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동시통역은 불가능하다

armdown(66)
Published in
#kr
Words
467
Reading
3 min
Listen
Play
9y

안녕하세요. 아직 갈 길이 먼 뉴비 armdown@armdown 철학자입니다. (armdown은 '아름다운'으로 읽어주세요.)

지난 번에 인공지능을 통한 기계번역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그리 길지 않으니까 한 번 읽어보시면 이번 글을 읽을 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번에는 인공지능을 통한 동시통역 문제를 검토해 보겠습니다. 페이스북 포스팅이나 언론 기사로 동시통역 기계가 소개되곤 합니다(심지어 동영상 시연 장면도). 스마트폰과 블루투스로 페어링해서 이어폰만 꼽고 있으면 자동으로 통역이 됩니다. 한 사람은 스페인어 말하고 다른 사람은 영어로 말하는데, 그 대화에서 '스페인어<->영어' 번역이 자동으로 일어나는 겁니다. 이런 뉴스를 접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이렇습니다. 아, 이제 외국어를 배우지 않아도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있겠네!

과연 그럴까요? 저는 지난 포스팅들에서 다루었던 기계번역의 문제점들 때문에 동시통역이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일상적인 대화 상황에서는 대화 유형이 패턴화되어 있기 때문에 기계번역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필요한 일상회화 정도라면, 문장의 길이도 길지 않고, 소통하고자 하는 내용도 비교적 명료하며, 화제의 범위도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충분히 기계번역이 유용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계번역이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은 없을까요? 지난 번 올린 두 번째 글에 sleeprince@sleeprince 님이 댓글을 달았는데, 구글 번역 최고 담당자 마이크 슈스터의 발언 중에서 두 구절을 인용하면서(“사람의 대화는 문화적 차이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발생하는 언어의 의미나 소통 중에 사용하는 표정, 제스처 등에 따라 달라진다.” “단어로만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번역기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는 시점은 어떻게 보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석을 붙였습니다. "이 말들은 줄글 번역에 대한 말이 아니라 통역에 대한 말이로군요. 역시 표정이나 주변 상황을 인식하고 해석하지 못하면, 제대로된 통역을 할 수 없겠네요. 통역에 비하면 문학의 번역이 좀더 쉬운 수준이겠습니다." 멋진 논평입니다(그래서 댓글에 미미하지만 풀보팅했습니다^^). 대화 상황이라는 건 단순치 않습니다. 그래서 문자로 기록된 언어를 번역하는 상황과 전혀 똑같지 않습니다. 이를 언어학에서는 '담론(discourse)'과 '화행론(pragmatics; 화용론)'의 문제로 보며, '의미론(semantics)'이나 '구문론(syntax)'의 문제를 훨씬 넘어서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보태 보려 합니다. 대화 상황은 시간 속에서 펼쳐집니다. '영어 <->프랑스어<->스페인어<->중국어' 간 번역은 비교적 쉽습니다. 시간 속에서 언어의 의미가 구성되고 펼쳐지는 방식이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독일어는 어떨까요? '영어<->독일어'와 '한국어<->독일어'의 경우, 둘 중 인공지능 동시통역이 더 쉬운 상황은 어느 쪽일까요? 일단 문자로 기록된 상태라면 '영어<->독일어' 사이의 기계번역이 훨씬 잘 될 겁니다. 같은 유럽어니까요. 하지만 대화 상황이라면 그렇지 않습니다. 영어는 '부정'을 나타낼 때 주어 바로 다음에 not을 표기합니다. 중국어도 동사나 형용사 앞에 不를 붙이면 되지요. 반면 독일어는 문장 맨 끝에 nicht를 표기합니다. 한국어는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말이 있지요? 왜냐하면 긍정/부정이 정해지는 건 문장이 끝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독일어도 그렇습니다. 따라서 한국어, 일본어, 독일어 등에서 대화 상황에서는 문장이 긍정이냐 부정이냐 자체가 문장이 끝나면서만 정해지는 겁니다.

문장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어느 언어끼리라도 번역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반문이 있겠지요? 지난 번 포스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일정한 한계는 있겠지만 일상적인 대화의 많은 경우에는 기계 통역도 유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번역이 이루어지는 속도까지 고려한다면, 우리가 상상하고 기대하는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건 언어가 구사되는 구체적인 방식의 차이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입니다.

제목을 다소 강하게 붙인 건 생각을 자극해 보자는 취지였으니 오해는 없었으면 합니다.

인공지능 동시통역은 불가능하다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