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팀] 가만히 혼자웃고 싶은 오후 - 장석주
출장은 늘 여행같았다.
일 때문에 가는 거지만, 일 덕분에 가는 것이기도 했다.
체력이 버텨주는 한에서, 출장은 언제나 여행같았다.
쿠퍼티노의 아침은 늘 청량했다.
선선함과 시원함을 오가는 바람, 따스함과 눈부심을 적절히 내어놓을 줄 아는 햇빛,
어디를 오려도 하늘색 색종이가 될 것처럼 구름 한 점 없는 깔끔한 하늘,
코로 숨을 쉬어도 산뜻하고 개운한 느낌만 들여다놓을 수 있는 공기.
그 모든 게 그곳에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새벽을 만날 수 없는 대신,
아침을 첫 페이지부터 만날 수 있는 습관 덕에 많은 것들을 기억할 수 있었다.
어둑함이 걷히는 시작점에도 호텔 직원들은 스마일 모드로 하이를 말한다.
어색함을 개켜놓고 하이를 대답하며 한켠에 있는 티테이블로 향한다.
주로 고단한 아침이었어서 차를 자주 마셨다.
하얀 컵에 따뜻한 물을 더하고 카모마일 티백을 뜯어 퐁당퐁당,
물놀이하듯 차를 우린다.
커다란 분수대 앞 벤치에 앉아 차를 마시는 일은
아침에 하는 일 중 가장 행복하고 편안한 일이다.
시간이 남으면 빈 컵에 낙서를 하기도 하고 생각나는 것들을 메모앱에 타이핑하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그때 생각이 많이 났다.
그때문이었을까, 낯선 곳의 느낌이 스민 낯설지 않은 문장들이 톡톡, 기억을 건드렸다.
조각나 어디로 갔는지 몰랐던,
흩어져 제각각 가버려 잊혀졌던,
부수어 깊숙이 던져버렸던, 그런 기억들이 뎅뎅, 알림을 울려왔다.
청량하고도 익숙한 마림바 소리처럼.
신이 허락한 인생, 시간이 주인인 삶. 그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담담하면서도 짙게 말해주고 있는 문장이 뜨뜻했다. 각자의 삶은 각자가 답을 써야 하기에 정답이나 모범답안이라는 낱말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다만, 먼저 가는 이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세심하게 골랐을 색깔들, 그보다 훨씬 마음 기울여 실었을 소제목 아래 구절들, 소소한 일상을 넘실대는 다채로운 낱말들, 보편을 평온하게 이야기하더라도 가볍지 않은 문장들이 새록새록, 색인이 되어주겠지.