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향이 있다면?
그 향은 마치 정원에 가득 핀 꽃처럼 화사할 것이다. 꽃내음이 서로 어우러져 춤을 추고 노래하듯 그렇게 생동력 있으며 놀이동산에 뛰노는 아이처럼 활기찰 것이다. 때론 여느 토요일 아침 막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물을 덥힌 후 창문을 열어 티 테이블에 앉아서 한입 머금은 국화차의 은은한 향처럼 포근할 것이다.
아아, 그 안정감이란.
지금 이 순간 숨을 한 번 후 내쉬어 보자. 그리고 상상해 보자. 행복의 향을.
숨을 천천히 들이마 쉰다. 몸과 마음의 때묻은 것이 씻겨져 내려간다.
다시 숨을 내쉰다. 동시에 나는 깨끗해진다. 태초에 불어 넣어졌을 그 숨결처럼.
곁에 있는 이의 소중함
행복을 우린 멀리서 찾을 때가 많다.
행복은 큰 게 아니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 내가 날 사랑하듯 어느 새 나보다 날 더 사랑해주는 주변 사람들, 또 나의 한걸음 한걸음을 축복해주는 이들, 나의 미래를 함께 바라봐주는 이들, 내가 웃을 때 함께 행복을 느끼는 이들.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랑 함께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 않는가?
급작스럽게 천둥치고 비 오는 하늘. 아무런 준비 없이 거리를 거닐다가 때아닌 비를 맞게 되더라도 소중한 이와 함께라면 우리에게 응당 그 시간은 추억이 된다. 웃으며 떨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어 추울 순 있지만 말이다.
물질이 곧 행복은 아니다
우린 때로 행복이란 물질에 속해 있다며 불꽃 위에 피어나는 아지랑이 잡듯이 그렇게 허공에 손을 뻗어 휘젓기도 한다. 그 형태가 정해져 있는 꽃잎이었더면 그 손끝엔 향내음이 남아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그 무엇도 잡지 못하고. 남은 일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을 잡기 위해 뛰쳐나간 뒤 한참 뒤에서야 방향을 잃어 허탈감을 느끼는 것. 손가락에 휘감기는 허무. 온몸으로 그 것을 체험하는 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물질이 주는 풍요를 부정할 수는 없다. 아아, 그렇다. 물질은 너그러움을 가져다 준다. 여유로운 일상에서 우리는 행복을 얻는다. 그러나 물질이 곧 행복은 아니다. 다만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한가지의 요소는 될 수 있겠다.
끝으로 행복이란?
돌아가서 행복이란 싱그러운 풀내음과 같다. 그 것은 살아 움직이며 세상 모든 것에 활기를 띄게 한다. 봄비가 내린 뒤 돋아나는 새싹처럼 모든 것을 생동케 한다. 우리는 그 위에서 소풍 온 아이처럼 신나게 뛰놀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허락된 양식이라면.
아이는 어제 넘어져 울었던 길에서도 뛰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을 지켜보는 이의 염려와는 상관 없이. 때론 아이로 돌아가자! 우리에게도 괜찮아, 편히 놀아 지켜봐 주던 어른이 있지 않았던가? 중요한 사실은 이제 그 어른은 필요 없어졌다. 우리가 어른이 되었기에, 그저 우리 스스로에게 괜찮아, 행복해도 돼 하고 허락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허한 뒤에는 행복이 우리에게 스며들도록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이제 함께 기다리자!
차 한잔 마시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