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끝내 버리지 못하는 자존심이 '노력'이란 말에 담겨 있다. 이 점은 서양의 저 유명한 힐링용 속담 "하늘은 노력하는 자를 돕는다(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는 말에도 잘 드러난다.
문제는 '노력'이라는 건 ( - 아마 롤스J. Rawls로 기억되는데, 이런 지적을 한 사람은 많고 많기에 출처는 생략해도 좋겠다 - ) 이미 '노력할 수 있는 천부적 재능'으로서 타고난 거라서, 설사 노력이라는 말에 뭔가 의미가 있다 해도, 사회적으로는 하나마나한 말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자기가 노력할 수 있는 재능껏 노력할 수 있다는 말이니까. 뒤집어 말하면, 노력하지 않는 건 노력할 수 있는 재능껏 노력하지 않는다는 말일 테고, 그건 결국 타고난 이상으로 노력할 수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핵가족 제도 속에서 유전과 양육은 시너지를 내어 노력은 멱함수(=지수함수)의 방식으로 가중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나아가 모든 이에게 '노력하면 잘 될 거다,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거다'라는 조언이 쏟아진다. 실패하면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리라도 한 양. 하지만 우리의 원리에 따르면, 누군가가 행한 노력과 성공/실패 사이에는 상관성이 없다. 미리 예정된 양의 노력이 있을 뿐이요, 그 양의 크기에 따라 이른바 성공/실패도 예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노력하라'라는 명령은 성공한 자를 실패한 자에 대조해서 더 잘 정당화해 주기 위한 속임수에 불과하다.
차라리 나는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노력하지 않을 거야, 라고 하는 편이 낫다. 멜빌의 소설 '바틀비'에 나오는 저 유명한 말. "I would prefer not to...(하지 않고 싶어) 만일 모두가 이렇게 외치기 시작하면 이 자본주의 사회는 잘 작동하지 못하리라. 성과급은 정당화되지 못하며, 경쟁도 의미를 잃게 되리라. (성공, 실패 같은 말들은 일상적인 뜻에서 사용한 말이니 심각하게 따지지 말라.)
관건은 노력의 재능이 천부적인지 여부를 확증하거나 반증하는 데 있지 않다. 증명에는 시간도 많이 걸릴 거고, 아마 증명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다만 '노력하라'가 이 사회를 작동시키는 데 어떻게 기여하는지는 주시해야 한다. 패자가 패배에 승복하도록 만드는 가장 기초적인 근거가 노력이 결과를 더 낫게 만든다는 미신이므로.
패자가 더 이상 패하지 않았다고 고집하는 한, 다시 말해 이미 타고난 재능(노력+양육)에서 자연스럽게 귀결된 결과일 뿐 패한 건 아니라고 우기는 한, 패자는 자포자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그래, 네 잘못은 아니야! 역설이지만, '노력하지 않겠다'는 태도야말로 강자로 생성하는 출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노력하지 말자.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첨언. 노력에 따른 보상이라는 제도는 공정하지 않다. 그러니 제도를 바꿔야 한다.
첨언 더. 자유의지라는 주제도 같은 방식으로 이해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