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인과 상극인 체질이에요, 하얀 가운 안에 부드러워 보이는 스웨터를 즐겨 입는 의사 선생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하루에 세 잔쯤 까만 커피를 비워낸 날이면 새벽 내내 심장이 바쁩니다. 이럴 때면 꼭 좋아하는 아이 앞에 선 사춘기 소녀가 된 것 같아 나는 은밀히 지금의 기분을 즐기는 것입니다. 금기를 깬다는 것은 이토록 흥미로운 일입니다.
카페인과 상극인 체질이에요, 의사 선생님은 진실한 사람인지 손이 떨려 글씨들이 자꾸 춤을 춥니다. 떨리는 손으로 건축한 글은 금세 무너질 것 같아 해가 뜨기 전까지는 쓰지 않고 읽기로 합니다. 몇 번을 펼쳐 보아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과, 끝물이라 바람이 들어간 귤 하나. 오늘 밤 침대를 함께 쓸 손님들은 아직 나를 재울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설 계획입니다. 남들처럼 바쁜 월요일을 보내고 나면, 지금 이대로의 삶도 괜찮다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른 새벽은 늦은 새벽이 되고, 늦은 새벽은 다시 이른 새벽이 될 준비를 합니다. 나는 이르지도 늦지도 못한 채 여기에 머물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