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bookeeper 인사드립니다. 스티미언이 된지도 벌써 두달이 다 되어 갑니다. 처음에는 남의 집에 가 앉아있는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제법 많이 왕래하는 분도 생기고 그분들과 소통하다 보니, 이곳에 오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무슨 이야기들을 읽고 그 글에 무슨 답을 할까... 하는 생각들로 설레기 까지 합니다. 물론 보팅액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크지요ㅎㅎ
오늘은 필리핀 사람들의 ‘느림’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저는 직장생활을 워낙 오래하고, 그것도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에 맞추지 않으면 큰일나는 그런 일들을 주로 해 왔던 터라 시간 관념이 굉장히 정확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말을 앞뒤에 딱딱 맞게 해 오던 버릇이 있어서 간혹 음식점이나 관공서 서비스 센터 등등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받는 사람들이 제 몫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에 있어 소홀한 모습을 보면 꼭 그 부분을 지적히고 개선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직장에서는 그래서 일 잘하는 직원이었고, 밖에서는 까다로운 사람이었어요. 신랑 표현에 의하면 ‘퓌곤한 스타일’요 ㅋㅋ 그래도 한국으로 치면 서비스 강국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언성이 높아지거나 비상식적으로 받아들여 일이 힘들어진 적은 없었거든요. 틀린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굉장히 조목조목 이야기를 하니까 딱히 반박할 여지도 없고, 뒤에 가서는 욕했겠지만 말이죠.
그러던 제가 필리핀에 온 첫 달은 외계세계에서 외계인들을 상대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맥도날드에도 스타벅스에도 줄을 서면, 손님이 많아서 좀 빠릿빠릿 해도 좋으련만, 직원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평소와 같이 손님들을 응대합니다. 심지어는 굳이 사람들 바글거릴 때 안해도 되는 멤버쉽카드 만드는 것까지 들이밀며 그들을 설득합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속이 부글부글 끓어도 그들은 너무나 온화해서 처음에는 몇마디 하다가, 이러다간 내가 화병 걸리겠다 싶어 아예 입을 닫고
그들의 느림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가 이곳으로 오기 전 반 년 정도 주재원으로 먼저 와있던 신랑이 저에게 단단히 주의를 줬거든요.
너 한국에서 하던 식으로 여기저기 컴플레인 하다가 총맞을지도 몰라ㅜ 그러니 조심해ㅜㅜㅜ
필리핀 상점이나 기관에는 저렇게 Security guard 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찰처럼 제도권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사설 경비업체 정도의 기관에서 일정기간 교육을 거치고 파견하는데, 놀랍게도 총기사용이 허가되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으면 경고발사 없이도 그냥 사람을 쏴 죽일 수도 있습니다ㅜ
처음 올 때는 치안이 지금처럼 좋지 않을 때라 실제로 몰이나 관공서에서 난동을 부리는 사람이 살해된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장난으로 겁주는 신랑 이야기에 저는 진심 겁을 잔뜩 먹고 왠만하면 이야기 안하고 넘어갔습니다. 총맞을까봐ㅜㅜㅜ
최근에 한국에서 가져온 LG냉장고가 고장이 나서 서비스센터에 몇번을 전화해서 테크니션을 보내달라고 요청을 했는데 온다고만 하고 계속 지연되서, 아예 오래된 냉장고를 폐기 처분하고 다른 냉장고를 구입해 쓰고 있는데, 며칠 전에 로비에서 인터폰이 왔더라구요. 너는 누구냐? Lg 냉장고 고치러 왔어~ 제가 말했습니다. 응 다 고쳤으니 썩 꺼져... 실제 최근 일입니다.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 저도 시간이 이렇게 흐르는동안 참 많이 변했습니다. 오늘 아이를 데리러 오는 길이 하나도 안 막혀서 밥이나 먹을려고 파스타 하나를 주문했는데 삼십분째 기다리다가 내 파스타 좀 빨리 줄래? 라고 이야기하며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만... 이라고 붙이는 경지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sorry 란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파스타를 주더니 맛있게 먹어~ 하고 생글거리며 퇴장합니다. 분명히 까먹고 있었어 저것들... 이라 생각하며 저는 이야기 했어요. 땡큐!!
