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나얼의 짤막한 인터뷰를 보았다.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음반을 꼭 사서 들어라' 라는데, 그 이유가 인상깊다. 음반시장..어쩌고.. 로 시작할듯한 뻔한 내용이 아니라 음반이라는, 실제로 만질 수 있는 물건을 손에 들었을때만 얻을 수 있는 특유의 감성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언급한 것이 음악을 듣기 위해 음반을 손에 넣기 위해 힘든 과정을 거쳤던 것이 음악에 대한 열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것 같다고 했다. 종종 생각한다. 인터넷이라는 것이 태어나면서부터 존재했던 친구들의 인식체계는 나와는 근본적으로 다를 거라고. 그들에게 아날로그 감성을 말하는 것 자체가 꼰대짓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럼에도 나얼과 같은 해에 태어나 LP, TAPE, CD 등을 모두 거친 나로서는 그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생각난김에 작년에 쓴 글을 박제.
"...and it opened the door for fans to hear all our rock stuff."
".. . 그 노래는 팬들이 우리의 락음악을 듣게 만들어줬다."
Extreme의 기타리스트인 Nuno Bettencourt가 2집 앨범에 수록된 More than Words의 빌보드 차트 1위 25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그 노래가 밴드와 자기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언급하며 한 말.
초등학교를 마칠즘 겨울, 교회 수련회에 참석했다. 6학년 막바지까지 부산에서 보내고 서울로 이사를 왔었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오후 쉬는 시간 단체 숙소에 누워있는데 한학년 위였던 세종이형-명찰을 보고 이름을 알았다-이 기타를 몇마디 연주했다. 기타줄을 튕기면서 울림통을 치는 신기한 연주였는데, 기타소리가 좋은걸 처음 알았다. 수련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겨울 방학 내내 아버지의 삼익 클래식 기타를 붙들고 살았다.
기타 실력이 늘면서 세종이형이 치던 노래가 쳐보고 싶었다. 하지만 어떤 노래인지 알 길이 없었다. 세종이형은 이름만 알 뿐 한번도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당시 나는 길을 잃어도 절대로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을 만큼 숫기가 없었기 때문에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중학교를 마칠때까지도 그 노래의 정체를 몰랐다. 기억속에 남아있는 전주 몇마디가 전부였다.
서울 전입일이 너무 늦었던 나는 당시 살던 강남이 아니라 강북의 중경 고등학교에 배치를 받았다. 그리고 나처럼 강남에서 강북까지 밀려난 학생들이 타고다니는 사설 통학버스를 이용하게 됐다. 집에 올때면 부러 한정거장을 지나쳐 고속터미널에서 내리곤 했다. 터미널 지하에는 한가람 문고가 있었고 '이정선 기타교본' 류의 책이 많았다. 꽤 자주 들락거린 덕분에 서점 한켠에 밴드스코어-일본 악보집을 카피한 불법복제악보-가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삼호출판사님고맙습니다.
그렇게 몇달이 지난 오후 쉬는시간이었다. 워크맨으로 음악을 듣던 친구에게 이어폰 한쪽을 얻었다. 거짓말처럼 세종이형이 치던 그 노래가 나왔다! 급히 테이프를 꺼내보았더니 공테이프 라벨지 위로 extreme 이라고 써있다. 해당 앨범이 판매가 금지되었다고 했다. 어른들이 금지한 것을 듣는다는 것은 좀 께림칙한 일이었지만, 그날 바로 테이프를 빌려 복사본을 만들고 듣기 시작했다. 앨범에 수록된 곡들 대부분이 뭔가 사악하다 여겨 멀리하던, 그래서 난생 처음 듣는 '롹' 혹은 '메탈'이었다. 자연스럽게 한가람 문고에 악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한가람 문고의 밴드스코어에 등장하는 밴드의 사진들을 보면 하나같이 시끄럽고 무서운 음악을 할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extreme 이라는 밴드도 시끄러운 음악을 하니까 어쩌면 악보를 구할 수도 있겠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가람 문고에서 3년이 넘도록 전주만 흥얼거리던 그 노래가 들어있을 악보를 사들었다. 그런데 제목이 무려 pornograffitti. 표지에는 어른처럼 생긴 꼬마애가 담배를 꼬나물고 있었다. 판매금지된 앨범, 그것도 롹 혹은 메탈로 가득한 앨범의 값비싼 -12,000 원은 당시 고등학교 1학년에겐 큰 돈이었다- 악보를 샀다는 것만으로도 겁이 났는데 손에 든 악보의 면면은 내가 진짜 나쁜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기 충분했다. 서점에서 나와 뉴코아 백화점 옆 행적이 뜸한 곳에 쭈그리고 앉았다. 찾던 노래 제목은 그때까지도 몰랐기 때문에 음표랑 가사 하나하나를 읽어야했다. 그렇게 찾아낸 제목은 'More than Words'. 기쁨도 잠시, 나는 주위를 흘끔 둘러보고 More than words 와 When I first kissed you* 두 곡만 찢어내고는 나머지 악보를 휴지통에 넣었다. 진짜로 나쁜짓을 하는 것만 같았기 때문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바로 그 주말 일요일에 늦은 점심을 먹고 More than words를 카피하기 시작했다. 악보가 잘 안보여 고개를 들었더니 해가 져서 어둑했다. 다리가 저려 한참을 일어나지도 못했다. 이후 고등학교 3년을 같은 노래를 치고 또 쳤다. More than words 앨범 버전의 뒷부분에서 누노는 딱 한번 살짝 버징을 내는데, 난 그것까지 따라했다. 자연스럽게 extreme 팬이 되었다. 누노의 말처럼 More than words는 내가 사악한 것이라 생각하며 멀리했던 롹음악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었다.
누노 형 고마워요. 형이 아니었으면 전 지금쯤 사탄의 음악 운운하는 극렬 꼰대가 되었겠져. 노래처럼 말로만 고맙다고 하믄 안될텐데 앨범 사는거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네요. 그래도 없는 형편에 테잎도 사고 씨디도 샀어요. 진짜루.
그리고 얼마전 extreme 콘서트에 다녀왔다. 형들은 나이가 많아졌을뿐 여전했다. 보스턴 길거리에서 Hole hearted 썼다는 얘기를 듣고 있자니 그 보스턴에 내가 살게 되었다는게 너무 신기하고 살짝 감동적이기까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