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에 3 만 3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일본,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한 해에 1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흔적이 없어지고, 연기처럼 증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증발” 이라는 단어가 무슨 SF소설에서 나오는 멋진 위치이동 즉, "teleport"와 같은 초능력이 아니라 그 10만명 중에 약 8만 5천명은 타의가 아닌 스스로 원해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아무도 알아보지 않는 곳에 몸을 숨긴 뒤 살아간다 는 의미를 가진다. 일부는 실제로 죽었고 나머지는 사망자로 처리되어 일본이 자랑하는 사회안전망에서 조차 그 무엇도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 기대와 희망이 없는 이 사람들은 하루하루 천천히 죽어간다. 이 안타까운 사회문제를 5년간 따라다닌 프랑스 언론인, 사진작가 부부가 생생한 사진과 함께 밀착형 인터뷰를 통해 몇몇 증발자들의 사연을 에세이형태로 써내려 가는 일종의 다큐멘터리 형식의 책으로 "증발" 그 비밀의 베일을 벗긴다.
일본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립하지 않으면 부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고 그래서 생활비를 보탠다. 회사에서 휴대폰을 충전하는 것조차 전기도둑이라 생각하는 등,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남에게 수치심을 느끼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고 금기시한다. 일본영화를 보면 바보, 짐승같이 다른 나라에 비하면 1차원적인 욕만 있는 것도 이들의 수치심에 대한 이해가 남다르고 조그만 실수에도 크게 자책하기 때문일 것이다.
빚, 파산, 이혼, 실직, 낙방 등, 여러 가지 실패의 조각들에 부딪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거나, 일본 특유의 조직 속에서의 개인의 획일화 또는 개인의 조직일체화, 실수에 대해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지 않는 일본 사회의 특성들, 이 조건들은 일본 경제의 버블이 붕괴하는 촉매제를 만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1, 야반도주
“재정난에 빠졌나요? 대책을 세우기엔 늦었다고요? 우리가 여러분을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드립니다.” 한 회사의 광고문구를 통해 소위 “신속한 이사”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삿짐 센터를 운영하는 회사가 있고 사장 본인도 “증발자” 출신이라는 이야기. "야반도주는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이 사람들에게는 목숨을 구하는 일입니다" 라고 고백한다. 이런 경우는 우리나라에도 간혹은 있는 일이니 이해하고 넘어갔다.
2, 실패에 대한 수치심
이혼, 사업실패, 해고, 빚더미 등의 이유로 "나는 패배자, 겁쟁이"라는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가족을 버리고 숨어 버리는 가장들, 평소와 같이 와이프의 배웅으로 출근하지만 갑자기 엉뚱한 곳으로 숨어버린 이들.
3, 산야, 지도에도 없는 도시
세계 3위 경제대국의 수도 안에 사회규범이 통하지 않고 침묵만이 가득한 세계가 있다. 에도시대에는 처형장이었다가 훗날 도살장, 지금은 가장 큰 인력시장이 된 지도에도 없는 도시, 산야. 사람이 살지만 사람으로 인정되는 사람은 없는 도시.
3, 지옥 캠프
여러 회사의 임직원들이 정신병원의 흰색 환자복을 입고 13일 동안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아이처럼 읽는 법, 쓰는 법, 말하는 법, 생각하는 법, 행동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 소위 "두뇌세탁"을 하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부족한 점이 많은 직원들이 질서와 순종이라는 바른 길로 다시 인도하는 것".
학교는 세워진 지 30년이 지났지만 규칙은 달라지지 않았다. 매일 아침 군대처럼 5시 30분에 일어나 깃발을 들고 캠프의 노래 “지옥의 13일”을 부르며, 회사가 내세우는 가치인 돈, 제품, 인간을 되새긴다. 2퍼센트가 매일 도망친다. 맨발로 밭을 가로질러 달아나거나 히치하이킹을 하거나 친구에게 도와달라고 전화해 도망친다. 어떤 식으로 도망쳐도 처벌은 같다. “사라진 사람들은 패배자다.”
4, 하시의 고백, 증발 26년
아내와 시작한 집이 철거촌이 되면서 조직폭력배들의 위협에 겁쟁이라는 수치심을 가진 뒤, "죄책감때문에 떠나,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해. 나를 기다리지마.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을꺼야" 라는 메모를 남기도 증발해버린 한 남자. 우여곡절 끝에 26년이 지나 아내를 찾아나서지만.....
20, 후쿠시마의 연기
벌써 7년이 흘러버린 후쿠시마의 원자력발전소, 이들의 삶의 터전은 없어졌고 모든 것이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며 멈춰있다. 그 폐허 속에서 위험을 무릎쓰고 방사능 폐기물을 처리하는 이들이 있는데,, 바로 증발인들이다. 사회는 이들에게 결국 그 남은 삶마저도 약간 더 나은 물질적인 혜택?을 주고 사지로 내몰고 있다.
외면상 인권은 커져만 가지만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로 인해 인권 자체를 말소당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 과연 우리는 행복해진걸까요?
책에는 맨 앞과 맨 뒤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서 아래 두 구절을 인용한다.
"일어난 일은 산산히 부서져버린 접시와 같아서 아무리 노력해도 본래 상태로는 돌아가지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카프카의 해변>>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물의 이면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거의 비슷한 비율로 숨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스푸트니크의 연인>>
마지막 글에서 숨을 쉬고 싶다고 말하는 작가의 심정은 말 그대로 비참, 비통, 좌절, 단절 같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단어들일 것이지만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함은 아직 그들에게는 어려움을 같이하고 동행해줄 것으로 믿는 따뜻한 사람들이 있음일까?
한 해에 8만 5천명이 자발적으로 증발하여 가족들에게 서서히 잊혀지면서 자신조차도 고사해가고 있는 일본, 매년 20만 호의 빈집이 생겨 소도시들이 죽어가면서 슬럼화가 되어가는 일본, 이 모습이 과연 우리의 미래는 아닐 것이라 애써 부인해보지만 과연 장담할 수 있을까? 얼마 전에 부산의 영도에서 슬럼화가 시작되고 있을 수 있다는 보도를 본적이 있다.
오늘 인터넷 기사에 일본의 경제가 호전되어 드디어 잃어버린 20년으로 장기 침체를 대표했던 디플레이션이 끝났다는 공식적인 보도를 보았다. 책의 내용은 어려운 사회현상을 열거하고 수많은 통계들을 나열하면서 실제 문제점을 숫자들의 늪 속으로 빠뜨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National geographic이나 BBC와 같은 곳에서 제작한 밀착 취재형태의 다큐멘터리 형식이고 또한 증발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들려주는 에세이와 같은 형식을 취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그들의 절박함이 마음에 와서 전해질 정도이다.
하지만 아쉽고 무거운 무언가가 가슴에 남는다. “과연 나아질 수 있을까? “ “과연 우리는 자유로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