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오기 전엔 내내 그랬다. 어제, 그리고 그제, 아마도 일주일 전, 아니면 한달여전. 기억나지 않는,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언젠가부터 어떤 순간이 생겼는데 그건 '생각멈춤'의 순간이었다. 퓨즈가 나간 듯 그게 무엇이든 간에 외면하게 되는 것. '나 자신'과 관련된 일이면 더욱 생각하기가 싫었다. 해봤자 소용도 없고 안 해도 별 일이 없다 보니까 자꾸 미루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방치하고 있던 생각들을 이곳에 와서 하나씩 끄집어내보니 그 지독한 외면은 분명 후회와 불안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란 걸 깨달았다. 뭐 살면서 비슷한 감정을 분명 겪기도 했었지만, 그때마다 삭제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그만 개운해져선 다른 일에 돌입해버리곤 했었다.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두고 온 많은 것들을.
후회와 불안이라는 건 여전히 공포스럽다. 두려워하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또 있을까. 어떤 방식으로든 저항해봤자 소용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두려움을 지나 무기력으로 방점을 찍는다.
이곳에서도 밤은 온다. 창틈으로 파고드는 차지만 기분 좋은 파란 바람이 일렁인다. 한국에선 볼 수 없던 달빛이 채워지니, 방 안 풍경이 또렷해지며 제 옷을 찾아 입는 듯 하다.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지쳐 돌아오는 길. 가로등보다 환하게 웃는 둥그런 달빛에 밤 공기가 푸근해진다. 조밀하게 구석구석을 채우는 빛에 어느새 허해졌던 마음이 벅차오른다.
외면하길 잘했다. 이곳의 하루하루처럼 앞으로도 매일의 나를 바라보고 싶다. 그저 일상을 살고 싶다. 흔하고 사소한 것들을 잘 느끼는 게 가장 중요할테니까.
나는 여전히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두고온 것이 아니라 이미 그곳에 없는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