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 에세이] 5. 완성된 멜로디 버리지 못하는 가사 - 김동률 case 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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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눈이 멀어서 행복했던 날들 이젠 꿈이었어라 그저 흘러가는 물처럼 멈출수도 없는 세월탓으로 그럭저럭 살아가긴 했으나 무엇하나 보여줄것 없으니 지금와서 또 누군가를 만나도 섣불리 널 지울수가 있을지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잘 있었냔 인사가 무색할 만큼 괜한 우려였는지 서먹한 내가 되려 어색했을까 어제 나의 전활 받고서 밤새 한숨도 못자 엉망이라며 수줍게 웃는 얼굴 어쩌면 이렇게도 그대로일까
김동률님의 노래의 도입부 중 가장 김동률 스러운 소절과 가장 좋아하는 소절을 뽑아 봤습니다. 앞선 케이스 스터디에서 본 이승환님의 케이스와는 상반되게 전체적으로 가사들이 호흡이 긴 서술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youtube ]
희망 - 김동률

2집의 희망이라는 곡을 듣다보면 피아노 선율에 맞춰서 가사를 써내려간 느낌이 듭니다. 실제로 가사없이도 충분히 완성된 곡이라고 할만한 곡이기도 하구요.
정해진 리듬에 가사를 배치한다기 보다는 오른손이 피아노 건반을 짚고 넘어가듯 다소 호흡이 긴 가사를 쭈욱 풀어냅니다. 마치 재즈보컬의 자유로운 스캣에 하고싶은 말들을 늘려서 풀어쓴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선율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였을까요? 아니면 뉘앙스를 살리기 위해서 어느 단어 하나도 버리고 싶지 않아서 였을까요? 아래 소절의 2,4째 줄에서는 하고싶은 이야기를 정해진 마디 내에서 마침내 전부 표현해 내는 느낌입니다.

사랑에 눈이 멀어서 행복했던 날들 이젠 꿈이었어라 그저 흘러가는 물처럼 멈출수도 없는 세월탓으로 그럭저럭 살아가긴 했으나 무엇하나 보여줄것 없으니 지금와서 또 누군가를 만나도 섣불리 널 지울수가 있을지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 김동률

김동률의 모든 곡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고, 부럽고 할 수 있다면 훔치고 싶은 소절입니다. 어쩌면 엄청나게 식상한 소재가 될 수도 있는 이야기를 낮설게 시작하여 묘한 상황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마치 어제 만난 것 처럼 잘있었냔 인사가 무색할 만큼 괜한 우려였는지 서먹한 내가 되려 어색했을까?
그러다가 이 노래의 이해하기 위한 모든 상황 설명을 2줄 만으로 명쾌하게 끝내버립니다. 누구나 한번 쯤 겪어봤을 법한, 하지만 뻔하지 않은 표현으로 이 곡의 배경을 그려놓고 곡은 듣는 사람이 하나의 짧은 사랑이야기를 경험하게 합니다. 5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안에서 말이죠.
어제 나의 전활 받고서 밤새 한숨도 못자 엉망이라며 수줍게 웃는 얼굴 어쩌면 이렇게도 그대로일까
구체적인 어느 순간의 장면과 감정들을 섬세하게 묘사하여 듣는 사람의 상상력을 도움삼아 하나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곡을 만드는 기이한 재주가 있는 김동률의 순간 포착, 묘사능력은 "도대체 이사람이 무슨 (사랑)경험을 해왔길레 이런 곡을 쓰는것인가?" 혹은 "누가 이런 디테일한 아이디어를 주는걸까?"라는 생각이 절로 나게 합니다. 네... 그 능력이 많이 부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