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알고 싶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
그리스 로마 신화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프로메테우스’는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이름이다.
프로메테우스 설화를 모티브로 만든 많은 영화와 문학작품 덕분이기도 하고, 관용어구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판도라의 상자’라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프로메테우스 덕분이기도 하다. 알면 위험해질 수도 있는 비밀을 뜻하는 ‘판도라의 상자’는 불을 훔쳐 제우스의 노여움을 산 프로메테우스로부터 시작된다. 제우스는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판도라라는 여자를 보내고, 프로메테우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와 결혼을 감행한다.
이후 제우스가 절대 열지 말라며 건넨 상자를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열어버린 판도라 때문에 상자에 들어있던 분노, 절망 등의 감정이 세상에 창궐하게 되었다는 것이 신화의 주된 내용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왜 동생 에피메우스가 판도라와 결혼하는 것을 만류했을까? 바로 그에게는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판도라가 상자를 열어 인간 세계에 부정적인 감정을 퍼뜨릴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결국 비극을 막지는 못했지만, 이 신화 속에는 늘 다가올 미래를 궁금해 하는 인간의 욕망이 투영되어있다.
신문 한 귀퉁이에 별자리 운세가 여전히 자리 잡고 있고, 사주와 타로를 봐주는 가게를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것도 그 욕망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다.
이런 욕구는 비단 개인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이나 기업에서도 나타나는데,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시스템을 우리는 예측 시장(Prediction market)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영화 산업에서 영화의 흥행 성패를 예측하는 시스템을 통해 투자자는 투자를 결정할 수 있고, 예측의 축적에 따라 실제 대중의 영화 관람 여부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예측 시스템이 잘못 이용된다면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게 된다. 어느 한 쪽의 이익을 위한 예측으로 시장 가격이 붕괴되거나 과열되기도 하고, 조작된 결과로 큰 피해를 입는 이들이 생기기도 한다. 더불어 예측이 틀릴 경우에 안게 될 손실은 시장의 규모에 따라 천문학적인 숫자가 될 수도 있다. 누구도 알 수 없는 미래를 조금이나마 보여주기 때문에 유혹적이지만, 그만큼 위험하기도 한 예측 시스템. 이런 예측 시스템을 집단 지성 이론을 통해 조금 더 정확하게 가동시키고자 탄생된 블록체인이 바로 어거(Augur)다.
“이 시대 프로메테우스는 나야나"
자신의 몸보다 훨씬 큰 먹이를 지고 가는 개미 무리에서 영감을 얻어 생겨난 단어, 집단지성.
소수의 전문가가 내놓는 예측보다 다수의 예측이 더욱 정확할 거라는 집단지성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어거는 개발 끝에 2015년 8월 출범됐다. ‘다수의 예측’이라는 흥미로운 아이템에 이더리움에서 개발한 분산형 어플리케이션(Dapp)을 활용한 첫 번째 암호화폐로도 화제를 모았었던 어거. 덕분에 출범 첫날 2000 비트코인과 10만 이더리움의 수익을 올리며 순항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어거의 예측 플랫폼은 어떻게 운영될까?
우선 어거 플랫폼의 참여자는 크게 이벤트 등록자, 거래자, 평판 소유자로 나뉜다.
이벤트 등록자는 말 그대로 예측이 가능한 명제를 등록하는 사람이다. 이를테면 “2018년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70개 이상 딸까요?” 같은 이벤트를 등록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등록된 이벤트에 미래를 예측하는 배팅을 하는 이들을 거래자라고 부른다. 한국이 금메달을 70개 이상 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다 쪽에 이더리움을 걸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쪽에 이더리움을 건다.
이벤트가 종료된 후, 실제 결과가 어떤지 알려주는 사람을 평판 소유자라고 부른다. 평판 소유자라는 단어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여기서 말하는 평판이란 평판을 뜻하는 영어 단어 Reputation에서 따온 ‘REP’로 불리는 어거 코인 자체를 뜻한다.
즉 어거 코인(=REP, 평판)을 가진 평판 소유자는 누구나 결과를 입력할 수 있는 것이다. 평판 소유자가 입력한 결과가 제대로 된 것이라면 수수료로 배팅된 이더리움 중 50%를 받게 되지만, 이 결과가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면 자신이 가진 어거의 20%를 잃게 된다. 이렇게 결과가 나오게 되면 이벤트를 등록한 사람은 사람들이 배팅한 이더리움 중의 50%를 갖게 되고, 맞는 쪽에 배팅을 한 사람은 REP, 어거 코인을 얻게 된다.
“예측이냐 도박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거 플랫폼의 시스템을 이해한 사람이라면 ‘이게 예측이야 도박이야?’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도박과 어거 플랫폼의 예측 시스템 사이에는 비슷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지만, 블록체인을 이용한 시스템인 만큼 어거 플랫폼은 더 믿을만하다. 금액 배팅부터 암호화폐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블록체인에 기록되어 수정이 불가능하고, 결과가 나온 후 보상을 받는 과정 또한 스마트 계약을 통해 자동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중간에서 누군가 가로채거나 지급이 미루어지는 일이 없어 믿을만하다. 앞서 말했듯이 잘못된 결과를 입력하면 페널티를 받기 때문에 결과에 신뢰성이 높아지는 것 또한 장점이다.
그렇지만 어거 시스템의 문제점 역시 하나 둘 불거지고 있다.
지난 7월 23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암살당할까’라는 자극적인 주제의 이벤트가 올라와 논란이 되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유수의 유명인들의 목숨을 건 이벤트들이 숱하게 올라와 있다. 인간의 목숨을 담보로 한 내기 자체도 문제지만, 이것이 암살 시장을 형성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어거가 걸어야하는 길”
유투브 'Joey Krug Explains the Augur Prediction Market' 캡처
어거를 개발한 포캐스트 재단의 공동 창립자이자 선임 개발자인 조이 크러그는 “비트코인이 우리에게 탈중앙화된 화폐를 줬고, 이더리움이 탈중앙화된 컴퓨터를 구현했다면, 어거는 탈중앙화된 금융 시스템을 활성화할 것이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개발 2년 만인 올해 7월,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구동되기 시작한 어거 베타 서비스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일반적인 도박이나 예측 게임보다 더 많은 것을 구현하겠다고 당당히 나선 어거이지만, 본질이 흐려지고 단순한 돈내기에 불과한 이벤트들만 넘치게 된다면 결국 사용자들은 등을 돌릴 것이다. “느리게, 안정적이게”를 외치는 어거 팀이 어떤 방법을 통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예측 플랫폼을 이끌어 나갈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