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야만 했던 시간이 있었다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는
학교를 성실하게 다니는,
어디서나 모나지 않는
그러니까 튀지 않아야 하는,
성적이 매번 오르는
교회 출석을 빠지지 않는,
친구들과 잘 지내는
그러니까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는,
첫째는 원하는 대학이 아닌
안정권의 대학에 원서를 내는,
글 만드는 일을 권유받았단 말에
척박한 인식에 기반한 생계를 이야기하며
절대 안 돼, 같은 표지판으로
마음을 가로막혔던,
스물 셋부터
무려 18년 동안 겪어야 했던 맞선
그러니까 돈 많은 남자 만나
시집 가야 한다는
지상 최대의 퀘스트를 위해
내 마음 따위는 없어야 했던,
그런 일들에
맞선다는 건,
부모님 그러니까 엄마의 사랑과 용돈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엄마에게 믿음을 주는 딸이라는 말을
내놓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처음 반기를 들었던 건
1년짜리 휴학이었고,
두번째 반기는
오래 만났던 친구와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을 꺼냈던 거였다
세번째는,
부모님 그러니까 엄마의 강권으로 겪어야 했던
한 번의 파혼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더 이상 척, 이라는 말로
나를 묶어대고 휘감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호감을 사고파서 나를 포장해서
인터넷에 그럴싸하게 진열하고,
글 좋아요 같은 말들이 너무 좋아
한껏 가식을 섞어넣고,
평소에 하지도 않을 플레이팅도
온라인에 올린다고 부산을 떠는,
마음 너무 아프고 쓰라린데
아니야 괜찮아 같은 말부터 일단 꺼내는,
그런 일들을
이제는 하지 않는다
대신에 나서는 건
결점 많고 흠 넘치는
그냥 나, 의 모습들이다
반찬통이 나오는 밥상
졸문이지만 솔직하려 애쓰는 글
글에 관한 칭찬 앞에서 빙구가 되는 모습
까칠하고 예민하다고 말하는 일
부러움을 부럽다고 이야기하는 것
마음대로 귀를 뚫는 것
드디어 감행한 타투
전혀, 같은 말을 쓸 수는 없는 일이기에
거의, 같은 말을 덧입어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척, 이라는 말을 밀어낸다
오늘도,
그렇게.
더는 착한 딸이 아니라서, 어버이날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