새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물 세 살이 된 해에 부모님께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겠다 약속했던 그 날 이후, 단 한순간도 돈이 저의 걱정거리로 부터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모든 결정은 저에게 달렸고 그 책임 또한 오로지 저의 몫이었습니다. 가끔 그것은 죽을만큼 고통스러워서 사람들이 목숨을 끊어버리는 것의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줄 때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책임이라는 것은, 무섭고도 큰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인 측면에서 책임이란 것은 어쩌면 돈과 가장 밀접한 것임을, 부양할 가족의 존재 유무와 관계없이 독신의 존재라 할 지라도 그것은 가장 큰 부분 임을 다시 깨닫습니다.
제 이야기의 요점은 돈이 다란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책임의 일부일 뿐, 삶을 영위하는데 가치있는 것은 돈보다 아름다운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난데 없는 해고를 당했고 또다시 인생을 설계해야하는 시점에 서 있기에 경제적인 측면이 중점적이네요.
사실 오늘은 베토벤의 이야기를 쓸 요량으로 이곳에 앉았는데 어쩌다보니 저의 인생푸념만 잔뜩 늘어놓게 되었습니다. 청각을 잃고도 천재 작곡가로써 명성을 펼치게 된 그의 인생보다 오늘만큼은 제 인생과 감정이 더 소중했기 때문이겠지요.
이전 시대를 살아간 예술가들 중 우리가 존경해 마지않을 위인은 물론, 위로를 더해주는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저의 이야기를 빗대자면 빈센트 반고흐가 떠오르네요. 동생 태오의 도움으로 재정적인 위기는 간신히 극복하며 살아가지만 37세의 나이로 사망한 비운의 예술가 빈센트. 그를 떠올리며 저는 이밤 위로를 받습니다.
그의 그림에는 그의 짧았던 삶 때문인지 아주 깊은 여운이 남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