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트비아의 도로는 정말 더럽다.
아스팔트의 질이 좋지 않은지, 타이어에 많이 밟힌 곳은 움푹 꺼져 있다.
핸들이 좀만 꺾여서 도로 안쪽으로 약간이라도 들어간다 하면 갑자기 땅 아래로 훅 꺼진다.
멀리서 차가 오면 다시 갓길로 비켜줘야 하는데
패인 곳에 갇혀 다시 갓길로 올라가지지가 않는다.
그것 때문에 위험했던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렇게 목숨을 내놓고 달려 리가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리가라는 팻말은 있는데, 도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한 시간을 넘게 달려서 도심이 나왔다.
리가는 정말 큰 도시인가 보다.
미리 예약해 놓은 호스텔로 들어가서
일단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할 지 찾아보고 있었다.
으레 하던 대로 이것저것 찾아볼 생각으로 노트북을 열었다.
하지만 우리의 본능은 메신저로 향한다.
그때 퍼뜩 든 생각.
스웨덴에서 만났던 소담이, 예전에 리가도 갔었다는 사실.
그런데 메신저에 들어왔다!
좋아!
나보다는 더 잘 알겠지?
“나 방금 리가 도착했는데 말이지, 여기 볼 거 뭐있어?”
“지금 리가라고?
나 좀 있으면 비행기타고 리가가!”
어? 지금 ... 나 글씨 제대로 본 건가?
지금 분명 리가에 온다고 한 거 맞지?
“나 지금 이스탄불 가는데 리가 경유해서 가.
근데 이스탄불 가는 게 다음날 비행기라서 리가 공항에서 하룻밤 노숙해야 돼.”
다시 한 번 가슴에 뭔가가 쿵 하고 떨어진다.
신이 있다면 갚아줄 기회를 달라고 했었지?
신도 나한테 무심하지는 않은가 보네.
생각보다 아주 일찍. 그것도 유럽에 있을 때 기회를 주네.
이렇게 한 발짝 더 너에게로 다가간다.
원래 리가 클럽 투어를 돌려고 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우선순위라는 것이 존재한다.
앞뒤 가릴 거 없다. 그날 모든 일정을 다 제낀다.
공항까지 길을 봐야겠다. 거리를 재 보았다.
10km밖에 되지 않는다.
자전거로 충분히 갔다 올 거리다.
먹을 것 좀 사주고 같이 노숙을 해 주면 될 것이다.
빈손으로는 못 가겠다.
길도 잘 모르면서 무작정 마트에 갔다.
그런데 뭔가 예감에 이 아이가 혼자 올 것 같지 않다.
그 아이 것만 샀다가 떼거리로 몰려오면 어떡하지?
계속 고민을 한다.
적게 사가서 그 아이만 주는 게 나을까?
많이 사가서 인심을 좀 쓰는 게 나을까?
다시 전화해서 물어보고 싶지만
지금은 마트인지라 [인터넷이 닿지 않는지라]
연락을 할 방법이 없다.
고민 끝에 모두를 챙겨주는 길로 가기로 한다.
이 아이는 극한의 단맛을 매우 좋아하니
초코 케이크에 단 쿠키들로 잔뜩 채워 넣었다.
대략 5인분 생각하고 샀다.
아차, 나 저녁도 먹어야지.
아무리 누구를 챙겨준다고 해도 일단 나도 먹어야지.
고기를 뒤져보았다. 500g에 400원 하는 고기가 있다.
난 좀 이렇게 먹어도 좋다.
난 너를 챙겨주는 것만으로도 배부르다.
호스텔로 돌아가는 길.
난 분명 왔던 길로 가는데, 풍경이 이상하다.
뭔가 길을 잘못 든 것 같다. 1시간을 배회하다가 할 수 없이 택시를 잡아탔다.
어떡해서라도 너의 랜딩 시간에 늦으면 안 된다.
기본요금 1.2라츠로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 택시는 기본거리도 없이 타자마자 요금이 올라간다.
그리고 거리비례가 아닌 시간비례다.
1분에 0.3라츠.
생각보다 많이 잘못 가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신호등이 많아서 한 8분 달렸다.
그랬더니 3.5라츠.
거의 8000원이 나왔다.
씁쓸하다. 하지만 늦지 않는 것이 우선이다.
일단 저녁을 해 먹는다.
고기나 구워서 먹겠다고 포장을 뜯는 순간 난 경악을 했다.
그것은 고기가 아니었다. 등마루뼈였다!!
뼈에 고기가 드문드문 붙어 있었다.
역시 지나치게 싼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굽긴 글렀다.
