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는 길에 라디오에서 들은 이 노래, 참으로 오랫만입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사계"
먼저 들어보시죠.
얼핏 듣기엔 참으로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곡입니다.
가사를 볼까요?
빨간꽃 노란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도네 돌아가네
흰구름 솜구름 탐스러운 애기구름
짧은쌰쓰 짧은 치마 뜨거운 여름
소금땀 비지땀 흐르고 또 흘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저 하늘엔 별들이 밤새빛나고
찬바람 소슬바람 산 너머 부는 바람
간밤에 편지 한장 적어 실어 보내고
낙엽은 떨어지고 쌓이고 또 쌓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흰 눈이 온세상에 소복소복 쌓이면
하얀 공장 하얀 불빛 새하얀 얼굴들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공장엔 작업등이 밤새 비추고
빨간 꽃노란 꽃 꽃밭 가득피어도
하얀 나비 꽃나비 담장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미싱은 machine의 일본식 발음으로 재봉틀의 다른 이름입니다.
가사에서 미싱은 밤이고 낮이고 봄여름가을겨울 할것 없이 잘도 돈다고 합니다.
우리의 60-70년대 노동상황이 실제로 그랬습니다.
봉재공장에서 일하는 10대 중반(주로 중고등학생 나이)의 젊은 여성들을 시다라고 불렀는데 그들은 형편 없는 월급을 받으며 법정근로시간을 훨씬 넘는 노동을 하여, 자신의 부모님께, 대학 간 오빠에게, 어린 남동생의 학비로 돈을 부치고 스스로는 배를 곪기도 했습니다.
전태일은 그런 동생같은 시다들에게 자신의 월급으로 붕어빵을 사다 주곤 했던 마음 착한 청년이었습니다.
시다는 경우에 따라 4-5시간만 자고 하루 14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러다보면 재봉틀 바들에 손가락이 관통되는 부상을 입는 일 정도는 흔했고, 과도한 육체노동으로 생리불순, 하혈, 폐병 등등 온갖 병을 얻기도 했습니다.
심한 병을 얻으면 공장에서 해고되기에 쉬쉬하고 참다가 더 심각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마음이 착했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그런 시다들을 보면서 뭔가 도울수 없을까를 고민하다가 근로기준법을 공부하게 되었고, 공부를 할수록 현실의 벽을 더 크게 느낍니다.
이미 근로기준법은 그러한 상황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사용자도, 법원도, 심지어 노동부도 그 법을 지키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청년 전태일의 마지막 호소는 자신의 목숨값으로 대신합니다.
23살 젊은 나이이 온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분신을 하며 그가 남긴 유언은
범블비 @bumblebee2018 였습니다. 흥미롭게 보셨다면 팔로우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