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을 좋아한다고 대놓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그런 말을 하면서 사는 것이 쉽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핵심은 무엇이, 어디까지가 폭력이냐, 라는 물음에 대해 각자 마련한, 또 사회가 마련해서 잠정적으로 합의한 답일 것이다. 바로 이 답이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폭력 또한 관계 속에서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령 고통을 느끼는 감각이 둔한 사람과 예민한 사람에게 폭력의 기준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폭력의 강도를 정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이 어느 정도까지는 마련될 수 없는 건 아니겠으나, 사실상 그 객관적 기준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객관적일 뿐 그것을 느끼는 주체(subject)에 관해서 말해 주는 바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는 폭력이 일정한 범위 내에서 작동할 때 주체는 그것을 즐기기도 한다. 명백한 폭력에 대해서도 입장이 갈리는데, 가령 혁명 상황에서처럼 파괴를 수반하는 폭력마저도 때로 찬양되곤 한다. 폭력에 관해 말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이런 측면에서도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권력과 폭력은 위장된 형태를 하고 있을 때 가장 가증스럽다. 종교 권력에 내재한 폭력성을 예리하게 파헤친 것은 니체였다. 특히 기독교의 사제 권력을 분석할 때 그는 탁월하다.
이에 관해서는 니체의 『도덕 계보학』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 책의 한국어 번역들이 모두 수준 이하라는 게 함정.)
『도덕 계보학』의 초판 표지(188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