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문제가 생각을 통해 다 해결되지도 않고 다 해결될 수도 없지만 생각은 분명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다. 생각의 학문 그것이 곧 철학일진대, 한국에서는 중등 교육의 장에서 철학을 학습할 수가 없고, 나아가 대학에서도 배울 기회가 좀처럼 많지 않다. 더구나 실용성, 그 중에서도 특히 경제적인 실용성만을 추구하는 오늘의 사회 분위기에서 철학이라면 왠지 구닥다리 물건 취급 받기 십상이다. 돈 되는 것이 아니면 백안시하는 풍조 자체야말로 철학의 부재를 반증한다. 그러나 철학 또는 인문학을 비실용적이라고 판정하는 것은 틀렸다. 철학은 전체적으로 볼 때 삶의 실용성을 추구하는 행위이며, 구체적인 삶에서도 상당히 유용할 수 있다.
철학은 도덕도 국민윤리도 아니다. 도덕이나 국민윤리가 삶의 방향을 잡아 주고 이끌어 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허나 그것들은 아직 외부에서 강요된 규율에 불과하다. 스스로 검토하고 걸러내어 받아들인 것이 아닌 이상 그 어떤 규칙도 보류할 권리가 있다. 그 권리의 실천이 바로 철학이다. 철학은 삶을 노예로 만들려는 모든 힘에 대항해서 싸우는 생각의 실천이다. 생각이란 호흡과 비슷한 활동이다. 우리가 숨 쉬지 않고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듯이 생각함이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다. 많은 경우 설사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확실히 그것은 진실이다. 철학은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우리가 생각을 하는 모든 순간과 관련을 맺는다.
삶의 조건이 변하고 있으니 이제 철학은 별 소용이 없지 않느냐고 반문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철학은 특수한 영역에 제한된 학문 또는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 자체와 동의어인 생각 활동과 관련된 학문이다. 실패한 연애, 친구와의 다툼, 사업의 어려움, 성적 저하, 부모의 죽음, 현실의 불만 등 우리의 삶은 생각을 동반한다. 우리는 느끼고 따지고 결심한다. 이 모든 것이 다 생각 활동이다. 당연히 철학은 이 모든 것들과 관계한다.
생각은 활동이고, 그것은 달리기나 던지기 또는 계산하기나 먹고 싸기 또는 연애나 다투기 같은 몸의 활동이다. 물론 생각의 독자성이 있기는 하다. 이 독자성은 따로 충분히 다룰 만한 생각거리이다. 그렇다고 생각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가장 나쁘다. 생각을 무슨 그림자나 허깨비 취급하고, 행동의 준비 단계나 도구 정도로만 여기는 경우도 많다. 나는 이 오래된 편견을 불식시키고 싶다. 생각은 정말 위대한 실천 활동이다. 생각은 자신과 세계를 바꾸는 힘일 뿐 아니라 나아가 자신과 세계를 아름답게 만드는 힘이다.
인간을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생각하는 힘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 생각은 훈련을 통해 충분히 성숙해야 하고, 무지에서 오는 순진함은 찬양되어서는 안 된다. 생각과 앎은 기쁜 것이다. 그러나 그 기쁨은 만들어내야만 존재한다. 이러한 실천이 철학의 깊은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