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10. 10 (화)
■ 예레미야 12:7-17
[ 버려진 하나님의 소유 ]
하나님께서는 '내 집', '내 소유',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을 원수에 손에 넘겼다고 말씀하십니다(7).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었고,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기업이었으며 자기의 몸을 십자가에서 버리시기까지 사랑하시는 자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사랑하던 자를 원수의 손에 내 맡기어 다룰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내가 그를 미워하였음이로라"고 말씀하시지만(8), 진정으로 미워하였다면 영원히 버리셨을 것이며 그들을 바벨론을 통해 연단하시고 다시 회복시키시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단지, 그들을 미워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은 백성된 이스라엘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악을 미워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숲속의 사자와 같은 소리로 하나님을 향해 반항과 살기어린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사랑받았던 이스라엘을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주검 주변으로 몰려드는 "무늬있는 매"라고 말씀하시며, 들짐승들을 모아다가 그 매들을 삼키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9). 특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무늬있는 매"라고 언급하신 것은 이곳 저곳 먹이가 있는 곳이면 마치 그곳의 일부인 것처럼 보호색을 띠며 다니는 습성을 지적한 것으로서,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혼합주의적 종교성이나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하나님을 저버릴 수 있는 이스라엘의 가증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야생으로서 매우 길들이기 힘든 존재로서 오직 먹이감이 있는 곳만을 응시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탐욕을 빗댄것입니다. 약속의 땅이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던 이스라엘의 거주처가 이방의 왕들,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기 위한 목자로 세우신 자들에게 의해 철저히 유린 당하여 황무지가 되도록 하실 것입니다(10). 모든 사람들이 거할만 하고 흠모하였던 땅이 아무도 마음에 두지 않을 황폐한 땅이 되도록 파괴하는 자들이 마음껏 살상하도록 버려두시리라 말씀하십니다(11). 하나님께서 그토록 이스라엘을 통해 영광스러운 나라를 이루고자 했던 언약의 땅이 더 이상의 안전을 기대할 수도 없을 만큼 파괴와 죽음이 만연한 곳이 될 것입니다. 내 삶과 가정의 평안과 행복은 오직 만왕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통치 받을 때만이 보장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습니다. 파괴하는 자들이 광야의 모든 벗은 산 위에 이르러 예루살렘을 삼킬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이끄는 대군과(34:2-3), 한 때 동맹군이라고 생각했던 앗수르의 군대까지 연합하여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진을 쳤습니다(사10:5-6). 이러한 상황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호와의 칼이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삼키니 모든 육체가 평안하지 못하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2). 이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죽음의 고통 앞에 무방비상태일 수밖에 없는 그들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기쁨과 축복의 땅을 슬픔과 저주의 땅으로 바꾸었습니다. 밀을 내었던 풍성한 땅이 가시덤불만을 내는 황폐한 땅이 되어 땀흘려 수고해도 소득이 없어 수치를 당하는 삶이 될 뿐입니다. 땅은 같은 땅이지만 결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낸 것입니다. 같은 생활, 같은 가정, 같은 직장을 다니지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삶과 저주아래에 있는 삶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직면한 위기는 이방민족들과 지속적인 적대관계를 가진 결과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버리고 그들의 힘과 권세를 의지했고 그들의 신들을 섬기며 그들을 추종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경제적 위기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돈을 숭배하였기 때문에 오는 결과입니다. 그것이 이제 이스라엘이 그들이 의지했던 힘과 권력에 의해 유린을 당하고 열방 앞에서 벌거벗겨지고 놋 사슬에 매여 끌려가는 수치가 될 것입니다. 아무리 돈을 벌어도 한 번도 돈은 사람의 종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 위에 군림하고 사람을 호령합니다. 돈의 힘은 사람을 지배하고 사회를 조정할 뿐아니라 나라의 존립을 결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람 스스로 돈 앞에 엎드리고,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돈에 절대적인 힘을 스스로 부여한 결과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돈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칼과 같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풍요는 우리에게 많은 기쁨과 만족을 줍니다. 그러나 풍요를 섬길 때 오히려 그것은 우리에게 슬픔과 고통을 준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결과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분노케 하였기 때문입니다(13). 그러나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대해 변심한 까닭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오직 이스라엘을 향해 있습니다. 그 마음이 변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다만, 이스라엘이 스스로의 죄악을 깨닫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되기까지 징계의 채찍으로 파괴자인 바벨론을 사용하실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 대적들에 대하여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에게 기업으로 준 소유에 손을 대는 나의 모든 악한 이웃"이라고 정의하십니다(14). 그리고 대적들을 그 땅에서, 유다의 집 가운에서 뽑아 버리고, 다시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겨서 각 사람을 기업이 되는 그 땅으로 인도하므로 회복시키겠다고 말씀하십니다(15). 그러나 원수들이라 할지라도 여호와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고 바알 대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면 백성 가운데 세움을 입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16).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라고 말씀하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 말씀을 배우고 또 배우면"이라는 의미로서, 지식이나 종교적인 예법을 능숙하게 익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적인 성숙함을 이루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이나 혹은 원수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순종하면 백성 가운데 세움을 받고, 말씀을 외면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내가 반드시 그 나라를 뽑으리라 뽑아 멸하리라"고 선포하십니다(17). 예전에 어떤 일을 하였는지, 어떤 사람이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배우며 순종하는 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이는 곧 바알을 버리고 하나님을 주권자로 인정하고 그 분의 말씀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세움을 입으려니와"라고 말씀하신 것은 '번성과 충만'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오면 반드시 번성하고 충만케 될 수밖에 없는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예전에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죄악을 저질러서 감히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없다는 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들 앞에서 겸손함을 보이려고 하는 '교만의 위장'일 뿐입니다. 진정한 겸손이란 있는 모습 그대로 삶의 주권자이신 하나님 앞에 나와 엎드리는 것입니다. 겸손히 주께 나아와 세움을 받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기도>
약속의 말씀을 항상 듣고 배우며 순종하는 삶으로 번성과 충만의 기쁨이 가득한 삶이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풍성함에 절하며 섬기지 않게 하시고, 풍성함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섬기고 말씀에 순종함으로 풍성함을 누리는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