이 아이들은 느리지만 착합니다. 어떤 이들은 직업이나 자기자리에 별로 연연하지 않기 때문에 별 생각이 없어서 그렇다고들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참 착한 것 같습니다. 물론 집에서 일하는 메이드나 기사들한테 몇 번이나 당하고 이것들... 가다가 다리나 부러져라... 라는 소리를 많이도 했지만.
한국에서는 아예 아이들의 출입을 제한하는 음식점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아이들이 아무리 돌아다니고 시끄럽게 해도 별로 주의도 주지 않고 오히려 그 아이들을 예뻐합니다. 그렇다고 자기 아이들에게 주의도 주지 않고 그냥 놔두는 엄마들은 문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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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우리 둘째가 돌이 갓 지났을 때 사진같아요. 제가 사는 콘도 일층에 있는 스타벅스인데, 애기가 저러고 놀아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아요. 그런 분위기 때문에 더 아이도 자연스럽게 행동을 한 것이구요.
아침마다 엄마랑 산책길에 들러 한시간 넘게 시간을 보냈던 곳이라 어린이집 가기 전까지 저기서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이가 순해서도 그렇지만 저곳 직원들은 둘째를 너무 이뻐해주었고 아이가 걷고 말하고 할 때를 다같이 기뻐해주고 박수쳐주고 했지요. 우리 둘째만 보면 스타벅스베이비 라며 한 날은 그 가게 ‘Customer of this Month’에 아이의 사진을 걸어주기도 했어요.
그리고 이 아이들은 한중일... 세나라 사람을 기가막히게 구별합니다. 제가 봐도 딱 일본인 딱 중국인 한국인이 보일 때도 있지만 가끔은 기가막히게 그들을 알아보고 한국사람한테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합니다. 한 번은 물어봤어요. 너희들은 귀신같이 한국사람을 알아보네? 어떻게 하는거야? 그랬더니 귀속말로 이야기 해줍니다.
‘우리도 약간 헷갈릴때는 그냥 한 3초만 쳐다보면 돼. 끝까지 안 웃으면 그게 한국 사람이야’
그말에 충격먹고 저는 웃는 연습도 했더랬어요. 제가 진짜 안웃는 얼굴이었거든요. 웃으며 일하는 직업을 가진 적도 없고 또 기본적으로 잘 웃지 않는 사람이라, 무표정하게 있을 때는 화난 사람같아서 친구들이 나중에 나중에 고백하곤 했어요. 난 니가 엄청나게 차가운 사람인줄 알았노라고. 차갑기는요~ 세상 따뜻한 사람입니다ㅋㅋ
그때부터 의식적으로 웃는 연습을 했더니 정말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더군요. 매일 가서 운동하던 gym에서 같이 운동하던 외국인들이 말을 걸어오고, 실제로 둘째아이랑 수영장에서 같이 놀던 애기 엄마랑은 그렇게 운동하다 만나 이야기 나누다가 절친이 되었어요.
물론 그 친구도 얘기하더군요. 나 진짜 심각하게 보였다고, 매일 운동만 씩씩대며 하다 가더라고...
우리가 보기엔 돈도 없고 가난한 그들이지만 그들은 참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행복지수가 우리보다는 훨씬 높습니다. 그 오랜시간동안 한국에서의 제 삶도, 치열하고 힘들었지만, 제 삶에 독보적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것을 이루었구요.
이곳에 온 이후로는, 이 느림과 느긋함에 적응하며 보낸 시간들이었습니다. 속에 천불이 나고 울화가 치밀고 하던 초기 2-3년은 정말 적응하느라 힘들었는데, 어느새 가끔 한국에 가면 너무도 빠른 시스템에 발맞추기가 힘들 때가 많습니다. 이게 바로 내꺼야. 이 삶이 내 삶이었고 내가 앞으로 살아야 할 삶이야. 하며 다짐을 해보지만, 어느새 저도 이 곳에 사는 것이 더 편해졌습니다.
갑자기 한국을 가게 된다면 아마 또 엄청난 적응기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아마 최종적으로 내가 살 곳은 한국이 될테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더~ 느긋하게 살고 싶어요. 늦어도, 늦으면 좀 어때... 안되면 좀 어때...
바로 그 느림의 효과인 것 같아요. 여기서도 나름은 엄청나게 부지런하게 돌아다니는데도 제가 순간순간 하는 생각이나 행동들을 자기 전에 찬찬히 떠올려보면 예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것들이 많아서 깜짝깜작 놀랍니다.
오늘도 사랑하는 우리 신랑은 찬물을 끼얹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