물에 조금 삶았다가 구워 보았다.
냄새를 잡으려고 후추랑 소금을 뿌렸다.
그런데 냄새가 뭔가 이상하다.
자세히 맡아보니 계피다!
너를 보러 간다니 다른 건 되는 일이 없구나.
눈물 나는 저녁식사를 하고 리가 공항으로 향했다.
10시 30분 랜딩이니 넉 잡고 9시에 출발했다.
10km를 1시간 반에.
오르막을 달리는 속도로 달리면 된다.
하지만 평지를 눈앞에 두고 이렇게 느리게 달리는 것은 실례다.
평소보다 느리게 달렸음에도 9시 45분이다.
랜딩하려면 1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동안 쉴 새 없이 생각한다.
이 아이를 맨 처음 만나면 뭐라고 말해야 할까?
처음 볼 때 내가 던지는 말과, 그에 따르는 반응이 오늘 분위기를 결정한다.
그 생각만을 계속 하다 보니 그새 시간은 랜딩 시간이다.
속이 쿵쾅거려 미칠 것 같다.
아직 첫마디를 어떻게 뗄 지 정하지도 않았는데.
전광판을 보니 랜딩 했단다.
입국장 너머로 짐을 찾는 소담이의 모습이 보인다.
아직까지도 첫 마디를 생각하지 않았다.
어떡할까?
난감하다.
그리고 캐리어를 끌고 나오는 소담이의 모습이 보인다.
“꺄~”
“이게 누구야!”
“어떻게 이런데서 볼 수가 있냐? 진짜 반갑다!”
첫마디 걱정은 기우였다.
웁살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소담이가 신나서 입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내 앞에서는 웃는 모습을 잘 보이지 않던 이 아이도 이 날 만큼은 서로 웃었다.
행복은 어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걸 보고 있는 것으로도 행복해 질 수 있다.
좀 있으면 교환학생 기간도 끝나고 집으로 간단다.
그 전에 터키 여행을 한 다음 파리에서 가족을 만나서
유럽 여행을 하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지금은 터키에 가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면서 좀 쉬려 간다고 한다.
가족과 여행하는 계획을 보여주면서 고생하는 이야기도 한다.
수다가 마르지 않는다. 이 아이와 이런 적은 처음이다.
이 맥을 끊기 싫었다.
어떻게 될지 몰라 노트북을 가져왔지만 인터넷이 안 잡힌다고 둘러댔다.
이 순간순간이 너무 행복하다.
내일을 위해 리가 공항 벤치에서 서로 마주보면서 누웠다.
“여기서 이렇게 보다니! 대박!”
"그러게 말이야!"
대박이야?
너만 대박이 아니야.
계속 끊임없이 말을 하다가 언제 잤는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눈을 떴다. 몸이 무겁다.
역시 안정된 잠자리가 중요하다.
신경이 곤두서서 잠을 잘 자지 못한다.
7시에 일어나서 아침이나 먹고 보내려고 했는데 일어나니 8시다.
아침을 사준다고 한다.
“편의점 가서 빵이나 뜯자”
그리고는 어김없는 불호령.
“그게 무슨 밥이야!”
역시 소담이답다.
입국장에 가니 카페가 있었다.
“이 정도는 돼야 밥이지!”
또 이렇게 혼났다.
다시 기가 죽는다.
출국장에서 보내주고 싶었지만 체크인 줄이 너무 길다.
난 지금 이 긴 시간동안 이 아이와 재미있게 놀아 줄 언변은 없다.
그럴 것 같으면 빨리 빠져서 좋은 이미지로 남는 것이 낫겠지?
줄 서기 전 공항 앞에서 6개월 뒤를 기약했다.
반가웠어.
그리고 이제는 이런 식으로는 정말 볼 일 없겠지?
한국에서 건강하게 보자.
안녕!
내일 이 시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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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1_12 욕창 터지고, 기차에 실려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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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1_7 이런 곳에도 한국사람?
CHAP1_5 첫 주행 + 1_6 북한도 자전거로 달린다고?
CHAP1_3 + 1_4 Bryan Almighty + 자전거의 운명은?
CHAP1_1 + 1_2 인천 출발 + 히드로 도착
CHAP0 준비
CHAP0_번외 가져갔던 장비 일람
CHAP0_6 출국 그리고...
CHAP0_4 자전거 맞추기 + 5 쉥겐조약
CHAP0_3 항공권과 장비 마련하기
CHAP0_2 어디를 어떻게 가볼까?
CHAP0_1 다짐
혹여나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시는 스티미언분들.. 도움이 되셨을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