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라라랜드를 보았다. 비오는 날 이 영화가 왜 생각났을까?
오늘 보지 않았더라면 후회했을 것만 같다. 영화 이야기를 오랜만에 깊숙하게 해보고 싶다.
라라랜드는 마법은 아니지만 분명히 아름답다. 내리쬐는 햇빛처럼, 반짝이는 별빛처럼 아름답다. 오래된 재즈클럽과 해변의 까페, 언덕의 천문대도 아름답다. 음악과 춤이 아름답고, 수트를 입은 그 남자와 원피스를 입은 그 여자가 아름답다. 그들의 사랑이 꿈이 삶이 아름답다. 결국 라라랜드에는 아름답지 않은 게 없다.
영화야 말로 판타지다. 영화는 관객의 욕망을 대리하고, 관객의 욕망은 파편적이다. 욕망을 현실과 비교해보면 뭔가 비슷한 듯 보이지만, 욕망을 완벽하게 대리하는 현실은 없다. 그렇게 여러 욕망의 파편들이 모여 가상을 만드는 것이고, 그것은 곧 영화가 된다. 그리고 라라랜드는 그 개념에 가장 맞닿아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판타지'라는 명제를 증명하듯 영화는 공간 뿐만 아니라, 주인공을 지탱하는 플롯도 판타지다. 미아는 세바스찬의 피아노 연주를 보고 사랑에 빠지고 그들은 참 '우연히도' 자주 마주친다. 달콤한 노랫말이 오가고, 함께 춤을 추며 사랑에 빠진다. 그들 각자는 배우를, 또는 재즈클럽 사장을 꿈꾼다. 이 지점에서 라라랜드는 지구 반대편의 이야기지만, 멀게 느껴지지 않게 만든다. 꿈과 현실에서 비틀대는 이들의 모습은 꼭 우리와 닮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세상에 지지 말고, 있는 힘껏 손을 뻗으라고 말한다. 너만의 라라랜드에 꼭 입성하라고.
이 작품의 모든 이야기를 완성해주는 건 결국 영화의 기술이자, 감독의 능력이다. 전작 <위플래쉬>에서도 그랬지만 라라랜드의 편집에는 오차가 없다. 무엇을 자르고, 어디서 늘려야 하는지 정확하게 계산한 컷과 컷, 시퀀스와 시퀀스는 영화에 리듬감을 부여한다. 절묘하게 사용된 조명은 관객을 극에 완전히 빨아들인다. 감독은 영화가 언제 어두워져야하고, 왜 밝아져야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우리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 정말이지 그의 능력만큼이나 패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라라랜드의 음악과 춤은 참 부단히도 인물의 감정과 정서를 실어나른다. 영화는 끊임없이 옛것을 추억하며, 사라져가는 소중한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피아노 선율이 기계음으로 대치되거나, 재즈클럽이 쇠락하고 낡은 영화관 문이 문을 닫는 LA 한켠의 풍경은 우리가 잃고 있지만, 잊고 있었던 중요한 가치를 환기한다.
영화의 모든 순간이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의 절정을 선사하는 구간은 엔딩이다. 두 남녀의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이 시퀀스는 크게는 인생사의 희비를, 작게는 엇갈린 두 남녀의 과거와 현재를 극적으로 압축한다. 찬란하지만 슬픈 쇼를 마친 두 사람이 주고받은 눈빛은 아마도 쉬이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